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백100back2

'그들'에게 눈길이 가는 건, 아니 에르노 때문이다

0.39 / 1546

by 크게슬기롭다

책방에 같이 갔던 지인이, 아니 에르노 책을 가리키면서 내게 말해줬다.


이 책을 보면, 다시 사랑을 하고 싶어져

그 말을 듣고 책을 펼쳤다. 책방 견본품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손때가 많이 타있었다. 제일 첫 장은 책 등에서 떨어져 종이 낱장으로 어딘가에 끼워져 있을 정도. 낱장 하나에 정말 강력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잠깐 동안 고작 그 한 장에 적힌 내용들을 읽었을 뿐인데, 아니 에르노에게 빠져들었다. 커피를 받아 들고서 지인에게 다시 이야기했다. ‘저 책 봐야겠어요. 엄청난데요?’



지인과 헤어지고 나서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연대 앞에서 내려 신촌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알라딘 중고서점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싶어 그대로 들어가 검색대에 다섯 글자를 입력했다.

아니 에르노

아까 책방에서 보았던 책, <단순한 열정> 이 최상단에 있었다. A03에 있다는 책을 집어 들고, 다시 첫 페이지부터 읽기 시작했다. 아주 강렬한 장면으로 시작하는 그녀의 책으로 나는 너무나 빠르게 빠져들었다. 첫 부분은 사랑에 빠진 여자가 상대방을 생각하면서 상대와 관련된 것들에만 관심이 가는 마음 상태를 다양하게 묘사했다. 그게 너무 신기했다. 내가 과거에 했던 모습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크게 놀라웠다. 그가 작성했던 시기와 그의 국적이, 내 모든 것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같은 것을 느끼고 행동한다는 게 반가웠다. 아니 에르노의 이야기였지만, 나 또한 에르노의 소설 덕분에 ‘나의 짝사랑하던 시절’로 돌아간 느낌마저 들었다. 동질감에 반가웠지만, 그 행동들을 인쇄된 글자로 보게 되니 낯설기도 했다. 눈에 불이 켜진 듯 항상 ‘그’를 찾아 헤매던 나, 그리고 그걸 다시 에르노의 소설에서 읽고 본다는 게 꽤 묘했다.


그의 책 < 단순한 열정> 은 단순하지 않은 열정을 보여준다. 이 책 속의 그의 열정은 식지 않는다. 식히려 노력하는 화자의 행동은 가상(?) 하나, 식지 못한 채 그대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다. 끝없이 불타오르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것들을 가만히 읽기만 해도 그것이 꽤나 복잡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화자의 마음이 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점에선 다소 단순할지 모르지만, 그 마음이 한 방향으로 흐르기까지 화자가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것들이 사실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역설적인 포인트를 잡고 싶었는지, 그 열정은 책이 끝날 때까지 끝이 나지 않는다. 그 마음을 계속 끙끙거리며 안고만 있어야 하는 화자의 고통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상대방을) 사랑하지만, 상대가 동일한 마음 상태가 아니라는 걸 수동적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화자는 그 생각들을 계속해서 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생각이 끝나야 하는 시점에도 계속해서 그 열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책은 끝을 맺는다.


너무나 짧은 책이라, 그리고 그 강렬함을 다른 사람들도 느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최대한 적게 책 이야기를 담았다. 그의 책 한 권을 읽고 나서 보니, 그와 같은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나 들었다, 생활 이야기를 이렇게 흥미롭게 작성할 줄 아는 그의 다른 글도 읽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검색대에 그의 이름을 입력했다.

아니 에르노의 책 중, < 부끄러움> 이라는 이름의 두 번째 책을 집어 들었다. <부끄러움>이라는 책도 첫 번째 책과 마찬가지로 얇은 책이었다. 집어 들고, 그의 첫 문장을 또 확인했다. 두 번째 책이었던 ‘부끄러움’에도 첫마디는 너무나 강력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는, 그 이야기에서 어떻게 ‘부끄러움’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 나갈지 궁금해졌다. 그 자리에서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단 두 권의 책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서서, 두 권의 책을 읽었다. 그 책들은 계속 내 머릿속과 입에 맴돌았다. 자꾸만 ‘아니 에르노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크게 외치고 싶었다. 그의 글쓰기처럼 디테일하면서도 인류학자 같은, 경험이 우러나있으면서도 일반화시킬 수 있는, 그리고 그 외의 온갖 비전문가스러운 느낌이 배제되어 있는 글 말이다. 그의 글머리에 있는 강력한 문장을 담은 나만의 글을, 문득 쓰고 싶어졌다.



아니 에르노를 읽고 나니, 거리 위 ‘그들’ 에게로 자꾸 시선이 모아졌다. 횡단보도에서도, 식당 앞 대기줄에서도 ‘그들’만 보였다.

라고 시작하는 글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맘먹은 김에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