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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Aug 23. 2023

눈길을 빼앗겼다 1

창작 소설 쓰기

"예를 들자면, "


이라고 말을 하고 멈췄다. 사람들은 책상을, 바깥 풍경을, 멍하니 스크린을 보다 그 시선을 돌려 그를 쳐다봤다. 그는 입을 다문 상태였다. 그의 눈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어느 누구도 마주치고 있지 않았다. 그의 눈은 그대로 천장 위를 바라보고 있는 상태였다. 위에 볼 게 있나 하고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들 눈에는 말이다.


오직 그의 눈에만 그게 보였다. 그는 눈을 뗄 수 없었다.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단 한 번도 껌벅이지 말라는 법이 있는 것처럼 그는 눈을 한 번도 떼지 않았다. 그의 눈은 점점 빨개져왔다. 시뻘게진 눈으로 위를 계속해서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땀이 흘렀지만, 그는 그 '쳐다봄'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의 눈길을 '글자 그대로' 빼앗겼다.


"야 정신 차려", 하고 옆에 앉은 그의 팀장이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았던 그의 입이 드디어 열렸다.

"예를... 들자면.... 우리 스승님이 말하시길.... 정신 모델은... 작동하는 것이... 필요할 때만... 실험을 하다 보면... "

"이 새끼가? 미쳤나 봐!" 하고 반대쪽에 앉은 실장이 그의 등짝을 쳤다. 실장의 욕설과는 달리 너무나도 겁먹은 표정이었다. 그 빨개진 눈이 위를 쳐다보는 것을 멈추고 실장을 쳐다보았다. 흰자는 핏줄이 터져 얼룩덜룩 빨간색으로 물들어있었다. "너... 눈길..."이라는 마지막 단어를 외치고서는 그는 옆으로 쓰러졌다.



회사에서는 급하게 119에 연락해 그를 싣어날랐다. 팀장과 부하직원 하나는 그와 함께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실장과 그 회의에 같이 참석했던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반차를 신청했다. 그의 모습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반차를 신청하고 나서 인사팀장이 찾아와 상황을 묻자, 하나같이 '빨간 눈'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그리고 그중에 몇 명은 '눈길'이라는 단어를 같이 언급했다.

'무언가에 꽂힌 것 같았어요. 스스로도 피할 수 없는 무언가 말이에요. 눈을 뗄 수 없는 무언가가 천장에 있었나 본데, 어휴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아요. 무서워요.'


인사팀장 옆에서 같이 이야기를 듣던 인턴, 김용(28세)은 마음속에서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이걸 누군가에게 '재미있는 일'이라고 이야기해버리면 분명 싸이코 소리를 들을 게 분명하니 차마 그렇게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용, 자기 자신에게는 너무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회사 내 직원 하나가 이상한 행동을 했고, 그 행동을 하다 병원에 실려갔다. 회의에 참석했던 열몇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반차를 냈다. 분명 회사에서는 무슨 일인지 '면밀하게 조사' 하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담당은... 인사팀장이 아니라 인턴인 자기 자신이 될 것만 같았다. 프로파일러들이 등장하는 다큐멘터리와 영상 시리즈를 평소 즐겨보던 그의 머릿속엔 벌써 몇 개의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용님, 빨리 와요. 멍 때리고 있어요?"

인사팀장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그 '뇌피셜'은 멈추었다. 인사팀장에게 가는 몇 초동안, 그는 다음 장면을 예상했다.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도, 그의 기대는 무너졌다.


"용님 , 이번달 내에 기기 조사 해야 하니까 스프레드 시트랑, 단체 메일 템플릿 준비해 주세요."

"네... 네?"

"기기조사, 어떻게 하는 건지 인수인계 파일에서 못 봤어요?"

"아 아닙니다 준비하겠습니다."


공기가 약간 빠진 풍선인형처럼 한쪽 어깨가 기운채로, 김용은 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는 메일 내용보다, 아까 그 인사팀장 옆에서 들은 직원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흘러나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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