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련나무 Nov 04. 2023

35. 지침에 대한 단상

간혹 찾아오는 지침을 몰아내어 봅니다.

귀에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슬쩍 잠을 깨 나가보니, 나보다 일찍 일어난 남편이 소파에 앉아 사과를 아사삭- 깨물고 있다. 분명 통증에 몇 시간 못 자고 깨어난 것이리라.


마약 진통제를 먹고 조금 약기운이 돌자, 냉장고에서 사과와 귤을 꺼내 본인 것과 내 것을 다 준비해 놓고는 잠꾸러기 아내의 잠을 안 깨운다고 TV소리를 한껏 낮추고는 그렇게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이리라.


단정히 추리닝을 입고 아사삭- 남편이 사과를 깨물어 먹는 모습이 소년 같다. 아침 햇살이 남편의 모습에 스며들어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신선한 아침을 보여줘서 고마워요."라고 했다.


표현이 적합한지는 모르지만, 그 모습이 참 신선해 보였다. 갓 따온 아침 같았다. 그 신선한 느낌이 오늘이라는 하루가 새롭게 배송되었다는 걸 그리고 그 오늘이 꽤 좋은 시작이란 걸 알려준다.


엊그제는 남편의 통증이 심해지는 시간대에 병원에 가야만 했다. 남편의 신경은 예민해있었고, 속효성- 지속형 마약을 다 먹어도 남편은 아파서 힘에 겨워했다.


병원 진료 대기는 계속해서 길어졌다. 남편뿐만 아니라 췌장암 환자들의 통증은 주로 복부와 허리에 밀집되어있다. 남편의 경우, 자세를 바꾸거나 걸음을 떼면 허리가 시큰거린다는 말을 많이 한다.


요새는 가끔 병원에 가면 휠체어를 쓸까 마음으로 몇 번을 고민하는데, 남편 자존심에 하지 않을 것도 분명하고, 아직 까지는 몇 걸음이라도 걸어서 다리 근육을 쓰게 해주고 싶어 나도 참아본다.


어쨌든 긴 대기를 끝내고 진료를 받고 나오는데, 남편은 조금씩 한계에 다르고 있었다. 허리와 배가 세트로 아플 때가 가장 힘든 때이다. 그게 진통제를 먹어도 아픈 게 더 서럽다.


주차장에 가서 남편에게 바로 출발하지 말고, 좌석 시트를 좀 더 뒤로 젖혀서 눈 좀 붙이고 가라고 한다. 시동을 끄고 남편은 그렇게 쉬고, 난 두꺼운 소설책을 들고 그렇게 한 30분쯤 있자 남편의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얼굴에 생기가 돈다. 그렇게 또 한숨을 돌리고 집에 돌아온다.


요새는 병원, 집, 교회, 가끔 마트라는 단순한 동선으로 다니고 있어서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는 게 그냥 재밌다. 병원 복도에서 갈색 가죽 스커트에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20대 여성을 본다. 젊음의 절정에서 가을을 표현하는 패션을 입은 그 사람의 감각이 사랑스러웠다.


병원 문밖을 나서니 아마도 인턴인 것 같다. 여러 명의 여자 인턴의사들이 컵 아이스크림을 쥐고, 병원 안에서는 만날 수 없는 생생한 날것의 가을볕을 쬐며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지나간다.


머리를 감지도 못할 만큼 바쁜 그들의 삶이 그 아이스크림 한 입 먹으면서 스트레스가 녹아 환자를 볼 때, 의사로서의 길을 정진할 때 가을볕만큼 따뜻한 사람들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이제 1년 가까이 되어갈 뿐인데- '지침'이라는 단어가 마음속 수면에 떠올랐다. 내가 학생인데,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시험을 칠 때마다 성적이 떨어진다면-,


내가 사업가인데, 내가 잠을 자지도 못하고 열심히 노력해도, 매출이 계속해서 곤두박질 잘 친다면- 처음에는 방법도 모색해 보고 심기일전해보겠지만, 아마 찾아올 것이다. 지침이라는 단어가. 그 후에는 포기라는 단어가.


가장 '지침'이라는 단어를 초라하게 하는 강력한 비교 대상이 있는데, 그건 '부모의 사랑'이다. 모든 부모님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다수의 부모들은 자녀가 아프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특히 아마도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지침이 더 강력하게 찾아오겠지만, 그 생명을, 그 아이를 부모는 끝까지 돌본다. 자신이 사라지도록 돌본다.


부모님이 아플 때, 간호하는 자식들의 마음에 '지침'과 '감당할 수 없음'이 찾아올 때, 그때가 가장 마음이 죄스럽고 고통스럽지 않을까. 부모님은 나에게 그러지 않으셨는데, 나는 이 단기간에 부모님께 그런 마음이 든다는 게 얼마나 속이 상할까. 아픈 부모님을 보는 것도 마음이 아픈데. 참 그럴 것이다.


나아짐을 본다면, 그래도 좀 더 힘이 날 텐데- 그게 쉽지 않을 때는 정말 나의 한계를 느껴 주저앉고 싶을 때가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다른 이들의 도움마저도 그 마음의 구멍을 메우지 못한다.


원하는 건 딱 하나- "나아짐"이다. 난 여태까지 남편의 항암 성적표에서 나아짐을 보지 못했다. 상태 유지-만 해도 정말 대단한 일이었고, 그게 아니면 나빠짐이었다.


근데, 아픈 남편은 그 마음이 더 오죽할까 싶다. 남편은 불과 작년 가을에는 나와 함께 여행도 다녀오고, 회사 출근도 하고 있었는데, 요새는 집에서 누워있는 자신을 보며, 정말 환자 다됐네. 라며 자신의 바뀐 현재 모습에 씁쓸한 한마디를 던진다. 비만이었던 남편이 이제는 몸통에 갈비뼈가 드러난다. 가끔 너무 아플 때는 없던 긴 팔자주름마저 나타난다.


그때마다 나는 말한다. "지금, 오빠는 그 고통스럽고 아프다는 췌장암을 이렇게 잘 견디고 이겨내니 그것만 해도 너무 대단하다고. 너무 멋있고, 이렇게 잘 견디고 버텨줘서 내 인생에서 오빠만큼 멋진 사람은 없을 거라고. 참 존경한다고."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꼭 남편을 안는다. 거짓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정말 내 마음이 그렇다.


나는 밖에 날씨가 아니라, 남편 날씨에 따라 하루가 바뀐다. 남편이 그래도 컨디션이 좋으면, 내 마음에도 해가 반짝! 난다. 고통에 몸부림친 날은 먹구름이 잔뜩 낀다.


언제까지 남편은 아플 것인가. 이 아픔의 끝은 죽음뿐인가. 그리고 이제 몇 달을 갑자기 이렇게 마약 진통제와 사투를 벌이다 보니 남편도 나도 그 고통에 대비를 한다. 일종의 적응이다.


마치 롯데월드의 자이로드롭을 탔는데, 절정에 올라가 하나, 둘, 셋 하고 세면 갑자기 이게 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무서울 채비를, 비명을 지를 채비를 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와 남편은 이제 하루에도 몇 번을 자이로드롭을 탔는지 모르겠다. 떨어지는 공포가 체득이 되고 적응이 되는 걸까.


몇 달 전에 병원에 다녀왔을 때의 일이다. 병원에서 대기도 많고 날도 좋지 않아 나름대로 좀 힘들었었나 보다.


저녁이 되어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갑자기 보는 사물의 반경이 반으로 줄어들고 보이는 사물이 모두 휘어져 보였다. 반으로 줄어든 그 영역에는 어둠이 있고, 나머지는 구불구불 휘어져 있었다.


잠깐 피곤한가 해서 눈을 감았다 떴다 했는데도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휘어져 보이는 그 모습에는 마치 비 오는 날, 기름 방울이 빗물 웅덩이에 떨어져 핑크, 파랑등의 색채가 둥둥 떠서 세로 곡선으로 보이는 그런 상태였다.


어떻게 할 수 없어, 눈에 따뜻한 안대를 대고 한 30분 눈을 감고 쉬었다. 그러니 100%까지는 아니어도 좀 회복이 돼서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에 눈뜨자마자 안과에 가서 산동검사 및 각종 검사를 다했는데, 눈은 멀쩡히 건강했다. 매우 감사하게도 그랬다. 선생님은 두통이 심한 환자들 중에 그런 경우가 있으니 우선 두통에 대응을 하고, 이 증상이 계속 나타나면 뇌 쪽으로 병원을 가보라 했다.


내가 편두통을 나름 심하게 겪는 편이라, 눈의 시야 좁아짐이나 전조 증상은 대충 겪었는데, 이번 같은 일은 처음이라 충격이 컸다.


그래서 이 이후, 마음을 좀 더 편하게 가져야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그래서 남편의 고통도 마음을 너무 졸이지 않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쪽으로 마음을 요새 단련하고 있다.


'나아짐'이 신의 영역이라면, 지금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이 '지침'에 대한 속효성 마약 진통제는- 남편의 웃는 얼굴이다. 남편이 고통에서 벗어났을 때 이따금 비추이는 얼굴의 생기다. 그리고 남편이 마음을 굳세게 먹고 하는 긍정적인 말들이다. 나에겐 그렇다.


아마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지친 하루 끝에 아이의 자는 모습에 아이의 웃는 모습에 지침이라는 단어를 잊는 것 같다.


그냥 그 사람이 내게 뭘 해줘서가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기에 받는 '지침'에 대한 위로고 희망이다. 어쩌면 지침이어서 지금은 다행인지도 모른다.


만약 남편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면, 24시간 이런 유형의 생각도 해보지 못할 만큼, 글을 쓸 시간은 찾을 수 없을 만큼 그때의 상태에 집중하는데 모든 마음이 초비상상태로 쫓겨 갔을 것이다.


얼마 전에 꿈속에서는 내가 자청해서 정말 변이.. 실내고 실외고 가득 쌓인 차를 하얀 대걸레를 들고 청소했다. 냄새가 너무 고약했고, 토할 것 같았고, 변이 그득그득 오래 쌓여 대걸레로 아무리 청소를 해도 쉽사리 청소가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똥차'였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나는 그 차를 청소했다. 정말 고되었다. 꿈인데도. 그래도 외부의 더러움은 대략 청소하고, 내부의 시트까지 모든 게 착색된 그 부분을 청소해야 하는데..


약속된 시간이 다하여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복권을 사라 한다.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도 그런다.


사실 나는 이런저런 요상한 꿈을 다 꿔서 그냥 모든 게 개꿈이려니 하고 넘어간다. 그리고 그런 미신도 믿지도 않는다. (나는 크리스천이니까!)


그러나 내가 너무 고생하여, 청소를 할 수 있는데 까지 하였으니... 그게 혹여 남편의 더러운 췌장암이었다면, 꿈속의 내 고생을 생각해서라도 청소한 만큼이라도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마음 깊이 바보았다.


지침도 한 때의 감정이었는지,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어쩌면 지침의 감정은 또 반갑지 않게 또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여도 지금 만큼은 남편과 앞으로 더 빛날, 더 신선한 아침들이 가득한 그날들을 향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혹여 지친 분이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 지침이 가시고, 마음에 반짝이는 보석을 가지고 빛나는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를 바래어본다.  



글을 쓰면서, 클래식을 랜덤으로 듣는데, 참 좋네요.

유튜브에서- 양인모, 우아한 유령/ 백건우, Nocturne in C major FP 56 No.1


그리고.. 지침의 상황에서 남편이 요즈음 좋아한 노래인데, 가사도 그렇고 그런 분이 있다면, 한번 추천드려 봅니다. 광고나 영상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노래예요~^^

유튜브에서- imagine dragon, walking the wire

매거진의 이전글 34. 디딤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