018. 53년 전엔 몰랐던 잔혹한 사실

<1972년 4월 · 베트남 닌호아 끼엠마을 / 하이난 거리>

by 부지깽이

한편, 규는 흙먼지 날리는 시골길을 걸어 뚜엣의 집으로 향했다.

내딛는 걸음마다, 가슴 속 어딘가가 저릿하게 아파 왔다.

발끝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마음은 자꾸만 뒤로 걸려 넘어졌다.


“오늘이, 그날이구나···”

53년 전 오늘, 뚜엣과 하이난 거리에서 첫 데이트를 하던 기억이 또렷하게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 그는―그 때는 몰랐던 잔혹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6개월 후, 이 마을 주민들이 장춘동의 손에 무참히 학살당한다는 것.

자신이 사랑하는 뚜엣도 그 비극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


그리고―

그 학살을 피해 살아남은 한 아이가 있다는 것.

팔삭둥이.

탄은 보통 아이들보다 두 달 일찍 태어나 희생당하지 않았다.

뚜엣과 탄의 기막힌 운명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규는 뚜엣을 마주보는 일이 두려워졌다.

슬픔보다 깊은 무력감을 곱씹으며, 규는 뚜엣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자, 뚜엣이 환하게 웃었다.

단정히 빗은 머리카락이 어깨에 곱게 내려앉아 있었다.

“왔어요? 오빠.”

규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뚜엣의 엄마는 오늘도 안방에 누워 있었다.

규가 고개를 숙이자 흐엉 여사는 고마움과 미안함에 눈물을 글썽였다.


둘은 집 뒤편 공터로 나와 그네 옆에 앉았다.

잠시의 침묵 끝에 뚜엣이 말했다.

“오빠, 우리 아기가 요즘 자꾸 꿈에 나와요. 얼굴도 모르는데··· 이상하죠?”

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을 앙다문 채 뚜엣의 손을 꼭 쥐었다.

뚜엣은 살짝 웃으며, 슬쩍 규의 눈치를 봤다.

“왜요? 나, 너무 들떠 있어요? 오빠! 요즘 조금 이상해요. 기뻐하지 않는 것 같아서. 혹시 내가 아기를 가져서··· 싫어진 건가요?”


규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런 게 아니야. 난 널 정말··· 지키고 싶어.

그의 말에, 뚜엣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었다.


점심이 다가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뚜엣의 어머니에게 음식을 차려드리고, 하이난 거리로 향했다.

그 길 위에서—

규는 슬며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을 뚫고 나온 햇살은 여전히 눈부셨다.

하지만 그 빛 아래 숨어 있는 어둠이 금방이라도 그들을 덮칠 것만 같았다.

* * *


점심 무렵 하이난 거리는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닭튀김, 바싹 구운 밀가루, 과일, 땀 냄새까지—온갖 냄새가 공기 속에 퍼져 있었다.

그 한복판을 다섯 명이 나란히 걸었다. 박규, 뚜엣, 김창열 병장, 함돈혁 상병, 김정수 일병.


“햐아~ 이게 바로 남국의 정취구만!”

김 병장이 뒷짐을 지며 코를 벌름거렸다.

“워메! 김 병장님, 콧구녕에 파리 들어갔는디요~”

김 일병이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파는 시늉을 하며 낄낄댔다.

그러자 함 상병이 진지한 얼굴로 손가락을 폈다.

“지금 내 코에 잡힌 냄새, 닭꼬치 30퍼센트, 기름때 20퍼센트, 사람땀 50퍼센트.”

“야! 넌 콧구멍에 냄새 분배기 달았냐?”

김 병장이 핀잔을 줬고, 다들 웃느라 숨이 가빴다.

“안 그래도 배고픈데 웃기지 좀 마!”

규가 웃으며 뚜엣에게 눈길을 돌렸다.

“다들 배 안 고파? 밥부터 먹자!”


하이난 거리 안쪽, 연갈색 지붕에 초록색 벽면을 한 작은 식당 앞.

문 앞에 걸린 천막에는 ‘쌀국수-분짜-고이꾸온’이라는 글씨가 흐릿하게 적혀 있었다.

고기 육수와 라임, 고수향이 코끝을 휘감았다. 다른 식당들과 냄새부터 달랐다.

“김 병장님, 베트남 냄새 물씬 나는 이 집, 어때요?”

함 상병이 코를 벌름거리며 말했고, 김 병장은 벌써 입맛을 다시며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곧이어 낮은 천장과 소박한 나무 의자, 선풍기 바람 아래 펼쳐진 국수 한 그릇의 향연이 펼쳐졌다.

뚜엣이 미리 추천한 쌀국수와 분짜가 테이블 위에 놓이자, 셋은 마치 전리품을 마주한 듯 눈을 빛냈다.

김 병장은 국물 한 숟가락을 뜨고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말했다.

“이야~ 이게 바로 진짜지! 이 국물은··· 남쪽 들판의 눈물이라니까!”

함 상병은 고수를 듬뿍 올려 푸짐하게 만든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고, 규는 조용히 뚜엣 옆에 앉아 그녀가 챙겨준 라임을 조심스레 짜 넣었다.

“입에 맞아요?”

뚜엣이 웃으며 물었고, 규는 작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주··· 따뜻해.”


그렇게 한 그릇, 또 한 그릇.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드는 사이에 시간이 금세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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