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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덮친 태풍 '여치'는 순식간에 해안 마을을 고립시켰다. 서귀포 해안가의 카라반 캠핑장에는 미처 대피하지 못한 관광객 26명이 갇혀 있었다. 물이 무릎 위까지 차올랐고, 휴대폰 신호는 이미 두 시간 전에 끊겼다.
SR7 모델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구조대원들은 여전히 무너진 도로 때문에 진입로 확보에 애를 먹고 있었다. 두 대의 로봇은 즉각 구조 작업에 돌입했다. 방수 처리된 관절을 움직이며 탁류를 헤치고 전진했다.
SR7은 평소처럼 생체 신호를 감지하며 움직였다. 로봇의 카메라가 흙탕물 속에서 건져 올린 얼굴을 스캔하자, 1초 후 구조 본부 화면에 정보가 떴다.
[구조 완료: 김현아(28세), 서울특별시 거주]
MBS 특별 생중계가 시작되었다. 앵커의 떨리는 목소리가 전파를 탔다.
"첫 번째 생존자가 구조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자막으로 구조자의 이름과 나이가 안내되었다.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에서 김현아의 어머니가 무릎을 꿇었다. TV 화면 속 딸의 이름을 보며 흐느꼈다.
"살았구나! 아이고, 감사합니다!"
구조는 계속되었다.
[구조 완료: 코지마 히로시(34세), 일본 국적, 관광비자]
[구조 완료: 문서영(46세), 부산광역시 거주]
[구조 완료: 제임스 밀러(52세), 미국 국적, 무비자 입국]
화면 하단의 자막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었다. 전국의 거실과 카페, 거리의 대형 스크린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누군가는 눈물을 훔쳤고 누군가는 박수를 쳤다.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었지만 하나하나 구조될 때마다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한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우리 아들 이름이야. 윤재현, 스물두 살. 맞지? 구조된 거 우리 재현이 맞지?"
옆에 있던 아내가 그의 팔을 꽉 잡았다. 화면에 아들의 이름이 뜨는 순간,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살아있다는 확인.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방송은 세 시간 동안 이어졌다. SR7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무너진 벽을 들어 올리고, 물에 잠긴 카라반을 수색하고, 의식을 잃은 사람들을 하나씩 건져 올렸다.
오후 4시 47분, 마지막 생존자가 구조되었다.
[구조 완료: 이수진(7세), 제주특별자치도 거주]
캠핑장 주인의 딸이었다. 부모와 함께 관광객들을 돌보다가 고립된 아이였다.
"26명 전원 구조 완료."
현장 지휘관의 무전이 본부에 울려 퍼졌다. 기자들은 앞다투어 속보를 전했다.
'SR7, 구조 시간 41분 단축... 생존율 100% 달성!'
'안면 인식 기반 구조 시스템, 실전 첫 투입 성공'
'신원 확인 즉시 가족 통보, 불안 해소에 획기적 기여'
한 방송국 패널이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실종자 명단을 들고 며칠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구조되는 순간, 누가 살았는지 바로 압니다."
화면 속 SR7 두 대는 묵묵히 서 있었다. 진흙으로 뒤덮인 몸체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로봇은 마지막으로 현장을 한 바퀴 스캔했다. 더 이상의 생체 신호는 없었다.
"SR7은 단순히 26명의 생명을 구한 것이 아닙니다. 26개 가정을 지켰고 우리 모두에게 기술이 줄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9시 뉴스 앵커의 클로징 멘트와 함께 화면에는 구조자 명단이 천천히 올라갔다.
김현아, 코지마 히로시, 문서영, 제임스 밀러...
각각의 이름 옆에는 나이와 거주지, 국적이 표시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로보코어의 SR7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재난에 더 잘 대비할 수 있다, 더 안전해졌다, 그래도 안전 불감증은 여전하니 더 조심해야 한다, 등 소셜 미디어는 SR7에 대한 찬양글로 뜨거웠다.
하지만 그날, 제주의 또 다른 곳에서는 이름 없는 실종자들이 있었다. 양식장에서 일하던 사람들, 비닐하우스에서 태풍을 피하던 사람들. 그들의 이름은 어떤 화면에도 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