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게슬기롭다 Aug 26. 2023

눈길을 빼앗겼다 2 (끝)

창작 소설 쓰기


기기 조사는 일주일 동안 진행해야 했다. 회사 사람들의 성격 상, 마지막까지 기다리지 말고 중간에 한 번씩 리마인드 메일을 보내야 한다는 인사팀장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때 그 회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반차를 내고 돌아와선 하나둘씩 답장을 보냈다. 그러나 딱 한 사람, 그때 그 직원만 메일 회신을 하지 않았다. 김용은 3일째 되던 날에 리마인드 메일 차 한 번씩 보냈다. 그래도 마지막 날까지 그 직원은 답변을 주지 않았다. 

기기 조사, 고작 몇 개의 단어만 써서 내면 될 일이었다. 그 사람이 쓰는 모니터와 데스크톱의 고유번호를 적어내면 끝나는 일이었다. 인턴 김용은 이 일을 잘 끝내면 수습기간 통과엔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합격한 이 회사에 조금 더 머물고 싶은 마음에, 그는 사내 휴가 일정 캘린더를 찾아 확인했다. 


그 직원은 긴 휴가를 내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5일 정도의 긴 휴가, 병가를 붙여 쓴 그 휴가 때문에 아직 메일을 확인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확인한다 하더라도 회사에 출근해야만 고유 식별번호를 확인할 수 있었다. 김용은 50%의 선의와 50%의 호기심으로 그 직원에게 메일을 보냈다. 

" 10일까지 답변이 없으시면, 제가 자리에 찾아가 확인하겠습니다. "


사실 오늘이 10일이었다. 그는 메일을 그렇게 보내놓고서,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 그의 자리로 찾아갔다. 그의 자리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속엔 설명할 수 없는 설렘이 일었다. 평소 즐겨보던 애니메이션 코난도 떠올랐다. 그도 첫 사건현장에 찾아갔을 땐 이런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잘 알진 못해도 그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쳐다본 이유의 실마리는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자리는 창문가 옆 구석이었다. 큰 통창 옆에는 책이 벽을 만들고 있었다. 그의 자리에는 거울이 3개나 있었다. 모니터 바로 아래 작은 손거울 하나, 왼쪽 끝 모니터 위 하나, 그리고 마지막은 오른쪽 벽에 붙어있었다. 각각 다른 각도로 놓여있는 거울이 꽤나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거울이 많이 필요하다고?라고 생각한 그였다. 


우선 모니터 뒤편으로 가 고유 식별번호 2개를 확인했다.  AB23491, AB23492. 그 옆 데스크톱에는 AC12423라고 쓰여있었다. 끝이었다. 김용이 더 이상 그 테이블을 기웃거릴 이유는 없었다. 그렇지만 김용에겐 남은 '호기심'이 있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고 눈을 떼지 못했다'라고 했지...


김용은 주변을 살짝 둘러봤다. 회사에 남은 사람들이 없었다. 누군가의 자리에 잠깐 앉는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살짝 의자를 빼서 자리에 앉았다. 엉덩이 부분이 굉장히 편안했다. 

'와' 그리고 나자 바로 그의 양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어떤 존재가 양 어깨를 누르는 것처럼 거세게 짓누르는 느낌을 받았다. 의자가 편안하지 않았다면 너무 거슬릴 정도의 어깨 통증이었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고개를 돌려 목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천장을 보는 순간, 김용은 알게 됐다. 


천장에 빨간색으로 된 세모모양의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재생 버튼에 그려진 것과 같은 방향으로 그려진 정사각형 세모였다. 그 세모를 보는 순간 갑자기 어깨의 통증이 없어졌다. 고개를 돌리니 다시 어깨와 승모근 쪽이 뻣뻣해짐을 느꼈다. 이상했다.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 똑같은 지점에서 다시 목과 어깨의 압박이 완전히 사라지고 편안해짐을 느꼈다. 마치 근육통 파스를 붙인 것처럼 시원한 느낌도 들었다. 

다행히 어떤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김용은 그렇게 한번 더 천장 위 세모를 쳐다보았다. 그 푹신한 의자에 앉아 한 번 더 그곳을 바라본 것이다. 


"진짜 신기하..."


라고 말을 뱉자마자 점점, 빨간색 세모의 크기가 커졌다. 정말 믿을 수 없어 몇 번 눈을 깜박거렸지만 그 세모는 점점 커졌다. 그 순간, 머릿속에 소리가 하나 울려왔다. 

"당신의 눈길을 빼앗겠어요. 당신의 눈이 어디에서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겠지만, 나는 그 눈을 빼앗을 겁니다. 

예를 들자면... 지금 당신은 제 눈을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저는 당신과 연결된 이 눈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움직일 거예요. 그럼 당신은 절 따라오겠죠? 저는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일 겁니다. "

'예를 들자면..?'

"우리 스승님이 말씀하시길, 어렵게 배워 쉽게 쓰라고 하셨습니다. 저희가 어렵게 배운 이야기를 쉽게 말해줄게요. 정신모델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정신모델은 무언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직관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들은 필요할 때만 움직이고 싶어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당신들을 움직이게 하기 위한 실험을 시작한 겁니다. 일단 눈길을 빼앗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주의력을 빼앗겼다'라고 표현하지만요, 그걸 주의력이라고 말하진 않을 거예요. 눈길입니다. 시선이 흘러가는 그 길목마다 우리는 서있을 겁니다.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말입니다. 쉽게 발견되도록 최적의 상태로 항상 놓여있을 거예요. 너무 자연스럽게 우리를 발견하고 싶어 할 겁니다."


그러고 나서 그 세모는 다시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 천장 위의 한 점이 되었다. 


김용의 어깨와 모든 목의 긴장이 사라지고, 이내 김용도 긴 잠에 빠져들었다. 

그다음 날 직원 하나가 첫 출근을 할 때까지 그렇게 그 자리에 계속 앉아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눈길을 빼앗겼다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