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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나무 Oct 28. 2023

34. 디딤돌

디딤돌을 딛고 한계를 넘어가며 성장하는 날들

남편이 암투병을 한 지 1년을 향해 간다. 작년 이맘때쯤 이미 기분 나쁜 복부 통증이 지속되기 시작했기에 그때부터 이미 암은 소리 없이 남편의 몸에서 자라 갔을 것이다.


그때 큰 병원을 갔었더라면 3기였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정확한 판정을 받은 건 작년 12월이었고, 항암치료는 2월부터 했으니 여러모로 1년이 되어가는 듯하다.


1년이 다되어 가는 지금까지 남편이 숨을 쉬고 하루를 살아가고 밥을 먹고 나와 대화를 할 수 있으니 감사하다. 잠깐 동네에 다니다 보면 나뭇잎들이 이제는 초록색을 잃고 빨간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그 사람들을 보는 내 눈에는 남편과 내가 덧입혀진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무거운 짐을 들어주던 남편이, 거리에서 시답잖은 대화를 하며 웃으며 걷던 남편과 내가, 가끔 회사에서 회식을 하면, 동네 찐빵가게에서 만두와 찐빵을 사 오던 남편이, 가끔 남편 퇴근길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쳐서 같이 집에 들어가던 우리의 모습이 지나가는 사람들 모습에 하나하나 입혀진다.


암이란 걸 몰랐다. 그냥 흰털모자를 쓰고 입원복을 입고 하얘진 피부와 가냘퍼진 몸, 그리고 수분이 말라 갈라진 입술 그리고 조용한 입원실 그게 그냥 암에 대한 이미지였다. 나 암에 걸렸어.라고 말하고 삶을 정리하고 주변인 모두가 슬퍼하고 남은 기간을 가족들이 친해지는 그런 계기인 줄로만 알았다.


결국 TV로 본 암이다. 암은 서서히 나와 남편의 자유, 의지, 즐거움을 빼앗아간다. 남편은 숨을 쉬는 모든 순간이 다 아프다. 진통제로 강도의 조절만 할 뿐이다.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통증이 있으면서 동작 하나하나에 어려움이 생기고, 이제는 먹는 것도 힘든 일이다. 남편이 통잠을 달고 깊게 잔 게 언제였던가 싶다.


아프니 항암제를 쓰고, 아프니 마약 진통제를 쓰고, 근데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니, 항암제 부작용과 마약 진통제 부작용이 범벅이 돼서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마약 진통제는 지속형과 속효성이 있다. 지속형은 말 그대로 작용시간이 10~12시간을 가지만,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반응속도가 느리다. 반감기가 긴 것과 비슷한 이치다.


속효성은 효과가 좀 더 빨리 나지만 지속되는 시간은 3시간 정도다. 보통 지속형은 12시간에 한 번 간격으로 먹고, 그 와중에 아프면 속효성을 투입한다.


항암제를 맞으러 병원 가던 날이었다. 원래 다니던 병원 선생님은 다른 2차 항암제를 사용해 달라는 우리의 요구에 무슨 법적인 대응을 하라며, 자신은 해줄 수 없다고 하며, 그 법적인 대응이 3-4개월 걸린다는 친절하지 않은 내용을 친절하게 설명하셨다. 그래서 반강제로 바꾸게 된 병원에서는 그 2차 항암제를 써준다.


이전 선생님의 대응으로 우리는 한강의 정 반대쪽을 왕복하는 운전을 하며 병원을 다니게 되었다. 이전 병원을 지나칠 때마다 너무 속이 상하지만, 그래도 지금 병원이 먼 것 빼고는 다 좋아서 그냥 쓰린 속을 집어삼키던 날이었다.


남편이 차를 신혼 초에 대형으로 바꾸었고, 나는 아직도 그 대형차 운전이 썩 내키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한다. 아직 까진 남편이 운전할 수 있어서, 남편도 그래야 덜 불안해해서 그렇게 다니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도 차 운전 시간과 동일하고, 택시나 다른 사람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도와주는 사람들을 배려하게 되서 컨디션 안좋을 때는 그것도 힘든일이었다. 그냥 우리 둘이 다니는 편이 제일 편하다. 돌발 변수가 있어도 시간 맞추기도 편하고, 그래서 우리는 그냥 이렇게 다니고 있다.


그날은 출근 시간이 맞물렸다. 췌장암 4기 환자가 1시간 30분에 가까운 운전을 왕복으로 하게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생각했다.


남편은 이미 통증이 와서 속효성 마약 진통제(아이알코돈)를 먹은 지 2시간 정도 지났고, 괜찮을 거라고 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문제는 지속성 진통제를 먹을 시간이 1시간 정도 남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즉 고통이 심해지는 그 순간에 있다는 의미였다.


좀 기분은 나빠보였지만, 운전에 큰 무리는 없었다. 그러나 길은 꽉 막혀있었다. 강변북로도 올림픽대로도 그 와중에 난 접촉사고 현장까지, 길은 아픈 사람의 처지를 봐주지 않았다.


남편은 운전을 얌전히 하는 사람이고, 클락션을 울린 횟수가 결혼 이래 5번 정도였다. 근데 남편이 갑자기 빈자리가 조금 보일 때마다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시도했다.


끼어들어도 마찬가지로 막힐 텐데, 열심히 끼어들었다. 남편의 얼굴을 보는데, 이마를 한껏 찌푸리고, 땀이 이마와 목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어디 갓길에 세워 나와 교대를 하자고 말했는데, 남편은 머릿속이 이미 통증과 병원에 빨리 도착해야 한다 밖에 없었다. 거기다 이런 교통 상황에 운전 미숙인 내가 한다면, 남편은 병원에서 자리가 취소될 거라는 불안감에 더해 안전 운전에 대한 믿음도 안 생기는 듯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길은 갓길에 세울 수 있는 상태도 되지 않았다. 남편은 나에게 말을 하지 말라고 하고는 지속형 진통제를 달라고 했다.


일단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했다. 몸은 아프고, 길은 계속 막히니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남편은 갑자기 비게이션이 가라는 길로 안 가고 다른 뚫려있는 길로 가속 페달을 밟아 이동했다.


네비가 가라는 대로 가지 않는다고 한마디 하자 남편은 결국 이 길로 간다며 나에게 화를 냈다. 그 길에 올라서니 도착 예정 시간은 10분이 더 밀려버렸다.


나는 어떻게 이 상황에 있어야 할지 몰랐다. 우선 나부터 안정을 하기 위해 신경안정제를 빨리 한 알 먹었다. 몇 분 지나니, 신경 안정제가 듣는지, 마음에 조금은 긍정의 회로가 돌았다.


먼저 머리의 땀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도 운전을 안전하게 한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그리고 병원에 전화해서 항암 주사 자리가 취소되지 않도록 우리가 가고 있다고 알렸다. 마지막으로는 조금씩 개선되어 가는 도로의 상황이 남편의 컨디션을 도왔다.


결국은 예약 시간보다 15분 정도 늦게 병원에 도착해서 항암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은 잠에 빠져들었다. 대기하던 나는 밖에 나와 커피를 한 잔 마신다.


며칠 전 정신과에서의 일이다. 난 얼마 전부터 결심을 했다. 울지 않을 결심을 했다. 너무 늦었는지 모르겠지만, 울지 않을 결심을 했다.


누가 내 안부를 물으면 '난 괜찮다'라고 했다. 그리고 나자신에게도  내었다. '난 괜찮다. 난 괜찮다.'아울러 또 되 내었다. '울어서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게 효과를 발휘했는지, 나는 눈물을 참게 되었다. 조금은 차분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단, 삼키는 눈물만큼 우울한 감정이 조금 더 생겼다.


정신과 선생님과 요즘 내 상태에 대해 얘기하던 중, 선생님이 누차 얘기하던 우울증 약 증량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선생님, 이게 지금 저한테 닥친 특별한 상황 때문인 것 같은데, 그래도 더 증량을 해야 하나요?"증량하고 싶지 않아 물어본다. 정신과 약이 필요한 약한 정신력이라는 게 싫기도 했다.


"바로 효과가 나타나진 않겠지만, 지금 겪는 힘든 감정을 좀 더 견디게 해 줄 수 있는 마음의 체력을 키워줄 거예요."라고 하는 선생님의 말에 증량해 달라고 답을 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내가 남편을 잘 서포트해 줄 수 있다면, 내가 무너지지 않고 남편을 일으켜 세워줄 수 있다면, 우울증 약 증량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키지 않던 일에 용기를 냈다. 남편 때문에. 남편을 위해서. 어쩌면 나를 위해서.


나는 남편이 아픈 고통에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그저 기도하고, 병원을 같이 가고, 내가 더 몸을 움직여 남편이 움직일 일들을 줄여주고, 먹을 수 있을 땐 뭐라도 하나 챙겨주는 것뿐이다.


그리고 나는 남편에게 말을 건다. 장난기 어린 말들을, 그리고 남편이 웃겨서 배가 아프다 해도 웃을 수 있는 말들을 해준다. 그냥 가볍게 이 모든 게 지나가도록.


남편은 집에만 있는 내가 안타까워 어디 외출하고 오라고 하지만, 외출해서도 외출을 하고 와서도 난 기쁘지가 않다. 그 사이에도 남편은 고통가운데 있었을 것이고, 남편은 정말로 혼자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지금 가장 솔직할 수 있고, 마음 편히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다.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는 그 역할을 난 지금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울지 않고 단단해 지기로 결심했다. 그 과정에 필요하다면 난 우울증 약을 더 먹을 수 있다.


그 고통 한 점 덜어줄 수 없어도, 난 남편의 머리를 쓰다듬고, 팔 한번 쓰다듬고, 배를 살살 문질러 주고, 손을 꼭 잡는다. 아주 잠시라도 그 작은 스킨십이 따뜻한 온기를 건강하고 온전한 세포에게 전해주었음 하는 마음으로. 그게 지금 나의 살아가는 보람이자 이유다.


병실에 돌아와 남편의 컨디션을 체크한다. 요즘 남편은 병원에 가면 없던 고혈압이 생긴다. 특히 항암주사를 맞을 때 그런데 보통 항암제가 혈압을 높이기도 하지만, 그 정도가 좀 심해서 약도 탄 적도 있었다.


이번에는 간호사의 요청으로 의사 선생님 방문이 이루어졌고, 거기에서 들은 얘기는 남편의 신체가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 남편은 나름 강철 인데, 이 항암치료는 남편에게 갈수록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었나 보다.


남편에게 앞으로 운전을 못해도 내가 병원 왕복 운전을 하겠노라 말했다. 땀을 흘리면서 정신을 잃고 그 와중에 날카롭게 집중해서 병원을 향해 운전하는 남편의 모습은 두 번 다시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도 마지못해 동의한다.


가끔 지하주차장에서 빠져나올 때 요금 정산대에 걸려 오르막에서 임시 정차를 할 때가 있다. 난 내리막은 괜찮은데, 그 오르막 임시 정차는 브레이크를 뗐다가 다시 가속 페달을 밟을 때 차가 살짝 밀리는 그 지점에서 공포를 느낀다.


어느 정도냐면, 신경이 쭈뼛서고, 핸들을 잡은 손에 온 전기가 흐르는 것 같고,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왜 거기서 공포를 느끼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약간의 고소공포증을 느끼는 게 거기서 나타나나 보다.


돌아오는 길에도 그 난관 닥쳤다. 핸들을 꼭 잡고 두근대는 심장을 감당하며 그 오르막을 운전해 빠져나왔다. 바닥에는 전기가 오른듯 했고, 팔을 타고 기분 나쁜 서늘함이 느껴졌다. 생수병의 물을 조금 마시고는 마음을 안정시킨다.


남편은 괜찮다고 차 안 밀린다고 안심을 시키지만, 나는 그 지점에서는 괜찮지가 않다. 렇지만 넘어가야한다 그 지점을.


대형차 운전에 겁을 내가면서도 운전을 해서 집에 돌아간다. 남편의 고통을 통해 난 디딤돌을 디뎠다. 우울증 약 증량을 감당할 용기를, 운전을 어떻게든 해내는 능력을, 울지 않을 결심을 하는 디딤돌을 디뎠다.


그 디딤돌에는 남편을 부족하게 사랑하는 내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나를 위해 살려고 하는 남편의 의지가 있다.


요새 나는 편의점에서 귀여운 스티커를 산다. 웬 돈낭비인가 싶기도 한데, 귀여운 캐릭터 스티커를 보면 그냥 기분이 좋다. 우선 쿠미를 사서 핸드폰 투명 케이스 뒤에 잔뜩 붙였다.


그리고는 마이 멜로디, 시나모롤, 얼마 전에 포차코도 샀다. 편의점 직원이 내가 한참을 고민하며 스티커를 고르는 걸 봤는지, 계산하는데 "요새 쿠미 많이 좋아하죠?" 하고 묻는다.


아마 집에 애기가 있어서 산 줄 알 거다. 우리 집은 아기와는 거리가 이제 매우 먼데.. "쿠미 좋아하는데, 오늘은 포차코가 사고 싶어서요." 40대 아줌마의 부끄러운 쇼핑 취향을 밝히고는 자리를 뜬다. 마스크가 내 나이를 10살은 가려줬기를 바라면서.


그 스티커의 귀여움을 발견하는 마음의 눈도, 거기서 조금은 힘을 얻는 방법을 터득한 것도, 그리고 그곳에 돈을 사용해 볼 수 있는 40대가 된 것도 디딤돌을 딛으며 얻은 조그마한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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