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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나무 Dec 25. 2023

글을 쓸 수 있을까.

푸념 &'종이달'에 대한 짧은 독서 감상문

거의 2주 만에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쓰고 있다.


입력-출력하듯 자연스레 글을 썼었는데, 여러 일, 여러 생각들에 파묻혀 글을 쓸 수 있는 뭔가가 멈춰버렸다.


더 글쓰기를 멈추면, 점점 더 글 쓰는 게 멀어질 것만 같아. 오늘은 마른 수건에서 물을 짜내는 심정으로 글을 쓰고 있다.


단편적인 문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지고는 했는데, 마치 내리는 눈을 손에 받았을 때, 차가움만 남기고 녹아버리는 것처럼 더는 진척시킬 수가 없었다.


글쓰기에 슬럼프가 오나 보다. 동기가 명확하지도 않은데, 글은 써야 마음이 편해져서 두서없이 일기 같은 오늘의 글을 써본다.


얼마 전 브런치스토리 공모전 결과를 봤다. 당선작을 보면서, 제목과 소재부터 신선하고 팍! 하고 마음에 닿는 그 작가들의 글을 보면서 내 부족함을 다시금 느꼈다. 사실 내 글이 당선될 깜냥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당선이 되고 싶었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런 이유에서였다. 난 나이가 있다. 글을 쓰는 출발 선이 늦었다. 좋은 관련 학벌도 없고, 지금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며, 사람들 앞에 나서고- 노출하는 게 부담이 많이 된다.


하다못해 요새 작가로 잘 되는 분들은 외국에서 살거나 살았던 이력이 있다. 또 하나는 이름 있는 출판사를 만나면 실력 있는 편집자를 만나 내 글을 다듬는 과정도 거쳐보고 싶었다.


결국 마케팅하기에 좋은 여건이 아니어서, 브런치 당선작이라는 네임드-(?)가 붙으면 내 모든 고민이 많은 부분에서 해결이 되었다. 그래서 그냥 바랬다.


그냥 내 속 털어놓은 이 글들로 그냥 되기를 바랐는데, 마치 쌀을 씻어 놓기만 하고 알아서 밥이 되길 바란 그런 꼴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출판을 하겠다면, 좀 더 노력이라는 것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야 뒤늦게 로또 같은 요행을 버리기로 다짐했다.


노력도, 내가 싫어하는 일들을 감수하지 못한다, 그런 요행이나 일확천금 같은 일에 대한 마음을 비워야 하는 게 순리에 맞는 삶이다. 그렇게 된다면, 브런치 스토리는 취미 생활 정도 될지도 모른다.


마음의 탈피가, 행동의 탈피가 필요한 시점이다.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말이다.


또 하나 느낀 건, 생각보다 응모작이 적었다는 것이고, 생각보다 당선작에 참여한 출판사가 적었다는 것이다.


독립이나 자가 출판이 늘었거나, 출판 업계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거나 사람들의 글에 대한 트렌드가 웹소설, 웹툰, 영상물로 넘어갔다는 방증인가 싶기도 했다.


요새는 너도나도 에세이를 쓴다. 쓰고 책을 낸다- 갖은 사유로. 이번 당선작들도 대부분 에세이였다. 에세이가 트렌드고, 그 에세이를 출판하고자 하는 사람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그냥 글을 쓰면 에세이가 되는 걸까. 마치 지금 내가 두서없이 쓰는 이 글처럼 말이다. 나부터 에세이를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을 돌이켜봐야 할 지점이다.


지금 이 글은 일기다. 에세이가 아니다. 내 관점에서는. 카테고리를 늘리기 싫어서 그냥 에세이에 넣기는 하겠지만.


요새는 책을 보는 시간이 나름 늘어났다. 읽을수록. 글을 출판해 내서 책 한 권 내겠다는 내가. 작아지고. 용기가 사라진다.


책을 보는 건 재밌지만, 내가 작가가 되겠다는 건 다른 문제였다.


요 근래 읽은 책은 종이달(가쿠다 미쓰요), 저주토끼(정보라), 내가 만든 신(팀 켈러)였다.


종이달은 전에 얼핏 스치듯 김서형 배우가 나오는 장면을 몇 분 보고 못 본 드라마였는데, 알고 보니, 원작은 이 일본 책이었고, 일본에서 예전에 드라마로도, 영화로도 나온 작품이었다. 우선 원작을 보고 드라마를 보고 싶어 열심히 읽었다.


간략히 얘기하면 아무도 범죄를 저지를 거라 예상치 못한 여자(우메자와 리카)가 금융범죄를 저지르는 내용이다.


그와 동시에 다른 3명의 삶을 약한 비중으로 더 다루는데, 돈이 어떻게 그들의 삶과 가치관을 얽매었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소설 속 리카의 삶은 리카의 작은 마음속에서 소리 지르지 못하는 절망을 안고 작은 새장 안에 작은 새 같은 것이었다.


남들 보기에는 아쉬울 게 없는 삶인데도, 리카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일상의 절망에 빠진다. 결국 자신을 가둔 새장 속에서 자신을 가둘 다른 새장으로 부르는 소리에 넘간 그녀의 이야기다.


금융범죄를 저지르는데, 리카에게는 죄책감이 없다. 가짜 예금 증서를 만들고, 고객들의 돈을 자신의 카드 값을 갚고, 불륜 연하남과의 데이트를 위해 사용한다. 


언젠가는 그 부정 사용한 돈을 다 갚을 거라고 생각하다 나중에는 너무 금액이 커지자 갚을 엄두를 내지 않고, 그 금액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잊어버리고 이 범죄를 계속하기 위한 쪽으로 머리를 굴린다.


그러면서 도저히 멈추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때쯤은 속죄를 하고 싶다기보다, 누군가 알아차려서 자신을 말려주기를 바라게 된다.


그리고는 자신의 범죄가 발각될 즈음, 태국으로 도망 가서 들키지 않기 위해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며, 화려했던 얼마간의 삶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며, 그렇게 글은 마무리된다.


리카에 대한, 리카의 마음에 대한 묘사가, 그리고 돈을 쓰거나 아껴 쓰는 다른 3명의 심리 묘사가 매우 섬세하다.


책을 번역한 권남희 님의 글에서도 "개인적으로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데, 마치 꿈틀거리는 장어를 잡은 것처럼 무섭도록 생생한 기분이 든다."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이다.


근데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시청자의 보기 편한 당위성을 위해 그저 그녀의 삶을 응원하고 보듬어주지 않는 남편의 잘못으로만 리카의 모든 행위가 설명되고 있다.


여기에서 영상물의 한계를 좀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리카가 입체적인 인물로 나오는 느낌 또한 영상물의 장점이었다.


'종이달'이라는 제목은 나는 금융 사기를 치기 때문에 돈을 형상화한 제목인가 했는데, 권남희 님이 일본 친구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연인이나 가족과 보낸 가장 행복한 한 때를 의미한다고 한다. 손에 잡을 수도 없이 지나간 그 시절을 제목으로 사용한 것이다.


종이달은 그렇게 재미있게 본 책이 되었다.


정보라 작가는 "저주 토끼"로 처음 만나 지금 그녀의 다른 책 2권을 더 보고 있는데, 언젠가 따로 감상문을 적어볼 예정이다. 요 근래 읽은 한국 소설책 중 가장 나의 마음에 파장과 놀라움을 선사한 책들이었다.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은 내가 마음에 만든 도처의 우상과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읽으면서 내 마음과 생각을 많이 돌아보았다.


그냥 지금은 그저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삶을 살아가며 지내고 있다. 이 모든 게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사람들은 아기 예수가 정치적, 경제적인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이라 믿었지만,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태워 모든 사람들의 죄를 태우셨다. 이게 신앙의 핵심인 그런 날이다. 우리의 생각과 다른 그분의 계획과 뜻이 있다.


그리고 곧 12월 31일이 그리고 2024년 1월 1일이 시작된다. 흐르는 시간 속에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닌, 헤엄쳐 역동적으로 생생히 살아가는 내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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