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에게
생각해보니, 제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지 않았네요. 저는 지금 팜플로나에 있어요. 삼일 전부터 저는 생장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했어요. 당신 덕분에, 저는 별을 찾아 이곳에 올 수 있었지요.
저는 사실 한국에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에요. 꿈을 위해 내달리던 젊은 시절의 저는 없었고, 어느 순간부터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그 일이 적성에 맞았는지 몇 년째 일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삶을 이렇게 무심하게만 흘려보내기엔 인간은 너무나도 많은 욕망을 가지고 있지요. 현실과 이상의 차이가 너무나 컸는지 어느 순간부터 아무것도 하기가 싫더라구요. 그러던 중 갑자기 별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떠올랐어요. 별과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약 일 년 정도 만났어요. 친구가 소개해준 봉사활동 현장에 가서 처음 만났는데, 저는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을 지금까지도 본 적이 없지요. 정말 바보 같고 순식간에 사랑에 빠져버렸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녀와 나는 정식으로 연애를 한 적이 없었어요. 처음 삼 개월은 이곳저곳 자원봉사를 다니며 그녀의 세계로 무작정 뛰어들었고, 이후엔 그녀와 사적으로 친해져 꽤 많은 시간을 함께했죠. 연인들이 할 수 있는 데이트는 그래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기에는 알 수 없는 무언가의 큰 벽이 존재하는 것만 같았죠.
그녀가 어느날 케냐로 떠난다고 했을 때, 저는 그 벽이 무엇인지 깨달았어요. 내가 처음 사랑하게 된 그녀는 가난하고 부족한 자들을 향한 끝없는 사랑과 헌신의 모양이었어요. 그 사랑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였는데, 그것을 내게도 돌릴 수는 없었죠. 저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고, 사랑하는 방법보단 단지 사랑을 받고 싶은 작은 아이에 불과했던 것 같아요. 물론 저보다 세 살이나 더 많았던 별은 그런 저를 충분히 이해해 주었지요.
우리는 만남도 헤어짐도 아주 적절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이 커져만 가고, 최선을 다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다시금 그런 사랑이 찾아와줄까. 이제 다 커버린 내가 최선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나타날까.
처음엔 그녀를 만나 위로받고 싶었어요. 그간 살아온 삶이 얼마나 고되었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녀가 누군가를 도왔을 때 보였던 그런 사랑스러운 눈빛을 받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순간 깨달았어요. 나는 그녀로부터 그런 눈빛을 받은 적은 없었던 거에요. 그러니까, 그녀는 조금 다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는데, 이건 말로 설명할 수 있어요. 그건 사랑이었어요.
아주 오랜 시간 뒤에야, 그걸 알았죠. 그녀도 자신의 현실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나와 계속 함께 하고 싶으면서도, 삶이 주는 그런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걸 알았던거에요.
저는 그녀를 찾아서. 아주 많이 사랑했다고 말해야 해요. 제 사랑은 거기에 멈춰 있고, 그녀를 만난 이후에야 제가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것같아요.
당신이 말해준 산티아고 순레길은 사실 그녀가 언제나 좋아하고 동경했던 길이에요. 그녀가 지금 순례길을 어디쯤 걷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루 빨리 그녀를 찾아서 만나고 싶어요. 기적처럼 그녀의 소식을 아는 누군가가 길 위에 있기를.
고해성사같은 이야길 끝까지 읽어줘서 고마워요 B.M. 당신의 말처럼.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당신도 만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수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