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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Oct 15. 2023

지도를 그리는 사람은 길을 잃는 것이 두렵지 않다 2

<짧은 소설 써보기>

소설 속 모든 내용은 허구에 기반합니다. 극중 몰입을 위해 알려진 회사명을 기재했을 뿐,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그 둘의 논쟁을 즐기던 다영이었다. 그 둘의 이야기를 가만 듣기만 해도 좌뇌와 우뇌가 열리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갑자기 CMO가 자기 방으로 다영을 부른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다영에게 새로운 지도를 그리라고 말했다. 고객 여정지도, 그러니까 지금까지 우리 서비스에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고객을 위한 지도를 그려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다영은 말이 안 된다며 따져댔다. 그러나 그는 완강했다. 지금 서비스에서 유저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재 마련해 둔 지도로는 절대 뚫을 수 없는 마의 벽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맨날 쿠팡, ssg 뿐 아니라 아마존 이야기까지 들먹거리면서, 제3의 차원을 이야기하던 사람이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지도가 뻔 한 이유는 2차원에 그려졌기 때문이라고. 만약 새로운 차원이 생겨 3차원의 축이 생긴다면 그 지도는 모조리 바뀔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 차원을 추가하는 것, 그 부분이 우리 서비스가 나아가야 하는 길이고 (그의 표현에 따르면) ‘새로운 마켓에 리치’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다영은 그의 그런 ‘지도론’ 이 술자리에서만 끝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대충 넘기고 말았었는데, 그 이야기가 흘러나온 지 2주도 채 되지 않은 오늘, 그 이야기를 언급한 것이었다.


다영은 기한을 잡았다. 2주. 노력해 볼 시간을 길게 잡아봤자 CMO의 성미엔 1주가 멀다 하고 들들 볶을게 뻔했기 때문이다. 딱 두 번만 ‘달달 볶이겠’다는 마음으로 그는 2주를 불렀다. 그놈의 3차원 고객 여정지도를 딱 그 기간 동안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가민과 나은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가민이라면, 그리고 나은이라면 각자 어떻게 이 문제를 풀고자 했을까? 하고 질문을 던졌다. 가민은 아마 그가 생각하는 가격 분포에 대해 한번 더 이야기를 할 것이다. 나은은 또 품질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고. 가민과 나은의 이야기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제3의 지점이 정말 없을까, 싶었다.


다영은 회사의 앱에 접속했다. 초기엔 애플이 ‘고글 형태’로 만들어 쏠쏠하게 돈을 벌었던 그 장비가 있었다. 가상현실을 보여주는 장비와 앱은 바로 연결되었다. 초기 다영의 회사도 '고글' 위 영상에 서비스하는 형태로 제공했었다. 애플의 경쟁사가 나타나고, 그들의 열망과 갈증이 새로운 제품을 또 하나 만들었다.


 '포인터'. 이건 눈 앞 안경을 올려두는 위치에서 믈리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망막에 화이트 노이즈를 쏴서 실제 현실이 보이지 않게 하고 그 하얀 화면 위로 준비된 영상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고글' 연동을 ‘포인터’ 연동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고생을 해댔는지 모른다. 다영은 포인터를 자신의 관자놀이에 붙일 때 마다 생각했다. 어릴 적에 할머니 어깨 넘어로 보았던 영화들, <레디 플레이어 원>과 <블랙미러> 시리즈가 현실화 된 지금을 너무나 신기해 하면서 말이다. 그때는 상상이었던 것들이 지금 실제가 되어버린 이 2042년이 가끔씩은 '소름돋기도' 했다.


그런 상상 중에, 포인터 로딩이 끝나고 다영의 시야엔 '버츄얼 마켓'이 펼쳐져있었다. 무제한 접속이 가능한 그 공간은, 실제 마트, 집 앞 슈퍼, 각종 지역의 5일장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가상현실 같은 느낌이 나지 않을 정도로 실제와 비슷했다. 주기적으로 그 ‘영상 클립’을 취재하러 다니는 전문 디자이너와 카메라 팀이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공룡 기업들에게 항상 1위를 내줄 수밖에 없는 회사가 답답하기도 했을 것이다.


다영은 우선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으로 갔다. 마트 입구, 그러니까 이곳은 다영이 ‘고객 여정 지도’를 그릴 때 start로 잡아둔 곳이었다. 사람들이 앱을 열고 ‘구경할 카테고리’를 고르는 공간이었다. 마트입구에서 그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날 크게 광고하고 있는 배너 가까이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다영은 가까이 다가가 그들을 확인했다. 그 배너를 클릭 한 사람은 자연스레 그 광고에서 판매하고 있는 상품 앞에 ‘놓였’ 다. 버추얼이다 보니, 유저 아바타가 여기저기 휘휘 날아다니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아바타의 머리 위엔 가민이 이야기에서 만들어진 서비스인 ‘평균 가격대’가 둥둥 떠다녔다. 그리고 그 가격대끼리 이어져 하나의 선을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경로는 마치 고속도로 샛길 안내 화살표처럼 눈에 띄게 두꺼웠다. 지난 한 시간 동안 ‘그 가격대’의 물건을 본 사람들이 또 다른 어떤 물건을 보았는지 서로 알게 된 사람들은 더 많이 그 길을 따라갔다. 가민이 왜 그렇게 자신감 있게 말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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