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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기적 같은 구조가 있은 지 불과 3일 후였다.
태풍 '여치'가 내륙까지 밀려오면서 경기도 시흥의 한 공장지대의 노후된 철골 건물 하나가 무너졌다. 제주에서 완벽한 성과를 보인 SR7-KR 모델이 다시 투입되었다. 사람들은 또 한 번의 기적을 기대했다.
왕리화는 물밖에 간신히 머리만 내밀고 있었다. 머리 위로 무너진 간판과 녹슨 철재 구조물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옆구리가 타는 듯 아팠지만, 그는 입을 다물었다.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 숨 쉬는 법보다 먼저 떠올랐다.
아니, 정확히는 들켜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로봇이 천장을 뜯고 안으로 들어올 때, 그는 자신의 이름은 화면에 뜨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제주의 관광객들처럼 가족이 TV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기다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위쪽에서 본부와의 무전이 들렸다.
"생체 신호 6개 감지. 신원 확인 가능 5명, 미확인 1명."
"확인된 대상부터 구조 진행."
SR7이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첫 번째는 정면에 쓰러진 한국인 남성이었다.
얼굴 인식 → 신원 확인 → 구조팔 작동.
[구조 완료: 박진수(43세), 시흥시 거주]
두 번째는 반쯤 깔린 여성. 호흡이 얕았지만 신원은 즉시 확인되었다.
[구조 완료: 김미영(38세), 안산시 거주]
세 번째는, 왕리화 바로 옆에 있던 동료. 보험은 없었지만, 학생비자 소지자였다.
[구조 완료: 첸웨이(24세), 중국 국적, D-2 비자]
SR7의 카메라가 왕리화를 스캔했다. 붉은 레이저가 그의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생체 신호는 분명히 감지되었다. 심박수 89, 호흡수 분당 22회.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데이터베이스 매칭은 실패했다.
[생체 신호 확인 - 신원 미확인 - C급 - 후순위 처리]
이 메시지는 오직 SR7의 내부 로그에만 기록되었다. 본부 화면에는 단지 '미확인 대상 1명 - 대기'라고만 표시되었다. SR7은 다음 대상으로 이동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구조가 이어졌다. 각각의 이름이 본부 스크린에 떴고, 구조 완료 신호가 울렸다.
마침내 SR7이 왕리화에게 돌아왔다. 다섯 명의 A급, B급 대상을 모두 구조한 후였다. 그러나 그때, 건물 상층부에서 새로운 경보가 울렸다.
"2차 붕괴 위험! SR7 즉시 철수!"
구조 프로토콜은 명확했다. 로봇 손실 위험이 70%를 넘으면 철수. SR7은 왕리화를 한 번 더 스캔했다.
C급. 미확인. 2차 붕괴 임박.
로봇은 철수했다.
왕리화는 그제야 입을 벌렸다.
"나... 나도... 있어요..."
목소리는 작고, 습기 섞인 철 소리처럼 떨렸다. 하지만 SR7은 이미 건물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공식 구조 작업은 종료되었다. 본부의 보고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감지 인원 6명. 구조 완료 5명. 미확인 1명 - 2차 붕괴로 접근 불가.'
언론은 '5명 전원 구조 성공'이라고 보도했다. 신원이 확인된 사람만이 공식 집계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한 시간 후, 2차 수색이 시작되었다. 일반 구조대원들이 조심스럽게 잔해를 헤집었다. 건물은 예상과 달리 무너지지 않았다.
"여기 누가 있습니다!"
한 구조대원이 철근 사이에서 손가락을 발견했다. 미약하지만 맥박이 만져졌다. 수동으로 잔해를 들어내는 데 40분이 더 걸렸다. 왕리화였다.
병원 응급실 기록지에는 이렇게 적혔다.
'도착 시 심정지 직전. 산소결핍에 의한 다발성 장기 손상. 장기간 저산소증으로 인한 뇌 손상 의심. 예후 불투명.'
주치의는 차트를 보며 중얼거렸다.
"하아... 한 시간만 일찍 왔어도..."
그날 저녁 뉴스는 제주 때와 달랐다. 실시간 구조 장면도, 감동적인 이름 호명도 없었다. 9시 뉴스 말미에 짧은 자막 하나만 떴다.
'시흥 공장 붕괴 현장, 2차 수색 중 추가 생존자 1명 발견'
왕리화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병원 기록에는 'UM-2035-1029-01'이라는 번호만 있었다. Unidentified Male, 2035년 10월 29일, 첫 번째 환자.
본부 관계자는 나중에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6명을 감지했고, 5명을 구했습니다. 그게 공식 기록입니다."
6명 중 5명. 하지만 처음부터 왕리화라는 이름은 그 숫자 안에 없었다. 감지되었지만 확인되지 않은 사람. 존재했지만 기록되지 않은 생명.
왕리화는 거기 있었으나 어디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