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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Jul 18. 2023

이상향 부수기 ideal breaking

서울의 디즈니랜드

어느 순간부터 밤에 보이는 한강 너머 있는 여의도가 그렇게 멋져 보였다. 국회의사당도 밝았지만, 그 옆에 있던 더현대 건물인지, IFC몰인지 어떤 기다란 빌딩이 높게 서있고, 화려한 불빛들로 밤늦게까지 비추고 있는 게 참 '도시' 같았다. 취직을 하기 전에 가졌던 꿈이 '불빛이 가득한 건물을 뒤로 한채 퇴근하는 나' 였을 정도였다. 그 건물 속의 시간은 바쁜 도시와 달리 느리게 흘러갈 것 같았다. 부의 상징이었다. 풍족한 건 빛뿐만 아니라 돈, 그리고 시간까지 잔뜩 모여있는 듯했다. 


디즈니 성 처럼 생겼다. 정규 분포 곡선 같기도 하고.


실제로 보면, 디즈니랜드의 성처럼 생겼다. 은은하게 불빛을 비추는 강을 앞에 두고 밤낮없이 사람들이 몰려있는 그곳은 자꾸만 내게 디즈니랜드를 상상하게 했다. 게다가 여의도 주변에서 하는 폭죽 행사도 한몫했다. 멋지고 놀라운 순간을 갖고 있는 그곳은 강 건너 바라보기만 해도 설레기도 했다. 파란 하늘과 그 배경을 뒤로한 채 고고하게 서있는 높은 빌딩들 속에서 일을 하는 직장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다. 정말 저곳엔 온갖 엘리트들이 모여있을 것이다. 가장 능력이 좋은 금융인들이 가득하고, 그 틈새에서 나만의 커리어를 쌓으면 나도 참, 더 좋은 어른이 되겠구나 하며 생각했다. 그게 정말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취직을 하고 직장을 다닌 지 5년이 넘어도 그곳에 갈 일은 없었다. 그쪽을 보면서 느끼는 설렘은 여전했다. 이상했다. 그 감정이 여전한 것이 문득 낯설었다. 그래서 한 번, 따릉이를 타고 그곳 가까이 가보았다. 화려하다는 수식어가 부족할 만한 곳을 향했다. 어떤 교회와 국회의사당을 지나, 불이 잔뜩 켜진 상업시설로 들어섰다. 1층에는 유명한 카페들이 많았다. 백화점 주변 1층엔 명품들이 그들만의 시즈널 테마를 갖고 전시되어 있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다 돈이 많을 것 같았고, 이 정도의 화려함 정도야 '익숙해'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상상을 하며 계속, 머릿속 그 공간으로 향했다. 


가면 갈수록, 원하던 공간에 가까워질수록 내가 바랬던 그 분위기는 사라져 갔다. 그냥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건물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직장인들도 잔뜩 버스를 기다리거나 내리고 있었다. 여유롭게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다들 잠깐 먹으러 나온 듯한 느낌이 전부였다. 그 건물의 1층들도 큰 차이는 없었다. 오히려 너무 오래된, 한식당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성비를 위한 식당, 작은 건물 안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식당, 앉아서 쉬기엔 너무 비좁은 카페들이 더 많이 보였다. 내가 상상하던 곳이 아니었다. 고작 가까이 와서 들여다봤을 뿐인데, 나의 상상이 깨져버렸다. 


그날 깨달았다. 내가 가진 상상을 깨부수는 방법 말이다. 내 머릿속 이상향 때문에, 현실 감각을 잊고 괴리감에 빠져있을 땐 그냥, 그것과 최대한 가까이 가보면 되는 것이었다. 가면 갈수록 포장지가 벗겨졌다. 내가 쓰고 있던 나만의 안경이 사라졌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었다. 

'거봐, 별거 없지? 가까이 와서 봐야 한다니깐. 이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멀리 서나 가능하다는 뻔한 말이 맞았어.' 라며 스스로에게 이야기했다. 이렇게 쉽게 부숴버릴 수 있는 이상향이었다니, 조금 놀라웠다. 가까이서 보면 별 것 없을지도 모르다는, 이번 교훈 덕분에 이젠 그 모든 것들에 가까이 다가서기 시작한다. 


운이 좋게도, 나의 이상이 계속 유지되는 '무언가'를 만날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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