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여행 2일 차 저녁
여행은 현실을 잊고 싶은 사람에겐 그만큼의 시간을 준다. 5시간 거리에 있는 곳은 현실과도 5시간 정도 차이가 나는 곳이었다. 5시간, 그러니까 아침에 출근해서 밥을 먹고 다시 자리에 앉아 일을 1시간이나 더 해야 하는 그 시간 말이다. 하루 반나절 이상의 시간을 써서 도망갔던 그 현실을 다시 5시간을 더 들여 되돌아왔다. 중력의 힘을 거스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갈 때의 5시간 보다 두 배의 무거운 느낌마저 들었다. 그게 주말을 거쳐 월요일을 앞둔 직장인 일반의 마음인지, 여행을 갔다가 현실로 되돌아온 인간 보통의 마음인지는 잘 구별되지 않았다.
지난주에 있었던 일을 복기했다. 지난주엔 숫자 예측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람 예측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던 일이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다음 날은 ‘아무 일 도 없었다는 듯 세상이 돌아간다’라는 명제를 실감할 수 있는 날이었다. 전날의 일이 꿈같다고 느꼈던 사람은 정말 나뿐이었나, 싶을 정도로 다른 사람들은 또 그대로 자기 앞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자 약간 괴로워졌다. 그 금요일의 마지막 순간을 다음 월요일로 연결을 해야 했다. ‘직장인의 삶’이라는 건 꽤 얇은 가죽 같았다. 너무 질기면 숨을 쉴 수 없기에 조금만 틈을 내면 찢어진다. 그리고 그 찢어진 틈을 타서 숨을 쉬거나, 아예 가죽을 조각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가죽을 꿰매며 살아간다. 그 가죽을 잘 메우는 사람만이 매끄러운 가죽을 가지게 된다.
매끄러운 가죽으로 나의 직장라이프를 빗대어 보니, 이 질김의 원인이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무엇으로 만들어졌길래 이렇게 질길까. 분명 매일 한 번씩 잘 두드려 내 손에 익도록, 그래서 이 삶에서 나름 에너지를 덜 소비할 수 있게 다져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렇지 못했던 것일까. 계속해서 두껍고 질긴, 그렇지만 종종 구멍은 나있는 가죽상태가 유효했다. 휴가 이틀로 그 사이 구멍을 만들고, 그 구멍을 다시 없애기 위해 ‘회사 생각’으로 생각을 돌렸다. 고작 그랬을 뿐인데, 집에 도착하기 10분 전이 되었다.
집에 도착하면, 정말로 나의 여행은 끝이 난다. 믿을 수 없다. 현실감각을 4시간 하고 50분 동안 계속 찾아다녔던 것이다. 누가 봐도 가장 충실한 직장인 같다. 아아, 남은 10분이라도 가장 충실하지 않은 직장인이 되고 싶다. 여독이라도 생긴, 그래서 아직 여행하는 순간에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여행 세 번째, 집에 도착하기 10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