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론세스바예스까지 24km(2)

by See Oak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에선 저녁식사를 10유로에 제공했다. 원형의 테이블이 놓여 있고 시간이 되자 알베르게에 있던 사람들이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와인 한 잔과 함께 튀긴 생선 또는 소고기 스테이크 중에 원하는 것을 감자튀김과 곁들여 주었다. 바게트 빵도 빠지지 않았다. 생장에서와는 조금 다른 언어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종업원들을 보았다. 오늘 나는 걸어서 국경을 넘은 셈이었다. 론세스바예스에선 크레덴시알과 함께 여권도 요구했는데, 신상정보를 묻는 하얀색 카드를 작성할 때, 우리가 국경을 넘었기 때문에 이런 절차가 있는거라고 옆에 있던 순례자가 말해주었다. 원형의 테이블에 낯선 사람들과 모여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J.P일행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공간이 넓기도 했고 꽤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기 때문에 금방 찾는 걸 포기했다.

“혼자 오셨어요?”

내 옆에 앉은 30대 중후반의 남자가 말을 걸었다. 한국사람이었다. 그 옆엔 60대 아주머니가 앉아 있었고. 내가 한국사람인걸 확인하자마자 반가워했다.

“어머, 반가워요! 한국분이시네.”

“반갑습니다. 네 혼자 왔어요….”

나는 순간 너무 무심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나 살짝 놀랐다. 타지에서 만나는 한국사람에겐 별 흥미가 없었다. 이것이 나의 오만이고 자만이라는 사실을 당장 며칠 후 걸으며 깨닫게 됐지만.

“저는 조윤이라고 합니다. 여기 아주머니하고 저쪽이 미카라는 친구와 오늘 처음 만나 같이 걸었어요.” 아주머니 옆에서 앉아 있던 숏컷의 소년이 ‘하이!’라고 외쳤다. 미카는 얼굴이 통통했고 앳되어 보였다. 눈망울이 맑았는데 꼭 귀여운 초등학생을 보는 듯했다.

“반갑습니다. 이수호입니다. 근데 저기 미카는….”

“미카는 일본인이에요….”

조윤이 대답했다. 조윤은 나보다 다섯 살 정도 많았다. 키가 크고 시원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순례길을 시작하고 수염을 깎지 않았는지 거뭇하게 수염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윤자에요.”

아주머니가 말했다. 옆에 있던 미카는 눈을 멀뚱멀뚱 뜨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영어 할 줄 알아요? 저는 미카이고… 스물 세 살이에요.”

미카는 내가 영어로 인사를 하자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스무살이라고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앳돼 보이는 얼굴이었다. 게다가 숏컷으로 친 머리가 어느 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꼬맹이의 모습이었다. 처음 만나는 일본인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갔다.


“담배 피우니?”

윤의 제안을 거절하고 나는 윤이 담배 피우는 모습을 구경 했다. 담배는 피우지 않지만 바깥바람을 쐬고 싶어 저녁식사 후에 건물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윤과 아주머니는 나에게 말을 편히 놓기로 했다. 내가 그렇게 원했다. 윤은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이직을 하거나 창업 준비를 하며 이곳에 찾았다고 했다. 정말 어이없게도, 창업 도전을 위한 자기계발서의 작가의 말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처음 보았는데, 이곳이야말로 지금 꼭 가봐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했다. 신이 이끌었다는 J.P의 말이 떠올랐다. 윤은 누구에게나 예의바른 청년처럼 보였고 큰 키 만큼 성격도 좋아보였다. 시골에 사는 사촌 형이 생각날 정도로 정감이 가고 의지가 되었다.

“괜찮으면 내일 같이 걸을까? 나와 아주머니, 미카는 같이 걷기로 했거든….”

“같이 걸어도, 힘들지 않나요?”

나는 보폭을 맞춰 걷는 일엔 신물이 나 있었다. 나는 장교로 군에 복무하면서 수십 번의 행군을 하고 수십 번의 같은 훈련을 해왔다. 줄을 잘 서고, 앞사람과 떨어지지 말고, 처지지 말고. 그런 방식으로 병사들을 훈련시켜서 협동과 단결을 끌어올리는 게 군대의 방식이었다. 어쨌든 전쟁은 함께 치르는 것이니까. 그런데, 전쟁이라는 틀을 걷어내면, 낙오자는 방해가 되고, 조직 전체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주범이 됐다. 그런 순간에 오면 결국 인간은 본심이 드러났다. 군 조직의 특성 때문에, 체력의 문제이든, 정신력의 문제이든, 걸음이 느리고 행동이 느린 사람은 스스로 도태되는 것이 아니라 앞서가는 이의 발목을 잡았다.

“같이 걷는다는 건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나는 일단 조심스러웠다.

“우리도 뭐 전부를 걷자는 건 아냐, 단지 다음 목적지를 같이 정해놓자는 이야기지. 나도 아주머니와 미카를 만나고 한참 먼저 앞서 걸었어…. 서로 속도가 달라서 페이스 조절이 안 되거든. 그러다 또 각자 흩어질 때가 되면 그렇게 하기로….”

그런 식의 동행이라면, 같이 걷는다고 볼 수 있을까? 잠깐 생각을 했다. 다음 목적지는 어느 순례자나 크게 차이는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길을 걷는 이유…. 나는 언제든지 별을 찾기 위해 더 먼 거리를 걸어야 할 수도 있었고, 가던 길을 멈춰야 할 수도 있다. 그런 자유로움이 보장되는 동행이라면 크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네 그럼 저는 상관없어요.”

“아주머니하고 미카한테 이야기해놓을게. 시간은 여섯시 반 정도 괜찮지?”

아홉 시가 되어 그제야 해가 지는 것이 보였다. 유럽의 하늘은 해가 오래 머무르는 듯 보였다. 침대에 누워 알람을 맞춰놓고 안대를 썼다. 잠시 후 누군가의 코고는 소리가 크게 들려 귀마개를 꼈다. 낮잠을 조금 길게 잔 탓도 있었지만 몸이 고단하니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나는 한참을 잠을 설치며 온갖 생각을 떠올리다 간신히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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