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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나무 Sep 15. 2023

31. 언박싱(unboxing)

모든 언박싱이 좋을 수만은 없지만, 앞으로의 삶의 언박싱은 좋기를..

얼마 전 남편이 노트북을 새로 사줬다. 전에 쓰던 노트북은 사양이 오래돼서 여러 경고 문구를 계속 받고 있었다. 남편이 바꿔주겠다고 몇 달 전에 말했는데,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러다 할인 기간 막차를 타고 바꿨다. 요새는 새로 산 전자기기를 사용하려면 공부가 필요하다.


나를 대신해 남편이 유튜브를 보고 공부해서 내가 쓸 수 있게 세팅해 주었다. 스마트 TV로 유튜브 영상 음성 검색을 했더니 우리의 발음을 알아듣지 못했다. "북쓰리"라고 발음하자 - "복슬이"로 계속 알아들었다. 결국 혀를 한껏 굴려 "북 뜨뤼~"라고 하자 그제야 알아들었다. 그래서 지금 내 노트북의 이름은 "복슬이"가 되었다.


복슬이가 집에 오고 나는 한동안 박스를 뜯지도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사실 구매를 망설였던 건, 이 노트북이 남편의 마지막 선물이 되어 남을까 봐.. 그러면 정말 노트북을 어떻게 봐야 하나 싶었다.


결국 구매했지만, 그게 마냥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없었다. 남편에게 세팅을 해달라고 미루었다. 남편이 보호필름을 씌워야 할 것 같다며 본인 혼자 다녀오겠노라 했다. 나는 나랑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러나 남편이 혼자 금방 다녀오면 될 일을 왜 그러냐고 너무 걱정한다고 했다. 그제야 또 눈물이 또 났다. "혼자 가지 마. 나랑 같이 가. 혼자 가지 마..."


그제야 이 노트북을 선뜻 못쓰는 내 마음이 남편 앞에서 언박싱되었다. 남편은 나를 토닥토닥해 주고는 결국 혼자 가서 필름을 붙여서 가지고 왔다. 이제는 곳곳에 남편의 손길이 다 묻은 이 노트북이 더 무거운 무게로 나에게 안겨졌다. 복슬이를- 비록 아무 감정 없는 전자기기지만- 잘 지내야겠다.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엔 남편의 CT결과도 언박싱되었다. 나쁜 예고편들이 몇 개 있어서 혹여 나쁜 얘기를 듣더라도 마음을 굳게 다잡고 갈길을 가자고 다짐에 다짐을 했다.


그렇지만, 의사 선생님 입에서 흘러나온 얘기는 내가 예상한 나쁜 얘기보다 좀 더 나빴다. 남편도 선생님의 판단과 결정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얘기들이었다. 요약하자면, 암이 더 커지고 개수가 늘어났고, 실질상 마지막 췌장암 항암제인 TS1 사용을 권고받았다.


나는 남편과 상의 끝에 선생님께 우리는 선생님의 판단을 존중하나, 좀 더 치료의 기회를 찾고 다른 분들의 의견도 듣겠다고 말씀드리고 요양급여의뢰서를 받았다.


그 얘기를 는 내 목소리는 이미 양처럼 떨렸고, 내 손은 부들부들 떨었고, 내 정신은 혼미해졌다. 지금 선생님의 얘기대로라면 정말 남편에게는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남편이 의무기록자료들을 챙기고 수납을 하는 사이에 나는 드디어 언박싱되었다.


내 마음의 창고에 상자가 여러 개 쌓여있던 모양이다. 하나를 치우고 나니 그 밑에 또 다른 상자가 있었고, 그 상자는 언박싱되었다. 나는 말 그대로 포효했다.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지르며, 남편과 가장 가까운 가족들... 시댁과 친정에 전화를 울부짖으며 했고, 남편에게도 부정적인 얘기를 주저 없이 했다.


병원 바닥에 주저앉아 "나는 이제 어떡해. 나는 이제 어떡해." 하며 울었다. 내가 환자는 아니지만, 환자보다 내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언박싱된 그 마음의 상자에는 칼로 북북 찢긴 하얀 스케치북이 있었다. 이제는 남편이 사라지는 일에 대해 반절은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다른 병원을 찾는 사이 남편은 항암제 투여가 없고, 다른 병원에서 남편을 받아줄지도 의문이고, 그 사이 안 그래도 마약성 진통제 용량을 높여도 안 잡히는 남편의 통증이 어떻게 될지 나는 짐작이 안 됐다.


남은 표준 치료의 항암제는 현재보다 마일드해서, 정말 생존기간의 연장과 고통경감에 포커싱이 되는데, 그 강한 항암제를 맞고도 뚫고 자라난 췌장암이 마일드한 항암제 앞에서 더 자라지 않는다는 확률은 희박했다. 알고 있는 현실적인 내용은 그러했다.  


지금도 보고 있는 게 마음이 저미는데, 앞으로 더 어떻게 아파하는 남편을 봐야 하나.. 남편은 더 얼마나 내 앞에서 강한 척을 해야 하나.. 기적이 일어나고, 치료의 효과가 있을지라도, 우선 남편이 고통에 정신이 혼미해지기 전에 내가 할 수 없는 몇 가지 정리는 해달라고 말했다.


남편에게 희망만 말할 수는 없었다. 미안하지만, 이제는 내가 그동안 마음속에서 제대로 꺼낸 적이 없는- 나름 현실적이지만- 부정적인 시나리오를 그렇게 예고 없이 모든 가족에게 말하고 나는 나를 도와달라고 울부짖었다.


사람들이 나를 위로하고, 어떨 때는 환자인 남편을 우선시해서 너는 어떻게 해야 한다-라고 조언도 해준다. 사실 그 말들이 나쁜 의도도 아니고 틀린 말은 아닌 건 안다. 근데 나랑 똑같은 상황에 놓여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사실상 제삼자다. 인생의 모든 문제 앞에 모두 다 그렇겠지만, 나를 제대로 이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사실 이제 다른 사람들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모든 말들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들어와도 내 마음에는 다 날카로운 화살표가 되어 꽂힌다. 위로마저 그렇다는 게 참 이상하다.


나에게 전화를 하고 안부를 묻는 사람들 중에 몇은 선별해서 이 글의 링크를 보내줬다. 정말 내가 궁금하고 걱정이 된다면, 나를 알아주고 싶다면, 나는 지금 말할 기운도- 당신의 말을 제대로 받아들일 마음도 준비되어 있지 않으니, 힘들게 토해낸 이 글에 내 기록이 있으니 그걸로 대신 내 말을 전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말이다. 이 일을 통해서도 나는 내 지인들을 새롭게 겪게 되었다. 아 이런 스타일의 사람이구나. 의도치 않게 지인들의 성향을 알게 되는 효과를 얻었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진짜 그 사람이 보인다고, 내가 정말 너무 못난 사람이란 걸 알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고 그 말들이 다 왜곡되고 비틀리어 들린다. 원래도 예민했는데, 더욱더 예민해졌다. 그냥 나를 내버려 둬 주었으면 좋겠다. 어찌 보면 또 시작된 사춘기 같기도 하다. 갱년기를 대비해야 할 나이에 사춘기라니..


그렇게 퍼붓고 도무지 생각도 눈물도 멈추지 않아 집에 들어와 억지로 잠을 청했다. 좀 자고 일어나서도 남편을 마주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머릿속이 멍했다. 남편이 내가 자는 방에 들어와 "그동안 힘들었지. 나 안 죽어 괜찮아." 말하고 또 토닥토닥해 준다. 남편이 내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안다고 말해준다. "그래 너도 한 번은 이렇게 해야지"라고 이해한다고 말해준다. 남편이 나를 이해한다고 말한다.


사실 너무 외로웠다. 친정가족들은 솔직히 얘기하면 너무 걱정해서 말을 나름 순화해서 했고, 시댁은 어머님 앞세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직계 가족인데 얼마나 힘들까 해서 가끔 큰 소식일 때 말했다. 언어에 소질도 없는 내가 전하는 말들에 내 감정이 들어가서 사실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 다르게 된 적도 많았지만 나는 나름대로 노력했다.


주변 지인들에게도 가끔 징징대다가도 이런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이런 내가 싫어질까 봐 씩씩한 척 전화한 적도 있었다. 나는 혼자 짐을 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누려야 나눌 수 없는 짐이었다. 결국 사람에게 나누면, 내 짐은 더 늘어나기만 한다. 왜냐. 나는 내 기준에 착한 사람이고, 다른 사람에게 신세 지는 걸 싫어하니까. 그런 나 자신마저도 짐이지만, 지금은 이 짐을 해결할 수가 없다.


그날의 나의 포효는 결국 남편과 가족들에게 상처가 되었다. 내가 의도한 메시지는 모두 전달했지만, 잘한 일이냐면 절반만 잘한 일이다. 이 와중에 내가 제일 나 자신과 잘 지켜 행하고 있는 일은 병원과 의료진을 비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고, 그게 의료진이 할 일 이냐고 말하고 싶은-


가끔 생각하면 마음에 불덩이가 이글거리는 일들이 있지만, 같이 겪은 남편에게만 불평하고 절대 정체를 밝혀 남에게 말하지 않는다. 이유는 그분들에게 치료받는 분들이 상처받을까 해서다. 다 피해 가고 외면하면 그만이지만, 이 세계는 내가 원하는 대로만 루트를 만들 수도 없고, 내가 원하는 루트를 가도 치료 성과가 적은 세계다.


그 병원과 그 의료진이 다른 분들에게는 좋은 선택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괜한 내 사견으로 그 치료의 과정을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그거 하나는 그냥 나름대로 최대한 조심하고 있다. 가끔 너무 화가 나서 체할 것만 같지만 말이다. 나도 나름 소리 내어 불만을 직접 말했으니 그냥 피장파장이다 생각하고 꺽꺽 소화되지 않는 분노를 내 안으로 밀어 넣는다.


남편은 우리는 이제 새로운 원점에 왔다고 한다. 그리고 연말까지 좀 더 힘내보자 한다. 갈 것 같지 않던 뜨거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조금씩 밀려 들어온다. 곧 남편의 생일인데.. 이제는 몸이 고무줄 같아서 옷을 사줄 수도 없고, 먹는 것도 제한이 있어서 마음대로 먹을 수도 없고, 몸이 불편해 어디로 가서 예전처럼 막 웃으며 뛰놀 수가 없다.


뭘 선물해야 할지 모르겠다. 돈을 줘도 큰 의미가 없는데, 내 남편이 가장 고생한 해의 생일인데.. 나는 남편에게 선물할 게 없다.


하늘에서 남편에게 완치라는 선물을 그날 보내주었으면 좋겠다. 생각해 보니- 나는 강해진 나를 남편에게 선물해야겠다. 이제 다시는 포효하지 않는 나를. 남편의 마음의 사기를 꺾지 않는 나를. 같이 기적의 희망을 바라보는 나를. 선물해야겠다.


이 선물은 남편 생일 전에 언박싱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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