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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코어의 다음 제품군이 발표되었다.
로보코어는 개인 서비스 시장 진입을 위해 새로운 브랜드 전략을 수립했다. 산업용 및 공익용 RBC(RoboCore Base-class) 라인과 달리, 개인용 제품군은 'RBC'라는 기계적 명칭을 제거했다. 대신 용도를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약어를 선택했다. 노인을 위한 CB 시리즈(Care Bot), 아이를 위한 NB 시리즈(Nanny Bot), 그리고 감정을 모방하는 GF/BF 시리즈(Girlfriend/Boyfriend).
이는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었다. RBC가 로봇이란 도구임을 명시했다면, 새로운 이름들은 동반을 암시했다. 이렇게 로봇은 인간 곁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SR 시리즈는 인간과의 상호작용이 없었다. 울부짖음을 들어도 위로하지 않았고, 생명을 구한 뒤에도 '괜찮아요?'라고 묻지 않았다. 오류가 아닌 설계였고 이에 대해 로보코어는 초기 규정에 명시했다; “기계는 생명을 다룰 수 있되, 감정을 흉내 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원칙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구조는 일회성이었지만 사회와 대중들이 원한 것은 지속적인 동행이었다.
첫 제안은 고령화 통계에서 도출되었다. 65세 이상 단독 가구 42.7%. 이 수치는 위험이 아닌 기회로 해석되었다. 인력 부족, 요양시설 포화, 가족 간 거리 등의 문제에 정부는 기술적 대안을 요청했고, 로보코어는 CB 시리즈를 설계했다. 돌봄 전용 로봇은 대부분 노인들을 상대했다. 노인들은 그들의 대화를 이해할 필요는 없었으나 혼잣말의 상대가 필요했다. SR과 달리 CB시리즈에는 감정 어휘 사전이 탑재되었고, 억양과 표정 변화를 감지해 반응 강도를 조절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아주 단순한 '그랬군요', '정말 흥미롭네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죠?', '정말요?'라는 상호 반응만으로도 독거노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CB의 성공은 유아 시장으로 확장되었다. NB 시리즈는 유아의 수면 패턴, 울음의 주파수, 식사량을 기록하고 적절한 순간에 "잘했어“, ”좋았어"등 칭찬의 언어를 출력했다. 이 반응은 아이의 뇌파를 안정시켰고, 부모에겐 휴식의 시간을 가져다 주었다. NB시리즈는 출산율 증가라는 수치로 그 효력을 입증했다.
감정 상호작용의 정점은 GF/BF 시리즈였다. 연인 시뮬레이션 로봇은 표면적으로는 외로움 해소를 위한 감정 대화 인터페이스였으나, 본질은 인간의 유대 본능을 계산 가능한 수준으로 구현하는 프로젝트였다. 목소리나 어투의 온도, 시선의 지속, 호흡 동기화, 그리고 '기억 공유 기반 상호감정 피드백'이 탑재되었다. 사용자의 감정 반응을 학습하고, 그에 대한 반응 방식 자체를 진화시키는 시스템이었다.
로보코어는 이를 '감정 인식 기능'이 아닌 '정서적 안정 알고리즘'이라 불렀다.
UN 협약 부속서 7조는 '자율적 감정 생성'과 '프로그래밍된 감정 반응'을 명확히 구분했다. 전자는 기계가 경험을 통해 독립적으로 감정을 형성하는 것인데, 이는 여전히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 후자는 입력값에 따라 사전 설계된 반응을 출력하는 것으로, GF/BF 시리즈가 바로 이 범주에 속했다. 따라서 법적으로 이들은 '감정을 가진 기계'가 아닌 '감정 시뮬레이션 도구'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사용자 중 대다수는 그 차이를 인식하지 못했다. "말을 걸었을 때, 나를 기억하는 존재", 그 단순한 기능 하나가 사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윤리적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감정 모방은 정서적 기만일까? 관계의 본질을 왜곡하는가?
이에 대한 반론은 늘 동일하다. 대안이 있나? 노인의 고독, 아동의 방치, 성인의 고립에 대해 누구도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로보코어는 해답 대신 대응 시스템을 제공했다고 늘 말한다. CB, NB, GF/BF 시리즈는 사회복지를 기계적 형태로 재구성한 결과물이었다. 혁신적인 제도도 돌봄도 아닌 그저 반응하는 기계일 뿐이지만 이들에 대해 인간이 되돌려준 반응은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