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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나무 Aug 22. 2023

28. 고통에 맞서는 허리 굽은 양초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그리고 고통에 관해.

매번 망설이다 하지 못하는 일이 하나 있다. 어쩌면 귀찮아서- 다음에 하면 되지- 싶은 건지도 모른다.


남편의 치료 진료실로 가는 길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접수처가 있다. 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내가 미루고 있는 그 일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단순한 내 생각의 언어로 말하자면, 나중에 더 이상의 의료행위가 의미가 없을 때는 치료를 중단해도 좋다는 나의 의사를 미리 전달해 두는 것이다. (알아보고 싶으신 분은 글 제일 하단에 링크로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의외로 접수처가 많다. 병원, 주민센터, 인터넷 등 마음만 먹으면, 19세 이상이라면 할 수 있다. 시어머님의 임종을 겪어보고 나니, 다른 사람에게 선택의 무게를 전가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어서 나는 미리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님이 응급실에 가시던 날, 갑작스러운 폐암의 전신 전이라는 임시결과를 듣고, 우리 모두는 그 상태 그대로 대기모드가 되었다.


모두가 밤을 지새울 순 없어, 교대를 하기로 하여 내 차례에 들어가게 되었다. 잦은 기침으로 어머니는 호흡도 어려우셨고, 그 결과 잠을 주무실 수도, 물 조금 넘기는 것도 어려워하셨다.


우리는 어머니가 충격받으실까 봐 "폐암"이라는 그 단어를 입에 올리지 못했다. 조직검사 전이니, 우리도 좀 더 명확해지기 전까지 괜한 이야기로 어머님을 힘들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다.


어머님은 나에게 "제발 암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계속 말씀하시며, 많이 불안해하셨다. 어머님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었다. 마음이 편하셔야 지금을 잘 이겨내실 것 같았다.


"어머니, 어머님 하나님 믿으시니 돌아가셔도 천국 가실 거고, 혹여 암이더라도 치료받으시면 나으실 텐데 뭐가 그렇게 두려우세요?". 잠시 생각하시던 어머니는 내 얘기에 수긍하시다 말씀하셨다. "나는 아프고 고통스러운 게 싫어."


바로 "고통" 그게 어머님을 힘들고 두렵게 하는 존재였다. 그렇지만 그 고통 가운데서도 어머님은 살고자 하셨다. 어머님은 단 며칠이었지만, 정말 잘 견뎌내어 주셨다.


그러나 너무 급작스럽게 임종이 찾아왔고, 코로나 조치로 어머님 곁에 갈 수 있는 인원에 제한이 생겨 우리는 교대로 어머님을 뵈러 병실로 찾아가게 되었다.


새벽의 한산한 병원 로비에서 우리는 그렇게 제대로 어머님을 뵙지 못하고,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앉아있었다. 병실로 올라간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의료진이 어머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해 달라 그러는데, 어떻게 하면 좋지?" 그때 어머님은 응급처치로 임종 직전에서 나오셨지만, 안의 내장기관에서 알 수 없는 출혈이 계속되어 수혈로 간신히 혈압을 높여 맥박을 만드는 상황이었다.


여러 상황이 의료진에게 어려움이라는 빨간불이 켜져 있었고, 결국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남편의 손에 들려지게 된 것이다.


어머님을 계속 살아있게 하고 싶은 아들의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더구나 남편은 지금 췌장암 4기 환자인데 이 힘듦을 감당하는 지금의 현실은 무슨 드라마 인가 싶었다.


내 머릿속에 응급실에서 한 어머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어머님, 응급실에서 나에게 아프고 고통스러운 게 제일 무섭고 힘들다 하셨어. 의향서 사인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오빠가 잘 생각해서 결정해."라고 답해주었고, 남편은 무거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내 뒤에 남은 사람이 누구이던 그게 가족이던, 의료진이던 내 인생의 마지막 길의 선택의 무게를 타인에게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사람이어도 죽음은 잠시라도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래서 그 의향서를 작성할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는 미루지 말고 해 놓아야겠다.  


한편으로는 이건 몸이 정상이고 비교적 어려움이 덜할 때 신청할 용기가 나는 것 같다. 지금 내 남편이나 남편을 비롯한 환자가 이걸 신청한다면, 옆의 보호자나 가족들은 분명 슬플 것이다. 왠지 자신을 먼저 포기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현재 아프지 않은 내가 하지만, 남편은 적어도 다 나은 다음에 했으면 좋겠다. 만약 남편이 죽음의 사선을 넘나 든다 해도 그냥 남편이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냥 남편이 하는 건, 지금은 그냥... 싫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서 더 확장하면, 장기기증부터 상조가입, 더 나아가 존엄사까지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내 마음에 그 어떤 걸 선택할 마음의 용기도 알아볼 마음의 용기도 나지 않는다.


잠시 그날들을 떠올리다 보니, 고통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고통"은 여러 형태의 고통이 있다. 그리고 그 고통에 반응하는 "역치"- 그것도 사람마다 다르다.


무엇이 그 사람에게 그토록 피하고 싶은 고통일까.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는 한 알 수 없을 것이다.


남편의 암통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마약"이란 걸 접했다. 남편은 그 마약에 손대지 않으려고 기존 진통제로 버텨보려 했지만, 간수치의 우려가 있어 결국 마약성진통제로 옮겨가게 되었다.


처방을 받을 때도 아무 약국에서나 처방이 되지 않는다. 마약성진통제를 다룰 수 있는 허가를 받은 약국만 취급하고, 원내약국서 처방받을 때도 좀 더 꼼꼼히 받게 된다. 많은 환자들이 되도록 견딜만하면 마약성 진통제를 피해보려 노력한다.


환자고 아픈데도 "마약"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아서, 먹을 때 되도록 용량을 증량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안 먹고 안 쓰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근데, 세상은 참 이상하다. 여태껏 역사 속에서 나라를 망칠 정도로 해악의 정점에 있는 그 마약을- 그렇게 견딜 수 없는 신체적 고통의 암환자도 피해 가려는 그 마약을- 호기심에, 쾌락에, 혹은 도피처로 사용하려 한다.


무엇이 진짜 고통일까? 고통에 대해 진지한 생각이 든다.


바뀐 항암제는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밥을 예전처럼 먹는데도- 이것만 해도 참 기적인데, 아직까지 메슥거림은 있어도 구역은 없는데- 그런데도 몸무게가 빠진다.


오늘로 첫 시작보다 8kg이 빠졌다. 이건 다른 유형의 악액질인가 싶다. 그리고 남편이 처음으로 말했다. "이걸 어떻게 계속 맞지?" 전에 항암제는 그래도 견딜만했는데, 이건 달랐다. 식은땀을 흘리고, 기운이 없고, 속은 메슥거리고, 어떤 날은 어지럽기까지 하고, 변비마저 찾아왔다.


더 힘들게 하는 건, 알 수 없는 통증이 24시간 생겼다는 것이다. 마약성 진통제를 먹어도 그 통증은 잦아들지 않아, 남편은 일어서고 앉는 것조차도 힘들어한다. 누워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그래도 남편은 견딘다. 버틴다. 무너지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이 사람에게 고통은 본인이 아니라 본인이 걱정하는 가족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유전자검사를 의뢰했는데, 지난번 제출한 슬라이드는 훼손되고, 집에 보관해 두었던 여분 슬라이드는 충분한 암세포양이 모자라 검사가 반려되었다.


다시 하려면 조직검사를 다시 시행해야 하는데, 리스크가 있어 정말 내성이 생기기 전까진 진행하기 어렵게 됐다. 그리고 그 외에 좀 듣기 힘든 이야기들을 진료실에서 듣고 나왔다.


몇 주전에는 여태껏 간에 전이가 있다는 것만 알았고, 그 크기를 몰랐는데, 우연히 크기를 알게 되는 일도 있었다.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 근데 여태까지 영상의학과 리포트에서 보지 못한 크기 정보를 알게 되니 그냥 할 말이 없어졌다.


이런 유형의 고통은 뭐라고 말해야 할까? 신경안정제를 한 알 목구멍에 밀어 넣고 밀려오는 눈물을 저 뒤로 보내려는 나는 뭐라 해야 할지 모르는 이 고통에 잘 대응하고 있는 걸까?


얼마 전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내가 길쭉한 하얀 양초가 된 것 같았다. 그저 기운이 빠져 의자에 눌붙은 허리가 굽은 양초이다.


계속 '좌절'이라는 불에 나는 계속 데려가진다. 그 불은 나를 녹인다. 심지에 불이 심지에 붙어서 세상을 밝혀야 할 양초는 왜 허리가 굽고, 촛농을 떨어뜨리며, 그대로 그 자리에 녹아 늘어지고 있는 걸까.


그런 지금 나에게 고통은 희망을 가질 때마다- '날 좌절시키는 현상들'이다. 혹시-현상들은 지금 정말 바라봐야 할 그 무엇을 보지 못하게 내 눈을 가리우는 것은 아닐까?


현상 너머 내가 봐야 할 진짜 그것을 보고 싶다. 좌절의 먹구름 너머에는 찬란한 햇빛이 비치는 아름다운 하늘이 있을지 모른다. 아니 있을 것이다.


다시 굽어진 허리를 펴고 양초는 자리에서 일어나 본다. 고통에 맞서는 양초를 일으키는 그 힘은 현재 '의지'이다.



* 참조. 연명의료결정제도: https://www.lst.go.kr/decn/enactment.do

* 참고. 나중에 남편에게 전해 듣기로는 사인하기 전, 연명치료 대상자가 생전에 이에 대해 어떤 의사를 가지고 있었는지 의료진이 확인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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