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련나무 Dec 04. 2023

36. 간절해지고, 그리워지는

'간절하고 그리운'..

내가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게- 브런치 스토리 작가가 되기 전부터 글을 썼고- 그건 대략 올해 2월 말에서 3월 초였다.


3월 초로 어림잡아도 이제는 아기가 엄마 뱃속을 박차고 나갈 10달째에 이르렀음에 틀림없다.

 

그 중간에 글을 쓰는 게 여러모로 어려워서 쉬었던 잠정 휴식기도 있었지만, 10달을 어쨌든 브런치 스토리의 시스템에 적응해 가면서 글을 썼다.


글을 쓰면서 나 자신에게 가장 큰 화두는 나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가 아니었나 한다.


자세히 쓰기는 그렇지만, 그 10달 사이에 나와 남편의 신앙고백을 담은 글, 간증문을 쓴 적이 있었다. 10달의 글 쓰기 중에 가장 어려웠던 글이 바로 그 간증문이었다.


고민도 많이 했고, 시간도 가장 많이 투입됐고, 신앙적인 면과 여러 가지를 같이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간증문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께 올려드린 감사의 편지이기에 그건 내 손을 떠난 글이다. (그래서 그 간증문에 대해서는 어떤 유형의 질문도 이야기도 받지 않는다.)


그래도 언급하게 된 건,  간증문 중간에 쓴 문장이 오늘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남편과 교회에 같이 다녀오는 길에는 이 예배가 같이 교회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배일까 해서 간절하고 그리워진다'는 유형의 문장이었다.


"간절해지고, 그리워지는" 이 요새의 내 삶의 키워드 중 하나인 듯 싶다.


몇 번 썼지만, 남편이 24시간을 아프고 있다. 음식을 먹고 싶어 하지만, 음식이 입에 들어가면 고통이 더 커진다.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조금을 움직이는 것도 참 힘들어한다.


곧 있으면 바꾼 항암제의 효과를 확인하는 CT검사 결과 확인일이 다가오는데, 현재 상태로 보면 낙관적인 결과가 있을까. 싶은 물음표의 상황이다.


그 날, 또 어떤 큰 계단 하나를 성큼 떨어지듯 내려가야 하나.. 만약 지금 층계에 그대로 머무른다 해도 그게 기쁠까 싶다.


머무른다 해도 아마 2달의 유예를 얻는 것 외에는 또 이 불안과 고통의 시간과 싸워야 한다는 것에는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24시간 남편이 아파도 신음소리만 낼뿐, 남편은 절망에 빠지지 않았다. 괴롭고 힘들지만 남편은 나에게 방긋 웃어준다.


그렇게 견디는 남편에게 단 한번 만이라도.. 좋은 소식이 들려졌으면 좋겠는데, 그건 엄청난 욕심일까 싶기도 하다.


남편과 집에서 1분 거리의 아파트 재활용장에 재활용을 하러 같이 걸어가는 그만큼의 걸음도 너무 소중하다. 심지어는 작은 일로 남편을 타박하는 순간도, 남편이 있어서 말하는구나- 싶어 귀하다.


아무것도 아닌 순간순간이 "간절하고, 그립다". 그와 동시에 마음속에서 빛을 바래가는 것도 있다. 맛있는 음식, 나를 위한 소비 같은 것들이다.


맛있던, 맛이 없던 남편은 이제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음식을 예전만큼 하면 남거나 버리게 된다. 먹는 게 하나의 고통의 도전이 돼서, 음식을 봐도 이제는 마음에 기쁨이 줄어든다.


같이 먹으며 웃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먹는 게 다채로운 즐거운 의미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 의미들이 줄어든다.


나를 위한 소비도 그렇다. 남편은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먹지 못하고, 원래 알뜰하다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멋 부리는 옷도 신발도 사지를 못한다. 뭘 사다 줘도 누워서 고통을 삭히느라 정신이 없어 그걸 누릴 시간이, 마음이 작아졌다.


그러다 보니, 나도 뭘 사면, 남편은 지금 이것도 누리지도 못하고, 뭔가를 살 마음의 욕망도 없어졌는데, 내가 뭔가를 누리고 사겠다는 욕망이 있다는 게 우습다.


결국 아마 아프고 힘든 일이 생기면 그 물건에는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어딘가에 쓸 돈이 있었는데, 그게 잠시의 사고자 하는 마음과 교환이 되어 의미 없는 물건으로 남았을 뿐인 것이다.


무엇이 나와 남편을 살리는 소비인가. 무엇이 의미가 있는 소비인가.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이런 일이 생기고 나니, 남편과 같이 나누었던 추억이 가장 의미가 깊다. 가끔씩 우리는 우리가 웃고 즐기고 체험했던 일에 대해 다시 얘기하며 즐거워한다.


지금 현재는 어디에 소비를 하는 게 가장 현명한지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아프기 전의 소비를 생각하면- 그렇게 같이 새로운 곳을 함께 여행하는데 소비한 게 가장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돈을 모으려면 해외여행은 멀리 해야 한다지만, 그 때 그 욕심 안 누르고 같이 갔다 온 건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말이다.


요새는 글을 쓸 수 있는 그 무엇이 내 안에 멈춰버렸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가장 큰 건, 남편의 고통 앞에서는 지금 나의 모든 게 멈춰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도 내 안의 넘기 어려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가는 것 같다. 힘이 부친다.


소설의 소재는 몇 가지 가지고 있다. 소설을 쓰면서, 내지는 다른 글을 쓰면서, 생각이 확장되면서 읽고자 하는 책들이 많이 생겼다.


읽지 않고 그 글들을 더 진행하고 싶지 않아 졌다. 읽는데도 시간이 걸리는데, 읽고 내가 소화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책을 읽고 나면, 한 권의 책의 여운에서 벗어나는데 2-3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왜인지는 모른다. 내가 그렇게 생겨먹은 것뿐이다.


지금도 바디 익스체인지 3편을 써야 하는데, 그 3편을 쓰기 위해서는 미하엘 엔데의 '모모',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정보라의 '고통에 관하여' 는 보고 나서 써야 한다고 생각고 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근데 내가 직성에 차지 않아서 읽고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연재일에 쫓겨 그냥 썼다간 아쉬움, 더 나아가 후회가 드는 글이 써질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콩나물 대가리를 열심히 그리고서는 종이 악보를 북북-찢어버리는 작곡가의 심정이 이해가 될 것 같고. 그림을 다 그려놓고, 캔버스를 찢는 화가의 마음이 이해가 될 것 같다.


이상한 완벽주의가 여기서 탄생한다.


그래서 우선 바디 익스체인지를 제외하고는 잠시 글쓰기를 멈춰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디 익스체인지도.. 연재일은 약속이라던데, 최대한 지켜보려 노력하겠지만, 연재일을 지키지 못하는 날도 생기지 않을까. 싶다.


결국 연재 브런치북 발행은 과욕이었던 것 같다.. 그냥 쓸걸... 후후.. 어쨌든 그냥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


언젠가 쓰고 싶었던 얘기인데, 오늘은 해봐야겠다.


남편이 처음에 이 병을 진단받았을 때, 나는 많은 것이 궁금했다. 라면은 먹어도 되는지(하루아침에 잘 먹던걸 못 먹게 하기는 어려우니까.).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영양제는 어떤 걸 먹어야 하는지. 머리가 빠지면 어떻게 관리를 시켜줘야 하는지 등등...


아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이 자리를 빌려 내 의견을 말하란다면 "그건 사람 따라 다르고, 상황 따라 다르다. 그리고 완전히 안 되는 건 없다."이다.


남편은 지난주에 1년 만에 떡라면을 먹었다. TV에서 그렇게 자주 라면 먹방이 나오는데, 이만큼 참았으면 정말 용하다 싶다.


라면을 2개는 가뿐히 먹던 남편이 이제는 1개를 간신히, 그것도 아파서 2번에 걸쳐 나눠먹었다. 아이스크림도 마찬가지다. 밤에 먹고 싶다고 해서 지난번 말도 안 되는 시에도 썼지만, 붕어싸만코를 사서 나도 남편도 자정을 넘어 먹었다.


24시간 고통 속에 있는데, 그거 한 번 먹고 싶다고 못 먹게 하면 얼마나 스트레스받을까 싶어서 떡라면도 붕어싸만코도 대령했다.


그 고통 속에서 잠시라도 한 번 시원하게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리고 먹을 것도 얼마 먹지도 못하는데 건강한 음식으로만 강요하면 얼마나 힘들까 해서 먹게 했다.  


운동도 처음에는 1만 보 걸었다. 근데 지금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걸음도 느려지고, 움직일 때마다 허리의 시큰거림과 복통이 수반되는데, 운동을 하라고 하는 게 가혹해서 말하지 않는다. 일상생활도 안되는데 그걸 강요하는 건 나는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남편이 컨디션이 좋은 날은 혼자 집에서 스쿼트를 한다. 허벅지 근육이 소실되는 게 본인은 싫다 한다. 아파하면서도 아파트 놀이터라도 걷고 오려한다.


여기까지 길게 내용을 쓴 건 즉. "그래서 그건 사람 따라 다르고, 상황 따라 다르고, 그리고 완전히 안 되는 건 없다"에 대한 나의 소신에 대한 뒷받침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한 일은 하면 안 된다. 38도 넘는 열은 반드시 응급실에 가야 한다. 면역 관리가 필수이므로 생(生) 음식은 피해야 한다- 예를 들면 회 같은 것. 간수치 관리는 정말 중요하므로 즙이나, 한약, 고농축 음식이나 보조제는 피해야 한다.


위험한 일은 하면 안 되지만, 절대로 안 되는 일 외에는 고무줄 같은 융통성이 발휘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집은 먹지 못하는데 수박만은 먹는 집이 있다. 우리 집은 수박이 아닌 귤이다. 이처럼 음식도 그 사람 따라 다른 법이다.


길게 썼는데, 투병생활을 거치다 보면 환자와 보호자 간의 이해와 사랑으로 만들어지는 그 시간을 헤쳐가는 방법이 나올 것이다. 상황은 계속해서 바뀌지만, 암투병은 정답이 없는 것 같다.


그저 "간절하고 그리운" 지금을, 할 수 있는 만큼- 잘 헤쳐나가는 수밖에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35. 지침에 대한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