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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나무 Oct 12. 2023

33. 한 모숨의 무게

하루,하루, 우리가 사는 삶의 그림의 의미

요새는 남편과의 하루하루를 쓰는 게 망설여진다. 발행한 브런치 북도 검색이나 브런치스토리에서 차곡차곡 조회수가 쌓이는데, 정말 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주는지, 힘이 되어주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걱정이나 공포, 슬픔만 더 더해준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나의 이 글들은 참 몹쓸 것들이다. 그렇다면 내 글들은 존재의 가치가 희박해져 생존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남편이 혹시 본다면 나에게 편히 투정도 힘듦도 표현 못하고, 나를 배려해 주려는 생각의 짐을 더 줄까 봐 글쓰기가 참 망설여진다. 내 생각을 세상 밖으로 표현한다는 건 그러한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었나 보다. 새삼 다시 깨달아본다.


잠시 이 에세이를 손에서 놓은 사이에 추석이 들어간 긴 연휴가 지났다. 지난 구정에는 남편의 암 발병을 안 지 얼마 안 되었고, 남편이 항암 전이어서 암통증에 힘들어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는 시어머님이 살아계셨고, 모두가 다 남편이 나을 거라고 힘내자고 하던 명절이었다.


그 구정 전, 추석에는 시댁식구들과 같이 둘러앉아 식사를 했었고, 친정식구들과는 집 근처 공원에 밤산책을 나가서 큰 보름달을 보았었다. 그냥 만나서 같이 밥을 먹고, 걷고, 하늘을 보았을 뿐인데- 그게 지금은 큰 사치였구나 싶다.


아무리 돈이 많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 보물 같은 시간을 이번엔 살 수가 없었다. 다음번 명절에는 꼭 돈이 있든 없든- 마치 사과가 만유인력에 의해 떨어지듯-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보물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남편은 항암을 못하는 사이에 통증이 더 커졌었다. 여태껏 점잖게 통증을 느끼던 사람이 이불에서 몸을 뒤척이며 굴렀다. 어떨 때는 고통을 견뎌보려고, 악악 소리도 지르기도 했었다. 그리고 전원한 병원에서 1주일 입원한 사이에 금식을 자주 해서 위가 줄었는지, 먹는 양이 줄었다. 그러면서 또 몸무게가 빠지고 식욕이 좀 사라졌다.


남편이 입원한 1주일 사이에- 사람들은 그러면 좀 보호자가 나와서 쉬고 다른 사람도 만나고 하면 좋을 텐데 생각하겠지만.. 사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가 밖에 나가면, 맛있는 것도 사주고 바깥바람 쐬어주고 푸념 들어줄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단지 내가 한 건, 끝없이 잤다. 남편이 있을 땐 그래도 남편 먹어야 산다고 삼시 세 끼를 뭐가 됐든 챙겼는데, 밥 먹는 것도 귀찮아 간신히 빵과 라면, 떡볶이 같은 걸로 대충 때워먹었다. 그 사이에 아프기도 했어서 어떤 날은 먹기도 힘들었다. 배탈이 났고, 속이 쓰렸고, 머리가 아팠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남편 입원하면 해야지- 미루어두었던 집안일도 아무것도 손도 대지 못하고, 남편 퇴원 전날 몰아서 해치웠다. 남편이 돌아오면 쾌적하게 쉬게 하면서 병원서 못 먹은 거 먹게 하겠다고 하루 만에 급속 충전해서 나의 파워를 출력했다.


하나 한 건, 브런치 스토리에 소설 쓰기를 했다. 실제 오프라인의 바람 쐬기보다 그냥 이 온라인의 글쓰기가 나에게는 탈출구가 되었다. 그래서 평소에 쓰고 싶었던 30대 중반 미혼의 사랑스러운 아가씨- 이유리- 의 얘기를 몰아쳐서 썼고, 스토리를 생각해 내느라 머리를 짜냈다.


그 소설은 내 과거와의 화해 내지는 지금의 이유리들에게 바치는 나의 노래였다. 그 공허함을 다루면서 난 그 공간 속으로- 유리의 삶으로- 도망을 쳤다. 어쨌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남편이 입원한 사이 또 담도 스텐트 교체 주기가 와서 교체 시술을 했다. 저번 스텐트 교체 때 어려운 얘기들을 많이 들은 터라 남편과 여러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놓고 내가 남편 대신에 결정하게 되는 상황들에 대해 의논했다.


그러나 막상 현실은 의논해보지 않은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스텐트 시술에는 보호자가 반드시 있어야 해서 병원에 갔는데, 스텐트 교체를 완료하고 다량의 출혈이 발생했다. 의사 선생님께 설명을 듣는데, 나도 모르게 얘기했다. "이거 응급 상황 아닌가요?" "네, 그래서 급하게 지금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우선 병실로 돌아갈 갈 겁니다."


사태 파악이 잘 안 되는데, 상황은 급박했다. 마취가 끝난 남편을 실은 카(병실 이동형 베드)와 함께 이동하는데, 남편은 너무 말짱했다. 그냥 마취가 약간 덜 깬 것 빼고는 특별히 아픈데도 없었다. 근데 응급이라니-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남편은 간호병동으로 들어가서 나는 병동 진입도 못하고 밖에 앉아 있었다.


남편이 들어감과 동시에 간호사들이 막 뛰어다니고, 의사 선생님 몇 분도 급히 다니는 게 보였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밖에서 대기했는데, 아무도 나에게 이 상황을 설명해주지 않아 결국 병동에 설명해 달라고 전화를 했다. 전화 후, 몇 분 지나니- 입원 전담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상세히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원인 불명의 출혈이 다량 났고, 이 출혈의 원인 분석을 위해 응급 CT에 들어갔고, 거기에서 원인이 발견되면 색전술을 진행할 거라 했다. 그리고 만약 원인을 못 찾으면, 계속 상태를 봐야 하는데, 그러면 출혈이 많아져 저혈압쇼크나 혈액 부족으로 위험할 수 있어 수혈 및 검사로 계속 상태에 대응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출혈이 난 영상을 보여주는데, 내가 봐도 심각했다.  


남편은 다음날 퇴원한다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상황은 좋지 않았다. 너무 무서웠다. 이렇게 갑자기 남편이 위험해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CT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기해 달라고 하여 병원 기도실로 뛰쳐 올라가서 한참을 울면서 기도했다. 그리고 급히 기도해 주는 분들께 SOS를 쳤다.


결론은 CT상에서 출혈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남편은 더 입원을 했고, 점차 모든 수치가 안정권에 들어서 며칠 뒤에 퇴원을 하게 되었다. 그 사이 남편은 검사와 수술 후 출혈로 계속된 금식으로 몸무게가 더 빠졌다. 그리고 먹는 양이 줄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집에 와서 너무 좋아했다. 나도 남편 얼굴을 보아 너무 좋았다. 생전 어머님이.. 아버님이 아파서 병간호를 해도 좋으니- 벽에 똥칠을 해도 남편이 있는 게 더 나은 것 같다 하셨는데... 그때는 어머님이 너무 외로워하시는 것 같아 다른 말들로 막 위로해 드렸었는데, 막상 내가 겪어보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이제는 남편이 힘들어도 정말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욕심이 생긴다. 근데 남편이 힘든 걸 바라보는 것도 힘들다. 뭐가 맞는 걸까... 이런 욕심들도 저울에 달아본다면 무엇이 더 무겁고, 가치를 따져본다면 뭐가 더 비쌀까.. 마치 옷집에 매우 마음에 드는 옷이 있어 색깔별로 다 사고 싶은데, 딱 한 벌만 살 수 있다 해서 마음에 드는 두 컬러 놓고 고민하는 그 기분이다.


이런 일들을 거치면서 나는 마음을 내려놓는 법과 새롭게 믿음을 갖는 법을 배웠다. 갑작스러운 신앙고백을 하자면, 나는 더는 남편의 에 마음을 조이면서 살지 않는걸 노력하기로 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 이 병에 대응하고 있으니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주실 거라고 믿기로 했다. 이 믿음만이 나와 남편에게는 현재와 미래를 사는 가장 큰 힘이다. 남들이 비난한다 해도 이게 나와 남편이 사는 방법이다.


지금 남편은 통증이 극심하던 몇 주 전보다는 통증은 가라앉았다. 그렇지만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24시간 수면과 누워있는 것만 몸이 원하는 듯한 모습이다. 남편 입에서 아픈 건 덜한데 무기력하다는 말을 한다. 식욕도 별로 없고, 몸무게가 미미 하게 줄어든다.


그래도 아직은 삼시 세 끼를 양이 줄었지만, 의무적으로 다 챙겨 먹으니 참 다행이다. 그래서 요새는 음식 제한을 감염 우려 있는 것 빼고는 하지 않는다. 먹고 싶다고만 한다면, 치킨이든 피자든 다 가져다 대령한다. 그걸 먹고 힘이 좀 난다면 그걸로 기쁘기 때문이다. 남편이 맛있는 거 먹고, 맛있다고 한 그릇을 비운다면, 그걸로 그저 기쁘다.


얼마 전에 고깃집에 갔는데 반찬으로 양념게장이 나왔다. 남편이 먹고 싶어 했다. 날 거여서 감염우려가 있어서 피해왔는데, 남편에게 먹으라고 했다. 단, 조금만 먹으라고 했다. 빨간 양념의 양념 게장 작은 조각이 남편 입에 들어간다. 남편이 맛있다고 했다. 어찌나 맛있었는지 나 모르게 한 조각을 더 먹었다. "한 조각 더 먹었네?"말했지만..


남편이 나중에 그 한 조각 못 먹었다고 슬퍼한다면 그게 더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 마음으로는 잘했다 싶었다. 얼마 전에는 샐러드도 있었다. 남편이 내가 며칠 전에 치킨이 너무 먹고 싶다 한 게 생각났나 보다. 근처 햄버거 가게에서 치킨 몇 조각과 머스터드소스를 사 와서 샐러드 위에 얹었다. 그리고는 맛있게 먹었다.


양념 게장도 치킨도 - 고맙다. 그냥 남편의 마음에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 게- 남편에게 아직 식욕이 살아있다는 게 그냥 기쁘다.


요즘의 남편의 상태는 말로만 듣던 악액질인가 조금 걱정이 된다. 악액질은 먹어도 영양 결핍이 일어나고, 근손실이 생기고, 차후에는 구역질이 나면서 먹지 못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무기력증 등 정신적 우울감이 수반된 증상도 나타난다고 한다. 이 악액질이 점차점차 심해지면, 남자도 여자도 거의 뼈밖에 보이지 않는 상태로 가기도 한다. 먹는다고, 영양 수액을 놓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남편은 비만이었어서 지금 사람들이 그냥 보면 딱 좋은 상태로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남편은 거의 20kg의 몸무게가 빠졌다. 남편이 만약 60kg대였다면 이미 여자 연예인 몸무게가 되었을 것이다. 이미 투병 전에 산 옷들은 모두 크다.


남편은 덩치가 있다는 표현이 맞는 사람이었었고, 그래서 듬직해 보였고, 자는 얼굴도 뽀얀 피부에 웃는 표정으로 예쁘게 잤다. 지금 남편은 아파서 늘 웅크리고 잠을 자고, 그 모습이 이제 내 눈에는 한 모숨이다.


두 팔로 감싸 안아야 했던 남편은- 나의 거의 두 배에 가까웠던 남편이 이제는 나와 비슷해지고 있다. 그 남편이 내가 자신이 통증에 자주 깨어 몸을 움직이니, 내가 밤에 잠을 못 잘까 봐 일부러 따로 나와 잔다.


그냥 암환자가 있는 집은 겪을 수도 있는 일인데, 아직 남편이 뼈만 남은 것도 아닌데.. 근데 내 눈에 한 모숨이 된 남편이 나에게는 참 무겁다. 내 마음에 차마 측정할 수 없는 눈물의 무게를 지워준다. 그동안 참 안 울고 지냈는데, 오늘은 그 한 모숨이 내 눈을 적신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남편이 다 나으면, 지금 한 모숨의 모습이 내 기억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나에겐 너무 슬픈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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