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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나무 Jun 01. 2024

8. 오늘의 시작은 못난이 채소 박스였다.

채소박스를 정리하며 떠올린 여러 생각들을 옮겨봅니다.

2024년 6월 1일 토요일의 시작은 못난이 채소박스였다.


내가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보다 일찍 집 문 앞에 도착한 채소박스를 뒤늦게 일어나 열어봤다.

 

주문한 계기는 채소를 랜덤으로 소량으로 받아서 요리를 해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더 들어가자면, 편식처럼 편협하게 채소를 먹는 내 습성을 개선해 볼까 싶기도 했다.


또, 소량이 중요한 게- 채소는 소비기한이 짧은데, 계속 냉동고에 쌓아둘 의향도 없고, 남김없이 부담 없이!라는 포인트에서 중요하다. 특히 1인 가구는.

오늘 받은 채소박스를 공개합니다. 제가 구제한 못난이들이에요~호호


예전에 SBS에서 육식다이어트가 맞는지 채식 다이어트가 맞는지에 대한 다큐를 한 적이 있었다. 궁금해서 다큐를 꽤 열심히 봤는데, 결론은 허무하게도 육식이 맞다- 채식이 맞다- 가 아니었다. 결론은 '초가공식품'이 해롭다-였다.


마지막 편을 볼 때는 좀 짜증이 났다. 차라리 처음부터 초가공식품 얘기를 했어야 맞는 게 아닌가, 우롱당한 기분도 들고.. 그렇지만 육식의 장단점, 채식의 장단점을 한 번에 아울러서 들을 수 있는 계기도 되기는 했다.


초가공식품의 안에 가공식품이 있고, 초가공식품은 나의 첫 Chat GPT 사용 결과에 따르면, 아래와 같다. (드디어 챗GPT를 써봤어요!^^;)


"초가공식품은 식품 제조 과정 중에 일부 처리가 이미 이루어진 제품을 가리킵니다. 이 제품들은 일반적으로 요리나 조리 과정을 거치기 전에 소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자재의 세척, 다듬기, 채취, 혹은 필요한 재료의 섞기와 같은 단계가 이미 완료된 채로 판매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쁜 현대 생활에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초가공식품을 활용하며, 이를 통해 빠르고 간편하게 식사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척된 채소 패키지, 미리 다듬어진 고기, 혹은 소스가 추가된 조리용 재료 등이 초가공식품의 예시입니다."


초가공식품의 정의가 Chat GPT가 말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지는 잘모르겠다.


내가 아는 선에서는 초가공식품은 가공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식품들이나 가공이 된 식품 중 가공이 더 많이 된 식품이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즉석식품, 편리식품류 구나~ 생각해 볼 수 있다. 배달음식 중에도 있기도 하다.


어쨌든 이렇다고 해도 극한의 의지력을 가진 분들처럼 초가공식품을 아예 끊지는 못하겠고, 그냥 나의 수고스러움을 늘켜서 뭔가 해보겠다- 정도 생각하는 마음으로 채소박스를 시켰다. 막상 또 해 먹으면, 재미있을 때도 있고, 보람찰 때도 있다.


주부들은 대다수 겪는 일인데, 가족이 없는 빈 시간이 되면 뭔가를 해 먹는 걸 귀찮아하게 된다. 그 귀찮음의 시간을 더 편리한 음식을 먹거나 끼니를 걸러서 가족이 왔을 때 먹을 거리를 챙기게 되는 에너지를 얻는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아이러니다.


나도 갑자기 1인 가족이 되고, 더더군다나 의욕이 없으니 식사에 도전을 받았다. 조금씩 노력해서 우선 매일 3끼는 뭐가 되든 먹고 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처음으로 시금치와 콩나물을 사서 잡곡밥을 지어먹은 게 불과 몇 주 되지 않은 이야기다.


그날을 기점으로 조금씩 요리를 해보고 있다. 그리고 싱글인 친구들과 정보를 공유하다 보니 요새는 1인을 위한 레시피나 도구가 많이 생겼다. 예를 들면 다이소 전자레인지 찜기나, 1인용 솥밥 키트 같은 것들이다. 찜기에 차돌박이, 숙주, 각종 채소를 넣고 쪄서 먹으면 그걸로 되는 것이다.  


보다 보니 그냥 내가 좋아하는 채소들만 먹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인스타그램 광고에 낚여 못난이 채소를 소량으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처음 구독해 보았다. 오늘은 그 1일 차 박스의 도착이다.


처음 도착한 채소들 중에 내가 잘 안 먹는 건 상추와 완두콩이다. 기본 구성에 고구마가 있었는데- 남편 생각이 나서 넣을 수가 없었다. 췌장에 고구마가 좋다고 해서 얼마나 쩌먹었는지 모른다. 나중에는 남편이 질려할 정도로 쪄먹었다.


가끔 요리를 하거나 음식이나 식당을 만나면, 유달리 미식가처럼 먹는 데에 진심이고 먹는 데에 낙이 있었던 남편 생각이 난다. 그래서 나도 남편과 살면서 인생에서 본 적이 없는 몸무게를 만나고, 결혼 전에 입었던 바지들을 보내줘야 하기도 했다.


잘 먹는 나를 보면서 흐뭇해하던 남편을 생각하면, 왜 그 시간들이 더 주어지지 않는 걸까.라는 생각이 마음에 고개를 내민다.


어쨌든, 내가 이번 채소 박스에서 잘 안 먹는 건 상추와 완두콩이다. 상추는 그냥 좋아하지 않는다. 완두콩은 좋아하는데 손이 많이 가서 잘 못 먹었다.


완두콩이 제철 음식이라고 하니, 이번에 잘 쪄서 마요네즈에 버물려 먹고, 밥 위에 얹어서 먹고 해 봐야겠다.


옛날 소싯적에는.. 작고한 고 최진실 배우가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 남편의 하얀 쌀밥 도시락에 완두콩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낸 게 유행이었던 때가 있었더란다.


상추는 뭐가 됐든 입에 욱여서라도 먹어볼 예정이다. 소량이 왔으니 눈 딱 감고 3-5번 먹으면 될 것이다.


며칠 전에는 꿈에서 울더니, 그 눈물이 발끝에서 어깨 아래까지 찰방찰방 차 있었다. 그냥 일어나서 햇빛을 보고 할 일을 하다 보면 가실 줄 알았다.


외출해서 사람을 만나 일을 처리하고, 5월의 햇빛이 내리는 거리를 꽤 걸어서 집에 왔음에도 그 찰방찰방 차있는 눈물이 가시지가 않았다.


집안일을 하고, 재밌는 드라마도 보고, 전화 통화도 하고, 밥을 먹고, 저녁 늦게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답답함이 가시지 않아 저녁 바람을 맞으며 아파트를 한 바퀴 돌았다. 어둑어둑한 거리에 빨간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 뛰어다니는 아이들, 운동하는 어른들로 아파트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


이윽고 툭. 그 흐드러진 장미꽃을 보는데 눈물이 어깨를 넘어 목을 지나 눈에서 흘러나왔다.


그냥 나오는 눈물을 쓱쓱 손으로 대충 비벼 닦고, 콧물이 나오니 후줄근한 나의 일상복으로 대충 닦아냈다. 눈물이 양파 같다는 생각을 했다.


까도 까도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어쩌면 속이 한결같은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그럴 때 양파 같다는 표현을 쓴다.


근데, 눈물이 양파 같았다. 눈물에 겹이 있어서, 층이 있어서 꿈속의 눈물의 겹을 흘려서 떼어내면, 다시 오전의 눈물의 슬픔의 겹을 또 만나고, 다시 저녁의 새로운 겹을 만나고, 밤에 또 새로운 겹, 새로운 결의 눈물을, 슬픔을 만나는 것이다.


그렇게 온종일 그 눈물을 담고 살았더니 밤에는 두통이 와서 약을 먹고 잠에 들었다. 아마도 며칠 괜찮았다고 생각한 날들 속에 그 눈물과 슬픔이 어디선가 숨어있다가 이렇게 예고 없이 양파가 되어 하루 종일 나를 찾아온 것 같다. 


하루 종일 까는 양파가 되었다- 그날의 눈물은.


다음날은 또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이 아픔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남편의 부고를 전하다 남편과 내가 아는 분이자, 아내를 병으로 사별한 그분이 내게 한 말이 생각났다. 남겨진 자의 몫을 잘 견뎌내시길 바란다고.


이 말은 그때 내가 들은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가장 큰 울림이었다. '남겨진 자의 몫'을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조심스레 그분이 같은 경험을 한 사람으로서 내 마음을 헤아려 본다고 하시면서 말한 그 짧은 문자의 말은 이제 내가 감당해야 하는 그 무엇의 실체를 정확히 간파한 말이었다...


그 남겨진 자의 몫을 감당하며- 오늘집에 온 채소박스를 활용해 1주간 열심히 초가공식품을 줄이며 부엌에서 꼼지락 해 보아야겠다. 우린 힘을 내어야 한다. 나는 힘을 내어야만 한다!


(광고글도 아니고, 어디서 후원을 받는 것도 아니며, 나는 변심이 있는 체리피커 같은 소비자이기에- 혹 주문한 어플이 궁금하시다면, 어글리어스 입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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