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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Oct 18. 2023

지도를 그리는 사람은 길을 잃는 것이 두렵지 않다 3

<짧은 소설 써보기>

소설 속 모든 내용은 허구에 기반합니다. 극중 몰입을 위해 알려진 회사명을 기재했을 뿐,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다영은 계속해서 마트를 돌아다녔다. 다리가 아플 것도 없었다. 가만히 앉아, 포인터만 꼽고 클릭 몇 번이면 전체를 둘러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와 마주쳤다. 아바타 위로 굉장히 긴 숫자를 달고 다니는, 어떤 존재였다. 그가 너무나 빠르게 움직였기에 그 숫자라 몇 자리인지도 알 수 없었다. 다영은 그의 아바타를 기억했다. 그리고 그 아바타를 ‘따라가기’ 버튼을 눌렀다. 아바타는 랜덤 하게 물건들을 구경했다. 구경하는 비율은 고작 1초도 채 안되었다. 그 짧은 시간에 물건 하나씩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어떤 판매상은 아닌 것 같았다. 특정 카테고리만 보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 커머스에서 팔고 있는 모든 상품들을 볼 기세로, 그는 아주 한 발자국씩 움직이면서 물건들을 스캔했다. 크롤러. 그는 데이터 크롤러였다. 고객이 아니라, 가격이나 물건에 대한 어떤 의도도 없이 보는 ‘봇’이었다. 그래서 그의 머리 위 속 ‘평균 가격’ 이 그렇게 이상했던 것이었다. 심지어 지도 속 물건들을 ‘비싼 가격부터 내림차순’을 하였으니, 그 의 머리에 떠올라 있는 값은 꽤나 가격대가 컸던 것이었다.

그를 발견하고선 테크니션에게 그의 존재를 알렸다. 그리고 그대로 다영은 마트를 계속해서 돌아다녔다. 고객들이 몰려있는 메인 스트릿이 아니라, 더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으로 가려고 했다. 잘 팔리지 않는 물건, 혹은 잘 알려지지 않은 물건들로 말이다. 지난달 기준으로 가장 적게 팔린 물건이 무엇인지 쿼리를 뽑아 보고, 가장 안 팔리는 물건을 우선 찾았다. 비닐 붕지 묶음, 100개짜리 300묶음. 사업자가 아니고서야 아무도 사지 않을 것 같은 것이었다. 만약 실제 창고였다면 그 보관비도 어마어마했을 것이었다. 다영은 그 묶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다영은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살폈다. ‘마트 공간’ 속 움직임은 크게 두 가지였다.  물건을 살 사람과 사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구매 여정 지도는 대부분, ‘물건을 사지 않을 사람’에게 ‘물건을 살 수 있도록’ 유도하거나, 아니면 ‘물건을 살 사람에게 더 많이 사도록’ 유도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지금까지 다영과 그의 팀원들은 그 ‘물건을 살 사람들’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판단했다. 기준점은 ‘물건을 잘 구매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볼 때는 ‘왜 그렇게 하지 않지?’라는 질문을 했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삼겹살 세트를 사야 했는데, 그렇게 계란을 비교하고 나서는 계란을 사야 헀는데,라고 말하며 [물건을 사지 않은 사람들] 에게 물건을 어떻게 하면 잘 팔 수 있을지 초점을 맞췄던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다영은 그 생각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건을 사는 것을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던 자기 자신과 거리감이 느껴졌다. 다영 조차 종종, 편의점에 들러 잔뜩 들어온 신상들을 구경하고선 그대로 나오는 것이 하나의 ‘취미’ 일 정도였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음식들이 있어 편의점이 들어가도, 막상 그 물건들이 쌓인 것들을 보니 식욕이 뚝 떨어져 나올 때도 있었다. 어느 때는 핸드폰 배터리가 다 떨어질 것 같아 도중에 서둘러 나오기도 했다. 그 외에 여러 가지. 다영은 자기 자신도 매번 하는 그 행동을 놓치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자각했다.

재미있는 생각이 하나 떠오르기 시작했다.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기본이 아니라, 이렇게 많은 프로모션 속에서도 자기의 소신을 지켜 ‘구매를 하지 않는 사람들’ 이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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