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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나무 Sep 22. 2023

32. 우리가 사는 오늘

"우리 모두 잘하고 있어요"

남편의 생일이 자정을 넘겨 요이땅! 시작되었다. 소파에서 같이 TV를 보다가 새벽 1시 넘어 나만 먼저 자러 들어갔다. 누워서 자려는데, 뭐라도 축하해주고 싶어서 카톡 임티(요새는 이모티콘 다들 임티라 하니깐...)를 심사 숙고하여 4개를 연달아 보냈다.


귀여운 햄토리 같은 캐릭터가 "따랑해 - 대빵 사랑해 - 선물은 나야- 부끄부끄" 이렇게 말하는 스토리를 가지고 야심 차게 남편에게 보냈다. 으흐흐흐~~ (밑은 증거사진)

그 새벽. 그 카톡. -.-


1분 만에 남편에게 답이 왔다. "어 주무시오~"

우리 부부는 이렇게 살고 있다. 아내는 없는 애교를 짜내고 남편은 담백함 그대로 사는 그런 집이다.


그 어렵다는 전원을 하게 되었다. 빅 5 병원 중에 1개 빼고 다 돌았다. 췌장암이 치료약이 너무 빤해서 전원 받아주는 병원이 매우 드물다. 거절도 당했다. 지금 전원한 병원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받을 때, 전원을 받기 싫은데 그렇다고 매몰차게 거절하고 싶지는 않은 그런 선생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드디어 나의 주특기가 발휘된다. 나는 납작 엎드렸다(마음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엎어졌다는 말은 아닙니다-).


선생님께 전원을 고려하게 된 우리의 사정을 어필해 보았다. 그리고는 뭐라도 선생님이 받아주실 만한 이야기들을 되는대로 다 던져봤다. 사실... 귀에 안 들어왔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하나라도 걸려서 길이 뚫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


그리고 "이 암이 치료가 힘든 암인 거 저희도 알아요"라고 말했다. 지금 이미 1차 치료제 다 썼는데, 선생님께 와서 살려내시라고 왜 남편이 낫지 않느냐고 항변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치료를 좀 더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우리는 찾고 싶은 거였다. 선생님이 남편의 암이 같은 환자들보다 진행이 상당히 빠르다고 했다. 전 같으면 그 말에 또 무너져 울었을 텐데, 전에 다니던 병원 바닥에서 이미 땅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지르며 울었더니, 이제는 그냥 그 말도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자신이 최선을 다해 치료하는 것을 믿어준다면 전원을 받아주겠다 했다. 의사 선생님도 환자의 신뢰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 믿는다고 대답했고 그렇게 우리는 전원을 하게 되었다.


모든 검사를 다시 해야 해서 급히 입원을 하게 됐고, 남편 보호자 입실이 제한되는 간호병동에 들어가서, 우리는 현재 떨어져 있다. 그래도 좀 이력이 붙었다고 짐도 단출히 빠르게 쌌고, 나름의 예상 입원 기간을 잡고 심심치 않게 시간을 보낼 준비까지 갖춰 남편은 입원을 했다.


내 마음이 열흘 전? 보다는 더 단단해졌다. 좀 더 담담히 지금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 끝까지 이 여정을 난 남편과 함께 해야 한다.


지인들도, 기도해 주는 사람들도, 가족들도, 나도, 남편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나마저도 다 포기했다 해도 남편이 포기하지 않았다. 남편은 완치의 기적을 굳건히 믿고 있다. 참 대단한 사람이다. 나였다면 달랐을 텐데... 그래서 나도 남편의 기적이 언제 일어날까 그걸 또 기대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남편이 홀로 지내는 병실에서 더욱 기운을 얻기를 바라며. 오늘의 글을 써본다.

"남편~! 잘하고 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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