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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나무 Sep 11. 2023

30. 종양표지자 CA19-9

서스펜스 같았던 종양표지자 이야기

'스릴러'와 '서스펜스'의 차이를 아시나요? 나무위키에 따르면...

서스펜스(suspense): 어떤 상황에서 불안하고 긴장되는 조마조마하며 화끈거리는 불안정한 심리, 또는 그런 심리 상태가 계속되는 모습을

그린 작품 혹은 연출 기법을 말한다.
스릴러(Thriller):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긴장감을 일으키는 장르를 의미
서스펜스는 긴장감은 있지만 심리적인 긴장감이고 스릴러는 액션과 뒤섞인 긴장감이다. 이 두 개의 장르를 합치면 서스펜스는 스릴러가 주는 하나의 효과이다.


이번에는 '종양표지자(tumor marker)'를 아시나요? 해양과학용어사전에 따르면...

체내에 암세포의 존재를 나타내는 물질. 이러한 표지자는 대개 종양 종류에 특이적이며 혈액 혹은 조직 시료에서 발견.


내가 종양표지자를 제대로 인식한 건 남편의 췌장암을 겪으면서였다. 췌장암에서 주로 확인하는 종양표지자는 2개인데, 'CA 19-9'와 'CEA(암태아성항원)' 2가지이다.


혈액검사를 통해서 확인 가능하고, 일반 건강검진에서 종양표지자를 확인할 경우, 검사된 수치가 정상 범위보다 높을 때, 정밀 검사를 받으라는 소견을 준다.


보통 CEA는 일반 건강검진 대상은 아닌 것 같다. 우리의 경우 암으로 확정된 이후 추가된 종양표지자가 CEA였다. 남편은 CA19-9가 처음 조직검사받았을 때를 제외하고 한 번도 정상범위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지금도 그렇다.


그러니 췌장암 의심 소견이 적었을 수밖에 없다. 종양표지자 검사는 블로그의 여러 글들을 종합해 본 결과, 유독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가장 많이 검사하는 항목이라 한다.


그러나 정확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래도 무시는 할 수 없다는 게 대체적 의견이다. 특히 암환자에게는 치료 경과를 살피는 척도로 많이 사용되는데, 증가 추세가 나타나면, 그건 좋지 않은 시그널이다.


남편도 이번 내성 판정을 받을 때, 정상범위 안에 있지만(CEA제외) 두 지표가 3번 연속 증가세를 나타냈다. 여기에 CT판독과 다른 혈액 검사 내용을 종합하여 최종 내성 판정을 받았다.


주기적으로 받는 산부인과 검진에서 의사 선생님이 CA19-9가 계속 상승하고 있다고, 산부인과적 원인이 아닌 것 같으니 소화기내과에서 확인해 보라고 진료 의뢰를 주셨다.  


가슴이 '턱'하고 막히는 걸 느꼈다. 그러고 나서 그제야 나의 과거 이력을 조사해 봤다. 이렇게까지 내가 내 자신에 대해 관심이 없었구나- 했다.


내 CA19-9 수치는 5년 전 기록부터 정상범위 안에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CA19-9는 자궁근종에 의해서도 상승할 수 있어서, 그냥 산부인과 문제려니 하고, 산부인과 재검을 받으면 악성종양 소견이 없어서 늘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즉, 대수롭지 않게 여겨 나는 수치를 꼼꼼히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남편 때문에 CA19-9의 세계에 눈을 떠버린 나는 산부인과 문제가 아니란 말에 나까지 남편과 같은 질환으로 아픈 걸까?라는 공포에 휘말렸다. 이것이 CA19-9 서스펜스의 시작이다.


우선 남편이 상황이 좋지 않았고, 남편도 가까운 가족도 걱정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내 고민은 꿀꺽 삼키고 최대한 말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한편으로는 별 일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병원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겁이 나서 또 눈물을 또르르 흘렸다.


남편이 늘 '너라도 건강해야 한다'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호자도 건강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말은 들었다. 그러나 나는 실제로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온 신경이 남편에게 가있었다.


아무리 아파도 췌장암 4기 앞에서는 아픈 게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남편을 돌보고 잘해줄 수 있는 체력이 있다면, 나머지는 그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아무리 해도 나에게 신경이 가지 않았다. 모든 건 급하지 않은 문제들이었다. 그리고 요 근래 들어 남편이 여러모로 힘든 통증들이 생겨서 사실 나의 아픔보다 남편의 아픔을 보는 게 나에게는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남편이 낫는다면, 나의 문제들은 그냥 해결될 것만 같았다.


집에 돌아와 평소와 같이 지내면서, 소화기 내과 진료 일정을 기다렸다. 불안이 솟구쳤다. 남편은 정상범위여도 암인데, 나는 정상범위 밖인 데다, 수치가 생각보다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내가 만약 남편과 같은 암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까.... 그때 나는 내 마음의 밑바닥을 봤다. 까맣고 끈적이는 잉크로 뒤덮인 말라붙은 내 마음의 밑바닥을 보았다.


나는 내 삶에 미련이 없었다. 치료에 희망이 없었다. 그렇게 남편과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 모습이 긍정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듯했지만, 정작 지금 상황에서 나 자신의 문제로 다가왔을 때 나는 치료받지 않고  삶을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쩜 이렇게 무서운 생각을 쉽게 하고 있는지 새삼 나 자신에게 놀랐다. 나의 밑바닥은 이런 것이구나. 힘없이 축 쳐져 있는 내 마음의 바닥을 봤다.


소화기 내과 1차 진료에서는 우선 혈액에 뭔가가 있으니 종양표지자에 반영됐을 거라 정확한 확인을 위해 검사를 진행하자 했다.


그리고 그렇게 높은 수치는 아니지만 증가 추세에 있다는 건 체크가 필요하다는 것에 선생님도 의견을 같이 하셨다. 곧 복부- 폐 CT, 혈액검사, 대장내시경의 일정이 차례로 잡혔다.


의사 선생님께 여쭤봤다. 이렇게 정상범위 밖의 수치로도 그냥 암이나 큰 질환이 아닌 채로 잘 지내는 사람들이 있는지. 의외로 많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 경우도 혈액 검사로 추적을 주기적으로 해야 하고, 만약에 이번 검사들에서 뭐가 나오지 않는데, 혈액검사가 또 CA19-9가 증가한 경우는 PET-CT를 추가 진행해서 더 찾아봐야 한다고 하셨다.


결국 24시간 나와 동행하는 남편에게 숨길 수 없어, 사실을 얘기했다. 그리고 아픈 남편에게 나의 그 시커먼 마음도 솔직히 말해주었다.


만약에 암이 아니면, 내가 남편보다 더 오래 열심히 건강히 살겠노라는 단서를 붙여가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남편도 치료받는데, 나까지 항암 치료를 비롯 여타의 치료를 받으며 투병할 마음이 없었다.


암이 하루 이틀에 낫는 것도 아니어서 더더군다나 둘이 세트로 아픈 건 나로서는 감당이 안 됐다. 아마 서로 몸이 불편해 부딪힐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재정 부담도 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믿음이지만, 난 남편이 꼭 나을 것만 같다.


그래도 현실을 보면 남편이 늘 사라질까 봐 가만히 남편의 모습을 매일매일 눈에 담고 간절히 바라보지만... 그래도 기저에는 알 수 없는 믿음이 있다. 그냥 남편이 꼭 나을 것만 같다. 이유는 모른다.


나는 사실 골골대며 잔병치레를 너무 많이 했다. 나의 정신력으로는 그 상황도, 치료의 과정도 감당이 안될 것 같았다. 가족들에게 미안하지만, 그런 일이 지금 생긴다면 그냥 나는 포기하고 싶었다.


암이 내가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게 아니란다면, 치료까지는 나의 선택이 가능한 영역이라 생각했다. 가족들을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살아남은 남편에게는 우리 부모님이 남편의 부모님이 되어주셨으면 했다. 우리 부모님은 그래주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단, 이게 췌장암이나 여타 암이 아니라면, 내가 끝까지 남편 잘 간호하면서 건강히 남편보다 앞서 세상을 뜨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지나친 극단의 생각에 어찌 보면 우울증 증상 같기도 했다. 어쨋든 생각이 거기까지 갔다. 


이 얘기를 듣는 남편의 마음은 잘 모르겠지만, 남편은 너는 분명 아무 일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 외의 얘기는 그렇게 말하고 믿는 남편에게는 나의 그냥 푸념이다. 남편은 그냥 넘기는 방향을 선택했다.


남편에게 미안해서 검사를 혼자 다녀오려고 했는데, 남편이 굳이 모든 검사와 진료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같이 검사를 다니는데, 이게 뭔가 했다. 더 아픈 사람에게 덜 아픈 사람이 보호받는 이 상황은 뭔가 했다. 남편에게 너무 미안했다. 내가 건강하지 못해서, 연약해서 너무 미안했다.


그 와중에 나는 몸이 몇 군데가 더 아파왔다. 짜증이 나고, 몸이 체력이 받치지 않아 잠이 더 많아졌다. 다른 건 뭐 그렇다 하겠는데.. 허리디스크의 재발이 제일 불편했다.


남편은 지금 24시간 허리와 복부 통증으로 계속 불편한 상황인데, 나도 허리와 복부가 같이 불편했다.


결국 짐 하나 움직이는 것도 구부렸다 일어났다 하는 동작도 우리는 이제 40대인데, 꼬부랑 부부가 되어 어찌 보면 웃기고 어찌 보면 서글프게 서로가 짐을 들어주려 하고 집안일을 더 도와주려 해 본다. 그러다 보면 도와주는 쪽의 꾸부린 아픈 동작이 눈에 들어온다. 그랬다..


여기에 하나 더 서스펜스가 들어왔는데, 남편의 항암 중간 평가 대비 혈액 검사에서 종양지표자가 1개만 의뢰가 갔는데, 여태 보지 못한 역대급 수치가 들어왔다. 결국 CT결과를 미리 들을 용기가 생기지 않아 다음 진료일까지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미리 나쁜 결과를 대비해 액션을 취할까 했는데, 뭘 준비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아는 보았지만, 이상하게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우선은 종합 진단을 들을 때까지 그냥 마음을 졸이는 서스펜스를 선택했다.


그래도 희망이 있기를 기도 하면서-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이 무척이나 졸아든다.


며칠 전, 나는 병원에서 소화기에는 아무 이상이 없고, 혈액검사 결과상 CA19-9 수치가 정상범위는 아니지만, 줄어들었다는 의견을 받았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소화기내과 추적검사를 받게 되었다.


남편이 내 대장내시경 사진을 같이 봤는데, 용종 하나 없이 깨끗한 장을 보니 남편도 안심하는 것 같았다.


"거봐, 내가 아무 일 없을 거랬지?" 남편이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의기양양한 그 모습 너무 보기 좋다. 남편이 기뻐해서 좋고, 내가 남편보다 더 열심히 오래 살거라 했으니 나는 그 약속을 이제 지켜야 해서 더 좋다.


만약 남편이 건강한데, 내가 갑자기 암에 걸렸다면, 난 치료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고난도의 암과 싸우고 있는 남편과 같이 아픈 건.. 그것도 같은 계열의 암이라면, 난 감당할 힘이 없었다.


그래도 내가 내 삶을 그렇게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 했다. 내 삶이 남편 하나로 세워지는 것도 아닌데, 왜 난 그렇게 쉽게 포기할 생각을 했을까?


실제로 정말 그렇게 됐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겠지만.. 아마 먼저 든 생각이 가장 내 진심이었을 것이다. 난 왜 가족들도 남편도 포기하지 않는 내 삶을 내가 포기하려 했을까.


만약 내가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난 나 자체로 일어날 힘이 없는 걸까. 내 삶은 그렇게 깃털같이 가볍게 여겨졌던 것일까.


글을 쓰면서 자살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 은둔형 외톨이가 된 사람들의 마음을 같이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포기'라는 단어가 있다. 해결책이 없는 마치 거미줄에 걸려 둘둘 말려 언제 거미의 식사감이 될지 모르는 옴짝 달짝할 수 없는 그 상황이 있다.


여기가장 필요한 건 "마음의 힘"이 아닐까 생각. 그 마음의 힘이 거미줄로 보였던 그 무엇을 쉽게 뚫고 나갈 그 무엇으로 다시 볼 수 있게 해줄 것 같다. 내가 거미의 먹이감이 되지 않게 그 상황을 헤치고 나갈 그 무엇이 되어줄 것 같다.


스스로 마음의 힘이 내어지지 않아 정신과 약물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상담을 통해 내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다른 각도로 내 마음을 조명해보기도 한다.


모두 힘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참 힘들고 어려운 세상이지만, 태어났을 때는 분명히 그 사람에게 주어진 몫의 삶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난 그렇게 믿는다. 나 자신도 그러하리라 믿는다.


돈 한 푼 못 벌고, 다른 사람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도, 그게 그 사람을 정의할 수는 없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우주론적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구성요소로서 당신이 있어야 해서 태어났다고 말해볼 수도 있겠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당신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요 근래의 일을 겪으면서 내가 생각한 가장 긍정적인 답안은 바로 위에 쓴 그 두 가지 생각이었다. '포기'는 도망치거나 피하려고 할 때 발생한다.


세상에 쉽고 좋은 일은 사실 그다지 많지 않다. 그렇지만 사람은 그 가운데서 뭔가를 계속해서 해내어왔고, 계속 생존해 왔다.


너무 많은 부정적인 정보가 우리의 뇌와 눈과 귀를 사로잡을지라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삶의 야성을 회복해야 한다. 거친 본능으로 계속 살아나가야 한다.


그 거친 본능을, 그리고 삶에서 기쁨과 감사를 잘 발견하는 그 마음이 있다면 분명 마음의 힘이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가끔은 이 시간들이 모래가 바람에 날려가듯 기억 속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시간들이 있다. 그럼에도 씨실과 날실로  시간들마저 같이 짜여져서 마지막에는 내 인생의 그림이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내 인생 마지막에 그려진 그 그림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지금 보호자인 분들이 자신의 마음 건강과 몸건강 소홀히 하지 않으시길.. 실천을 못하고 있는 한 명의 보호자지만, 그래도 당부드려 본다.



이 글을 쓰기에 앞서 어디까지 솔직해야 하는가 생각했습니다. 안 쓰고 제 마음 감추면 그만이지만, 검은 제 마음을 솔직히 얘기하면서 비슷한 마음을 가져본 분들에게 같이 힘든 생각을 해 본 사람이 여기도 있다고 얘기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연약한 마음 여기 하나 더 있다고 얘기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저는 노력해서 제 마음의 방향을 선회해 보았노라 고백합니다.


더 어렵고 힘든 상황에 놓인 분들이 더 많으신 것 압니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한 발짝씩 걸음을 내딛을 힘이 생기시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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