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련나무 Dec 30. 2023

눈의 도시

눈이 오는 날. 눈의 도시 삿포로 이야기.

2023년 12월 30일.


2023년을 1과 1/2를 남겨 놓고, 하늘에서 함박눈이 새벽부터 글을 쓰는 낮까지 쉴 새 없이 내린다.


위로 올려다본 하늘은 하예서 파란 하늘을 볼 수 없고, 햇빛은 하얀 얇은 종이 같은 눈의 층을 투과해 강렬함을 한 단계 낮춰 지상에 당도한다.


낭만적 표현을 쓰고 싶은데, 이런 큰 눈을 만날 때마다 난 두루마리 휴지가 물에 풀리는 광경이 떠오른다. 하늘에서 누가 하얀 휴지를 자꾸자꾸 찢어서 날리는 것만 같다.


바람 따라 얇은 휴지 조각들이 철없는 아이처럼 휘휘 떠돌다 -아직도 잎을 다 떨구지 못한 나무 위에 내리고, 도로에 내리고, 아파트 베란다에 내놓아진 어느 집의 장독대 위에도 내린다.


눈송이들은 그렇게 철없이 아무 데나 내려앉아 제 집인 양 자리하며 친구들을 만나 두터운 솜이불처럼 쌓여간다.


어느 글에서 읽었는지 모르겠는데- 사람은 자신이 태어난 달이 있는 계절을 보통 좋아한다고 한다. 나는 겨울아이인데- 그래서 그런지 이 겨울이 참 좋다.


산고를 치르고 미역국을 먹고 핏덩이인 나를 보며 고생했을 엄마를 생각하면, 추운 겨울에 몸이 더 시리지 않았을까- 이미 때늦은 걱정도 해보지만.


대학생 때였나(?), 김범수의 "보고 싶다" 뮤직비디오를 보았다. 삿포로를 배경으로 찍은 그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그렇게 눈에 잠긴 도시에서 뮤비 속 남녀의 애절한 애정을 보면서, 포근한 그 도시를 꼭 신혼여행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란다.


현실은 전혀 그렇게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말이다. 내 마음속의 고향은 삿포로다. 콕 찝어 말하면, 겨울의 삿포로다.


4-5번 정도 다녀왔는데, 사람들이 관광 명소라 하는 곳은 다 다녀오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난 삿포로를 참 좋아한다.


삿포로를 좋아하는 이유는- 도시가 차분하고 정갈하면서도 소소히 따뜻함이 있다. 아날로그한, 레트로한 부분들 있는데 그 부분들도 참 좋다.


눈이 포근히 도시를 덮고 있을 때도 내릴 때도 좋다. 그 고요한 차분함이, 상쾌한 공기가 자꾸 마음속에서 나를 부른다.


그리고 삿포로에 있는 나의 지인들이 참 좋은 사람들이어서 참 좋다.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데도, 신기하게 우리는 정을 나눈다. 언어가 잘 통하는 분들은 만날 때마다 늘 한결같은 정을 보여준다. 초코파이의 '정' 광고가 딱 들어맞는 기분이다.


하얀 마시멜로 같은 눈의 도시에서 초코의 달콤함과 부드러움을 느끼며, 한입 베어물 때, 초코파이의 정을 느끼는 그곳이 삿포로이다.


삿포로는 사실 스키 니아가 아니면, 2번 이상 갈까 싶긴 하다. 홋카이도 전체로 보면 노보리베츠 온천 지역도 있고, 전통적인 관광지인 하코다테도 있고, 요새는 니세코도 고급 스키 리조트가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저 위로 가면 정말 홋카이도 특유의 브라운 베어가 민가에 출몰한다고도 한다.


삿포로는 홋카이도 내에서도 꽤 도시이지만, 한적한 지방 도시이다. 도쿄와 오사카를 다녀오면, 그 차이가 극명해진다.


그런데도 겨울이 특색 있어서 인지 삿포로는 어딘가 나에게 포근하다. 큰 고층 아파트 단지도 별로 없는 것도 참 좋다.


처음 삿포로에 갔던 날, 도로에 내 키만큼 있는 눈 벽들을 보고 놀랬다. 삿포로에 날리는 눈은 오늘 눈 정도의 함박눈은 예삿일이다.


겨울에 여러 대비가 된 그 도시는 눈으로 도로의 횡단보도가 가려질 수 있어, 운전자에게 횡단보도의 위치를 알려주는 지표가 곳곳에 있다.


일부 주요 거리에는 열선도 깔려 있고, 가끔 인근 주택가를 가면, 부모들이 걷기 힘든 아기들을 썰매에 묶어놓고 끌고 다니는 광경도 쉬이 볼 수 있다. 그리고 밤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는 불차가 다니면서 도로의 눈을 녹이는 것도 보았다.


겨울에는 오후 4시가 되면 이미 저녁이 아닌 밤이 되어, 공항에 입점한 업체들은 보통 오후 5시까지는 문을 다 닫는다.


미끄럼 방지를 위해 삿포로에 갈 때만큼은 한국에서 잘 신지 않는 패딩 부츠를 신고 간다. 아이들은 거의 스키용품 같은 신발과 스키 장갑을 착용시킨다.


너무 칼추위는 아니지만, 어쨌든 추위가 있고, 눈은 지나치게 많이 내리고- 삿포로 가면 관광할 시간이 있을까 싶은데, 어찌어찌하다 보면 관광이 된다.


눈을 뚫고, 빙판길을 조심조심 걸어 상쾌한 바람이 내 폐에 들어왔다 나갔다 하면, 그 자체가 힐링이다.


이때 시오 라멘이나 시오 파스타 내지는 붓카게 우동을 먹으면 속이 따뜻해진다. 마치 추위 속에서 우리의 설렁탕과 곰국을 먹는 기분처럼 말이다.  


거기다 홋카이도 우유는 정말 맛있다. 우유 자체도 그렇지만, 홋카이도산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은 정말 추워도 손이 가는 부드럽고 달콤한 매력이 있다.


보통은 삿포로에 가면, 카레수프, 게요리, 징기스칸 등을 많이 먹는데- 나는 어쩌다 보니 게요리를 먹어보질 못했다.


카레수프는 처음에 먹으면 입에 맞지 않을 수 있다. 나는 한 3번 정도 먹고 나니 그 이후에 가끔 그 맛이 생각이 났다. 상한 이다.


삿포로는 달콤한 음식들이 많다. 나의 최애는 롯카테이의 버터샌드이다. 먹어보면 안다. 그 과자는 당신을 계속 유혹할 것이다~후후후.


그 외에도 수제 초콜렛- 일명 나마 초코로 유명한 로이드 초코의 본사가 여기 있다. 로이드 초코 테마 파크도 있다.


우리나라 쿠쿠다스 같은 시로이 고이비토(하얀 연인)과자로 유명한 이시야도 작지만 나름 아기자기 테마파크를 만들었다.


쓰다보니, 괜시리 신이 났다. 예전 기억을 더듬으니 괜히 행복한가보다.


예전에 다같이 지인들과 모여 백화점에 있는 카페에서 스트로베리 홍차 세트를 시켜 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


남편과도 두어차례 다녀왔는데, 삿포로에 시큰둥 하던 남편이 도착 첫날, 그 도시에 반해버렸다.


그 고요한 차분함 속의 포근함, 상쾌함.- 우리는 같이 빠져서 이제는 남편도 나와 같이 1년에 한 번은 꼭 가고 싶은 곳으로 그 곳을 꼽는다.


늦은 저녁 추위 속에 노천탕에서 몸을 담그면, 얼굴을 시원한데, 몸은 따끈하고, 하얀 입김과 하얀 콧김을 날리면서 까만 하늘을 바라보는 매력에 한 번 더 마음도 담겨진다.


일본에 가면 한국에서는 자주 안마시던 녹차와 우롱차를 자주 마신다. 따뜻하고 차분한 찻잔에 담긴 녹차를 하얀 눈의 도시를 바라보며 마시는 기분은 내 마음도 그렇게 정갈해지는 것만 같다.


예찬 같기도 하고, 여행기 같기도 하고, 추억을 더듬은 것 같기도 하지만, 내 마음속의 눈의 도시가 있다- 그 도시에서 내가 사랑하는 기억을 글로 남겨보고 싶었다.


이렇게 서울에도 담뿍 눈이 오는 그런 날에 말이다. 2023년의 달력을 2장 남 그런 날에 말이다.


내년에는 건강해진 남편과 그 곳에 가서 남편이 먹고 싶은 음식 다 먹고, 즐겁게 이곳 저곳 다니며 관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년 만이 아니라 매년 그럴 수 있다면. 이라고 소원을 하나 더 추가한다.


눈이 내 마음을 포근히 적셔 애수에 담그었다.

 

시로이 고이비토 파크의 까만 초코(?)눈사람

*** 당분간 '그냥 에세이'. '암투병 남편과의 하루하루'는 댓글 창을 닫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을 쓸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