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나는 망망대해를 떠도는 작은 돛단배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조류의 흐름을 읽거나, 수시로 부대끼는 바람을 돛으로 조절해가며 타는 일 뿐이다. 폭풍이 몰아치는 날엔 파도에 휩쓸려 이러나 저러나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때로는 거대한 엔진을 달고 바다를 누비는 크루즈가 되기를 소망하기도 한다.
이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는 침몰하는 돛단배와 침몰하는 크루즈를 보며 별반 다를 바 없는 최후를 느낀다. 우리는 사실 별 것 아닌 결말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바다를 누비는 자유. 그 뿐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바람이 불면 돛을 올리고. 조류에 떠밀리면 다가올 새로운 모험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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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는 대체로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길 소망한다.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이 흐름을 거부하지 않는다. 잔물결이든 집채만한 파도든. 모든 것은 이유가 있고 가치가 있다가도, 또 무의미하다. 하지만 난 이곳에서 의미를 찾는다.
신이 존재하느냐고? 그런 건 잘 모르겠다. 신이 존재한다면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모습과는 많이 다를거다. 아마 내가 신 앞에 서면 내가 누군지도 모를걸. 아니면 자신의 안식을 방해하지 말라며 저만치 나를 밀어낼지도 모르지. 하지만 신이 없다면 우리는 또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일단 생각하고 고뇌하고, 아픈 것으로부터 싹은 자라나고, 모든 잘려나가는 것들은 아픈 소리를 내고, 몸을 편하게 하는 것들은 동시에 몸을 아프게 하는 이런 모순적인 상황을 끊임없이 사유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