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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Oct 15. 2023

지도를 그리는 사람은 길을 잃는 것이 두렵지 않다 1

<짧은 소설 써보기>

소설 속 모든 내용은 허구에 기반합니다. 극중 몰입을 위해 알려진 회사명을 기재했을 뿐,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다영은 온라인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그가 담당하고 있는 분야는 고객들이 자기네 앱에 들어와 어떤 행동을 하고 나가는지 그 ‘여정’을 만드는 일이었다. 고객 여정 지도, customer journey라고도 부르는 그것의 초안을 짜는 일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일을 담당했다. 메인 루트를 만들기도 하고, 팝업 창 같은 ‘지름길’을 만들어 고객들이 최종적으로 ‘구매하기’의 창에 도달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그의 팀은 자신들을 이 ‘온라인 콜럼버스’라고도 불렀다. 그 말을 만든 것은 그 팀의 팀장인, 다영이다. 물론 웹 디자이너와 프런트 엔지니어, 백엔드 엔지니어의 입김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앱의 화면을 구성하고 그 관계를 그리는 작업을 그는 사랑했다.


그의 팀은 다영을 선두로 삼고 두 명 더 존재한다. 가민과 나은, 둘은 데이터 분석을 전담하고 있다. 둘 다 쇼핑하는 것을 좋아했다. 다만 가격을 기준으로 물건을 선택하는 가민과, 질을 선택하는 나은의 행동 태도가 조금 달랐다. 다영은 그래서 그 둘의 조합이 꽤나 괜찮다고 생각했다. 고객을 크게 나누면 두 가지니까, 그 둘은 우리 앱의 고객을 대표하는 존재들이라고도 생각했다. 동일한 데이터를 가지고 소비자의 여정을 분석할 때도 그 둘의 관점에서 나오는 결론은 차이가 났다. 조금 더 가격 분포와 프로모션에 의해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잘 맞는 제안을 하는 것은 가민이었다. 가격들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뿐 아니라, 그걸 그래프로 그려서 ‘고객이 지금 자기 자신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크게 보여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실제로 내부엔 그와 비슷한 가설을 가지고 AB테스트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가민의 표정이 다이내믹하게 변하는 것을 다영은 보았다. 가민은 고객들이 자기 자신과 비슷한 가격대의 물건을 사는 사람들의 다른 움직임들도 궁금해했다. 결국 가격이 , 그러니까 그 사람의 경제 수준이 우리 앱에서 매출을 발생시키는 데에 큰 영향을 끼치고, 그걸 더 많이 유발하기 위한 프로모션을 제안하기도 했다. 물건끼리 가격경쟁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유저끼리도 가격 경쟁을 시키자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듣고 나은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가 원래 그런 식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게 가장 컸을 것이다. 가능한 한 많은 가격대의 비슷한 제품들을 한 번에 사보고, 스스로 생각했을 때 가장 적절한 수준의 가격대와 품질을 찾는 것이 그였다. 나은이 생각했을 때의 ‘적절한 수준 가격대’는 가민에게는 엄청나게 높은 수준이었지만, 나은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나를 사도 제대로 된 것을 사야 하고, 그걸 잘 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를 경험하다 보니 결국 ‘일정 수준의 가격대’는 있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나은은 우리 앱에서 제공하는 프로모션이 ‘품질’ 위주의 내용이 담겨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더 좋은 원산지, 더 안전한 먹거리, 또는 검증된 셰프의 음식이라면 그걸 선택하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물건을 구매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에 가품이 얼마나 많으냐, 생활 용품을 구매하다가 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으냐, 자잘한 다이소 물건들 100개씩 사도 마음에 들지 않을 바에야 처음부터 무지 제품을 사겠다,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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