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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나무 Aug 22. 2023

29. 희망과 현실 사이

좌절. 인내. 의지.- 희망과 현실의 간극을 채우는 것은 무엇일까?

난 어찌 보면 생각보다 잘 견뎌왔다. 여린 나 치고는 생각보다 잘 견뎌왔다.


그 이면에는 남편이 생각보다 고통이 크지 않았고, 남편이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보호자인데도, 사실 환자가 보호자를 지탱해 주는 그런 삶이었다.  


어제는 병원 공원 벤치에서 그렇게 혼자 앉아 펑펑 울다왔다. 이젠 누가 봐도 신경도 안 쓴다. 창피한 것보다 민폐일까 봐 그게 더 걱정인 레벨이다. 그 순간 우는 것 밖에는 내 마음의 응어리를 풀길이 없었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그렇게 돼버렸다.


옷을 예쁘게 입고 간 걸 후회했다. 땀이 차고, 더운 바람이 불고, 눈은 붓고, 소리도 지르고. 병원에 있다 보면 가끔 한두 명 이런 사람 본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그래도 보기에 별로 좋아 보이진 않는 건 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살고 볼일이라 몇 분이라도 이기적 이어 본다.


남편이 내성 판단이 생겨 폴피리녹스로 바꾸게 되었을 때, 나는 내 마음이 꺾이는 소리를 들었다. 가까스로 마음을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견뎠다.


그러다 지금은 용량이 낮은 마약성 진통제이기는 하나, 그 진통제로도 남편의 통증이 잡히지 않는 게 힘이 들었다.


운동을 하고 싶어도 집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게 힘들고, 걷는 것도 허리를 부여잡고 쉬었다 걸어야 한다. 그 와중에 양쪽 발톱도 계속 알 수 없는 진물이 나서 신발도 양말도 불편하다.


거기에 더해 배도 아프고, 기운도 없고, 살은 빠져서 누가 봐도 야위었다. 겪고 있는 남편의 마음은 오죽일까 싶은데, 지켜보는 나도 방법이 없는 이 현실에 마음이 아팠다.


지난번 진료 때, 스치듯이 뼈전이 얘기가 나왔는데, 그게 가장 정점으로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게 아니면 림프 전이암이 커진 것, 그게 아니면.. 가장 안전 보루인 요로 결석.


요로 결석에 순위를 두고 검진을 받았는데, 어제 그게 이 통증의 원인이 아니라고 비뇨기과 답변을 들었다. 그게 어제 내가 펑펑 운 이유이다.


남편은 그렇게 까지 내가 걱정하는 그런 문제가 아닐 거라고, 의사가 아닌데 진단하지 말라고 화를 내고, 나는 나대로 나쁜 얘기들을 알아본 게 있어서 화를 낸다.


이게 서로 화 낼 일은 아닌데, 불확실한 고통에 대해 마약성 진통제가 들지 않는 고통이 결국 그냥 다투지 않아도 될 일을 다투게 한다.


결국 남편을 집으로 먼저 보내고, 난 병원에 남아 그렇게 울고 있다. 그나마 병원 내부는 아니니, 조금은 덜 창피해도 되겠지 하며.


답답한 마음을 말하고 싶은데, 나와 남편을 아끼는 사람들에게는 걱정만 끼치는 거고, 좀 덜 아끼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징징대는 것으로 밖에 안 보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얘기 듣고 싶지 않을 거다.


자신의 삶도 바쁘고 괴로운데 남의 아픈 얘기- 해결도 안 되는 얘기 어쩌면 재수 없다 여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 말해도, 해결은 안 난다. 그리고 내 마음도 결국 편치 않다. 결국 신의 영역이다.


 '왜 계속 나아지지 않을까?'. 같이 췌장암 4기를 겪는 사람들 2-3년 사이에 거의 다 이 세상에 없다. 나는 나와 남편에게 내년이 있는 걸까?라는 참 나쁜 생각도 한다. 안다.


치료의 목적은 의사 선생님이 정확히 얘기해 주셨다. '삶의 질 향상과 기대여명 연장'. 완치를 기대하는 췌장 4기는 바위에 계란 치기다. 나도 의사 선생님에게 왜 우리는 낫지 않나요?라고 물어보지 못한다.


완치를 바란, 기적을 바란 내 마음이 참 순진하고 바보 같아 보였다. 그런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줘보겠다고 글을 썼고, 발행했다. 정말 거짓말 바보 행진이다.


내가 너무 기적을- 완치를 - 눈에 금방 볼 듯 너무 간절히 바란게 문제였었던 것 같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어렵다. 그래서 지금의 현실이 내 맘 같 않으면 화가 나고 억울한 거다.


남편은 꾸준히 지금의 길을 가고 있다. 뭐라고 말해도 잘 흔들리지 않는다. 그냥 아프면 아픈데로 견디고, 내가 보호자인 게 힘들어도 그 보호자 끌어안고 그냥 하루 밥을 같이 먹어준다.


남편은 나름대로 정한 치료의 한계가 있다. 난 가끔 남편이 말할 때마다, 그렇게 원하는 때에 원하는 일이 생기지 않으면, 그때는 나는 남편을 어떻게 해야 하나 가끔 그 한계를 들을 때마다 덜컥 덜컥한다.


나는 왠지 지금 이렇게 꺾여도 남편을 끝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다.


야윈 남편을 뒤에서 살포시 안아본다. 내가 이모양이라.. 정말 미안하다. 근데 나를 숨기고 남편에게 있을 수가 없다. 우리는 24시간 함께 하니까. 결국은 내가 힘내야 하는 것 그게 내 숙제다.


희망과 현실 사이에 간극이 커져버렸다. 간극에 좌절이란 게 생겼다. 그래도 메꿔야 하는 건 우리의 하루하루다. 남편의 치료는 성과가 아니다.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하선할 수 없는 이 배에서 생존하는 방법은 '인내'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며칠씩 굶어도 망망대해의 거친 파도 속에서 끝에는 아름다운 정박지가 나타나거나, 누군가 우리를 구조해 주러 올 거라고 그냥 믿는 수밖에 없다.


'인내','의지'. 두 단어를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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