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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나무 Aug 30. 2023

나는 임산부가 아니에요.

내 배가 오해받았던 날의 해프닝

남편과의 암투병기로 인해 글이 너무 무거운 듯해서 요즘은 떠오르는 대로 여러 글을 시도해보고 있다. 오늘도 남편은 항암 주사를 맞고 식은땀과 구토와 통증에 말할 기운조차 없지만.. 지켜보는 나는 그냥 내 자리를 지키는 게 의무다. 그래야 뭐가 돼도 남편에게 내 마음의 여유를 내어 줄 수 있다.


고로 오늘은 나의 웃지 못할(?) 해프닝 하나를 글짓기로 공개해 보기로 한다. 는 내가 28살 때쯤?만 먼 과거라고 해두자...


회사에 출근했는데 너무 아팠다. 나의 고질병. 편두통이 왼쪽 관자놀이를 드라이버로 조이는 듯한 통증으로 찾아왔다. 아마 좀 있으면 시야가 정신이 없어질 것이고, 그리고 나면 먹은걸 다 비워내도, 소화액까지 게워 내는 듯한 멈추지 않는 구토가 올 것이다. 엔딩은 늘 새벽에 가는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고 살아나는 나였다. 정말 억울한 건, 나으면 거짓말처럼 낫는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많이 나았다. 그리고 정말 드물게 찾아오는 데다가, 찾아올 때 전조 증상이 나타나면 방지약을 먹어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 곤란할 때는 깊이 잠들었을 때 전조증상이 나타나- 일어났을 땐 이미 편두통이 진행 됐을 때다. 그러면 그 날 하루는 그냥 약 먹고 침대에서 버텨야 한다. 그러면 낫는다. 요새는 참 다행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그래도 지금 많이 나아 너무 감사하다.


편두통이 나을 때쯤엔 머릿속에 맑은 하늘이 떠올랐다. 거품을 가득 머금은 카푸치노가 떠오르는 뭉게구름이 있는 파란 하늘. 그제야 코로 상쾌하게 숨이 쉬어졌다. 그 때의 '다 나았다'는 안도감은 잊히지 않는 상쾌함이다.


편두통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그 편두통이 진행되면서 나는 부장님께 말씀드리고 조퇴를 했다. 하필 월말 월초라 실적 결산과 보고서가 압축된 날이었는데, 안 그래도 자주 아픈데, 또 조퇴까지 한다니- 고운 시선은 못 받고 반차를 내고 회사를 나섰다.


편두통은 겉보기에는 멀쩡하다. 누가 알겠는가, 머리가 그렇게 깨질 듯 아픈 것을- 속에서 구역감이 시작된다는 것을- 그게 며칠 간 이어지면 겉모습은 멀쩡한데, 꾀병으로 오해받기 쉽다. 안타깝게도.


그래도 일해보겠다는 책임감으로 노트북을 검은 노트북 가방에 담아 어깨에 메고 회사를 나섰다. 그 날 나는 출근하면서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 예상조차 못했다. 날이 좋아서 살랑살랑 샤랄라~ 보라색 시폰 원피스를 입고 검정 단화를 신고 출근했다.


머리는 너무 아프고 기운은 없는데 지하철에 앉을 곳은 없었다. 완전 만원은 아니었는데- 앉을자리는 어쨌든 없었다. 그렇다고 바닥에 주저앉을 수도 없고, 아프다고 말해서 누군가를 일어나게 하는 일은 왠지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 몇 정거장만 잘 버티자. 내 앞의 누군가가 내릴 때가 오겠지.' 손잡이를 잡은 손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그렇게 참고 있을 때였다.


내 앞에 앉은 50-60대 여자분이 "괜찮아요?"라고 물어보셨다. 빼짝 말라 길쭉한 처자가 하얘진 얼굴로 앞에 부담스레 서있어서 좀 입장이 난처하셨나 보다 생각했다. 그 분의 한마디에 그 줄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림을 느꼈다. "네, 괜찮아요." 그리고는 그냥 그대로 서서 갈 작정이었다.


"안 괜찮을 텐데.." 

"내가 딸 있어서 잘 알아요. 임신 초기라 힘들죠? 힘들 땐, 힘들다고 말해도 돼요."

이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린가. 결혼도 안 했고, 심지어 연애의 '연'자는 몇 년째 구경도 못했는데, 이 무슨 소린가.


일순간 그 줄에 앉은 모든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다행히 여자가 더 많았다. 그 분은 더욱더 친절함과 공감대 형성을 위해 옆의 비슷한 또래의 모르는 분에게도 말을 붙이신다."그렇지 않나요?""맞아요. 우리 며느리도 그랬어요." 두 분은 갑자기 내 뱃속의 있지도 않은 아기를 위해 정의감을 발휘하신다.


'내가 왜 갑자기 임산부가 된 거지?' 그렇다. 나의 천연 똥배는 샤랄라 원피스가 에어컨 바람에 나부끼면서 배에 들러붙었고, 내 어깨의 노트북 가방의 무게는 더 옷을 밀착시켜 배의 형태가 더 드러난 거구나. 거기다 어지러워하니. 지하철 셜록 홈 여사님들이 잘못짚을 수밖에 없구나.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나는 편두통 보다 내 배가 똥배라고 고백하고 해명해야 하는 그 상황이 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모두의 걱정 어린 눈빛 속에 셜록 홈즈 여사님들 옆에 나의 자리가 갑자기 생겨난다.


"감사합니다." 감사.... 한건 맞는데.... 어쨌든 자리에 앉는다. "임신 초기에는 말해야 해요." 라며 내 배를 계속 바라보는 여사님들을 놔두고 나는 무릎팍에 얹혀 놓은 노트북 가방에 고개를 파묻는다. 아... 그런 거 아닌데... 아니라고 말하면.. 더 상황은 복잡해질 것 같고, 머리는 아프고... 그냥 내릴 때까지 고개를 파묻고 왔다.


어찌 됐든 자리에 앉아서 왔으니 친절함을 받은 셈 치고... 그렇지만, 이 수치심(?)은 무엇인가. 오해받은 내 천연산 똥배는 이 날을 위해 준비된 것인가.


그 이후로 배를 신경 쓰게 됐고, 그 원피스는 두 번 다시 옷장에서 나오지 못하게 됐다는- 현실 직시 해프닝은 여기서 마무리된다.


그래도 임산부와 아기를 생각하는 그 분들의 마음은-그리고 그 상황에 딸과 며느리를 생각한 그 분들의 마음은, 잘못된 추리에서 비롯되었지만, 이 세상에 필요한 마음일 것이다.


지하철에 온기를 가져다주고, 어쨌든 내가 앉아서 집에 가게 해 준... 내 똥배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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