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은 돛단배다

“흐르는대로”

by See Oak

“흐르는대로”


내가 인생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여태 나는 이런 식으로 살아 왔다. 지금은 네 살 짜리 딸아이와 두 살 짜리 아들이 있는 나름 어깨에 힘좀 줘야 하는 가장이라서, 이러한 나의 삶의 방식을 가훈처럼 쓰자고 할 수는 없겠지만(아이들이 좀 더 자라서 삶을 고민하게 될 때 쯤에는 또 모르겠다) 흐르는 조류에 몸을 맡기는 것이 나의 삶의 철학이 되었다. 나는 그다지 치열하게 경쟁하지도 않았고, (그래서)대단히 잘 나간다거나 부자이지도 않다.


나의 이러한 삶의 방식은 언제부터였을까. 사춘기때 집을 나와 자전거를 타고 아홉시간을 달려 대전에 다다른 날과, 여차저차 버스를 타고 전라남도 영암에 있는 시골에 당도했을 때 였을까.

글을 쓰고 싶다는 학창시절 꿈에 비웃음으로 일갈한 아버지 때문이었을까.

서른 즈음 길을 잃고 산티아고 순례길에 다녀온 이후 부터였을까. 아니면 그 다음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였을까.


나의 가치관은 지금 그 무엇보다 확고하다. 적어도 “나는 흐르는 조류 위에 떠 있는 작은 돛단배 같은 사람이다.”라는 명제를 참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삼십 중반의 나이에 건설현장의 작업반장으로서, 스무살 청춘들에게 적잖이 잔소리도 하는 청춘 말기와 꼰대 사이 그 즈음이지만 그래도 나는 이런 나의

삶을 꾸준히 증명하고 있다.


잘 쓰고 싶은 글은 아니다.

단지 기록을 위해서다.

나의 유지와 삶의 방식이 인류와 영혼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도 있다는, 어쩌면 먼 훗날 수치로 다가올 수 있는 지금의 오만함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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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첫 마라톤에 나섰다. 기록은 4시간 32분이었다.

그전에 나는 달에 몇 번 씩은 달리기를 해왔다. 대략 6킬로미터 정도를 뛰었고, 1킬로를 뛰는 데에 5분 20초 정도가 걸렸다.

하지만 42.195km 풀 코스 마라톤은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신청한 계기부터가 우숩다. 몇 주 전에 뜬 서울 마라톤 공고를 보고 일단 질러버린 것인데, 나는 그동안 가장 멀리 간 기록이 십킬로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삼 주 안에 마라톤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저 흘러가는대로 했을 뿐이었다. 나의 인생 철학대로. 그러니까 충분히 할만 한 일이니까 흘러가는대로 신청하겠거니, 뭐 그래서 저질렀다. 그래서 친한 친구들이나 아내에게도 별 것 아닌 듯 얘기했다. 물론 되돌아오는 얘기는 불가능하다거나 미쳤다거나 하는 이야기들 뿐이었다. 그럼에도 일단 “흘러가는대로” 몸이 이끄는 대로 무엇이든 하기로 했다.


20킬로미터를 뛰는 연습에서 불안감이 확 엄습해왔다. 고작 2주를 앞두고 처음 뛰어 본 20킬로미터의 거리가 주는 고통은 끔찍했다. 힘들다고 정신력으로 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허벅지 쪽부터 쥐가 나듯 경련이 일어났고 기어이 20킬로를 채운 시점에선 집에 절뚝이며 걸어가야 했다. 나는 그제야 마라톤을 하기에 앞서 5킬로미터 지점마다 수분을 보충해주어야 한다는 것과, 마라톤에 도움이 되는 에너지젤 같은 것을 구입했다.


그러곤 쥐가 난 허벅지를 회복하는데에만 중점을

두었고 마라톤 당일이 되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온 몸은 금새 젖었고 나는 수시로 물과 에너지젤을 마셔댔다. 역시나 20킬로미터 지점부터 슬슬 근육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결국 이렇게 멈추는 것인가. 그냥 머쓱해하며 포기했다고 해야만 하는걸까. 곧 회송버스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거 봐 안된다고 했지? 이제 집에나 가자. 그때의 좌절감을 견딜 수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시간이 지나니 또 그런 상태(다리에 쥐가 나고 근육이 아파오는 고통)에서도 조금씩 뛸 수가 있었다. 보이는 곳은 가리지 않고 이온음료며 초코렛 등을 받아먹었다. 그렇게 뛰다보니 어느새 결승지점이었다.


나는 다시 올해 마라톤을 뛸 생각을 했지만 좀처럼 기회가 나지 않았다. 마침 올해 집이 생겼고, 인테리어 공사로 바빴고, 이제는 일이 바빴다. 핑계같지만 꽤나 힘든 자신과의 싸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일단 “내버려두기”로 했다. 때가 되면 그렇게 하게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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