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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나무 Aug 27. 2023

어느 날, 밤에 다녀보니.

빛. 드라이브. 야경. 우동.

어둠이 내려앉은- 그렇다고 내일이 오지 않은 밤의 도시는 빛이 그리는 그림이다.


전기 빛이 하얀색, 주황색,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을 발하며 거리 위의 서울의 모습을 그려낸다. 내 키로는 닿을 수 없는 곳에 가로등이 촘촘히 서있다. 빛을 흠모하는 날벌레들은 그냥 무턱대고 그 빛을 향해 달려든다. 날벌레가 보이지 않는 계절에는 빛에 투과된 먼지인지 공기인지 알 수 없는 입자들이 몸을 반사시키고 있고,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에는 비나 눈을 더 두텁게 보여준다.


저 멀리 보이는 태닝한 오렌지 색 불빛에 내 손을 갖다 대어도 난 그 빛을 가질 수 없다. 그냥 그 빛은 내 손을 투과하여 만져 볼 수 없지만- 눈에는 볼 수 있는- 그런 소유할 수 없는 빛이- 달리는 차의 밖으로 나의 눈동자와 함께 달려가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집값이 너무 비싸 내 한 몸 고되게 일해도 아주 먼 미래에 내 집이 있을 것 같은 날에는, 세상엔 집이 이렇게 많은데, 왜 내 집은 없는가- 좌석에 간신히 밀어 넣은 내 몸을 실은 버스 차창 밖 아파트를 보며 한숨 쉬는 날이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도로에 늘어선 자동차들을 보며, 난 세상에 차가 이렇게 많구나. 그 차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생각한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차들이 24시간 도로에도, 주차장에도 가득히 메워져 있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자동차가 어둠의 반점을 끼얹혀 진채로 늘어선 도로에서 빛과 함께 질주하는 차들이 신기할 것도 없는데도 그저 신기하여 쳐다본다.


자동차 앞의 빨간 헤드라이트 불빛을 보며, 어둠 속에 나의 존재를 알리는 차를 생각한다. 뒤의 브레이크과 가는 방향을 알리는 깜빡이의 불빛을 보며, 사람들은 약속된 신호를 불빛으로 나타내는구나, 그제야 사람을 생각한다. 각 자동차는 면으로 선으로 "나예요"라고 빛을 발한다.


남산 1호 터널에 다다르자, 터널 속 빛들이 확 시야에 들어온다. 바닥면의 하얀 작은 라이트와 위의 옅은 오렌지 빛 전등, 그리고 옆면에는 반사된 빛인지, 미리 설치된 조명인지 빛이 쏜살같이 확 퍼진다. 단지 터널을 지날 뿐인데, 멋진 빛의 전시회에 온 것 같다. "드라이브할 맛 나네!" 막히지도 않고 적당한 속도로 달리다 보면- 야경이 발하는 매력에 흠뻑 빠진다.


좀 출출하다. 딱 우동과 유부초밥 먹고 싶은 그런 위장의 바람이 머릿속에 전달되어 왔다. 전기 빛이 없는 노란 간판에 위에 하얀 전기 빛을 발하는 "우동" 두 글자가 새겨진 가게는 "알배기"였다. "알짜배기"에서 "짜"를 발음하기도 바쁘게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 24시간 우동을 파는 그 가게는 도로 위의 진정한 미식가- 택시 기사님들이 이미 찜해놓은 곳이었다. 주차 자리는 1개인데, 그 밖으로 택시 여러 대가 줄을 서있다.


이 시대에 아직도 8천 원 미만의 가격으로 우동을 파는 착한 가게는 기사님들의 허기진 배를 달래고, 나갈 때는 든든한 에너지원이 되어 철야 근무를 이겨내게 할 것이다. 오래 있을 수도 없다. 자리는 어떻게 어떻게 20명 좀 못되게 앉게 배치를 하였으나 사람들은 그 이상으로 그 가게를 찾았다. 빨리 일어나는 게 미덕이다.


20대부터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혼자 와서 짜장면도 시키고, 여럿이 와서 김밥에 우동에 비빔면도 시킨다. 나는 얼큰 어묵 우동에 김밥 한 줄 주문해 본다. 참기름을 바른 김밥이 윤기를 내며 접시 위에 빛난다. 젓가락으로 꼬다리부터 시식해 본다.


그렇게 한 개, 한 개 집어 먹은 김밥이 사라질 무렵 드디어 얼큰 어묵 우동이 출현한다. 천 원에 곱빼기 된 데서- 천정부지로 오르는 식재료 물가에 그냥 한 그릇 먹으면 서운할까 봐 천 원을 흔쾌히 낸 그 "곱빼기 얼큰 어묵 우동"은- 그냥 시켰어도 전혀 서운하지 않을 양을 담고 있다. 생면이라던데, 진짜 알배기네~ 어쨌든 끝까지 비우자고 나 자신에게 다짐을 시킨다.


멸치 육수 위에 적당한 탱탱함을 보이는 얌전한 면이 소복이 남겨있다. 넉넉한 어묵에 쑥갓, 그리고 "얼큰"을 위한 빨간 양념장이 함께 담겨 나온다. 젓가락으로 양념장을 휘휘 저어 국물을 벌겋게 만든다. 먼저 국물 한 수저- 기분 나쁘지 않은 얼큰함이 느껴진다. 젓가락에 쑥갓과 면을 같이 말아 올려 입에 넣어본다. "맛있다". 내 위장은 정확히 내가 미래에 만족할 그 메뉴를 알고 있었다. 똑똑한 위장 같으니라고. 수고했다는 말 대신 빨리 우동으로 급여를 넣어준다.


점점 먹다 보니, 얼큰이 위력을 발한다. 벌건 국물은 먹을수록 매워졌다. 찬물을 들이켜보고, 혀를 내밀어 공기에 식혀보기도 한다. 그래도 맛있어서 멈출 수가 없다. 코를 훌쩍이며- 면을 한껏 들어 올린 젓가락을 다시 입에 가져간다. 점점 위가 물과 우동으로 포화 상태다.


큰일이다. 섣불리 곱빼기를 시킨 것을 반성하지만, 그릇에 남은 우동은 꼭 내 위장에 담아 집에 데려가고 싶다. 무리해서 입에 넣고 또 넣는다. 결국 멈춘 젓가락에, 그릇은 천 원어치 만큼의 나의 욕심을 보여준다. 아... 천 원... 아... 얼큰한 이 맛...


무리해서 중독되기 전에 빨리 결제를 하고 가게를 나선다. 신호등이 깜빡이는 거리로 다시 나왔다. 아직 밤은 끝나지 않았다. 저 멀리 전기 빛이 없어도 보이는 달이 보인다. 아침이 와서 이 우동의 맛이 소화되기 전에 야경 속에 내 몸을 더 던져야 한다.


그렇게 밤에 녹아든다.



"우동"은 바른 맞춤법에 따르면"가락국수"이지만, 현실감을 주기 위해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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