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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백100back2

여행 시작 전 커피 한잔

경주 여행 2일 차

by 크게슬기롭다

3년째 여행을 다니면서 생긴 루틴이 하나 있다. 엄마와 동생은 술을 잘 마시기에 늦게까지 깨어있다가 늦게 일어난다. 반면 금방 취해 잠들어버리는 게 일반적인 나와 아버지는 금방 사라졌다가 금방 눈을 뜬다. '술 쪼렙' 둘이서 일찍 일어나 하는 건, 커피를 두고 잔뜩 인생 수다를 떨어대는 것이다. 맛없든 맛있든 커피 한 잔만 있으면 이야기가 절로 나온다. 최근 삶이 어땠는지, 자신과 자기를 둘러싼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어땠는지 풀어낸다. 목소리가 크다고 ' 왜 잠을 깨우냐며' 툴툴거리는 동생의 모닝콜 역할도 해주는 수다, 그건 1시간이 넘어여만 겨우 멈출 수 있다. 남은 둘이 일어나 침대에서 나올때 까지 말이다.


이번 여행에선,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풀어헤쳤다. 운전하면서도 이미 말했던 내용이고, 카톡으로도 몇 번 했던 내용이었지만 '듣는 사람은 까먹고', ' 말한 사람은 몇 번이고 말해도 재미있는' 내용이었다. 일어난 지 얼마 안된 이야깃 거리일 수록 디테일이 살아있어 더 재미있었다. 나의 사연과 아버지의 조언들이 번갈아 튀어나왔다. 가끔은 몇 마디를 미처 다 못듣고 반박을 한다. 그럼 아버지는 내게 '똥고집'이라고 말을 해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어느 부분이 똥고집이냐며' 또 한 번 말을 이어나간다. 그러다 또다시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 튀어나간다. 인생을 또 '요렇게 '살아보니 재미있고, '이렇게' 살면 힘들지만 괜찮다는, 당신이 막상 살아보니 '인생은 오버롤(overall) 똑같더라던' 이야기를 뒤에 덧붙여주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면 지금까지 달려오며 불안감을 가득 갖고 있던 마음이 잠깐 내려간다.


물론 그 마음은 다시, 여행지를 떠나 평소에 살던 곳으로 가까워져 올 수록 흐릿해진다. 여행지에 간 마음에서 하고 들을 수 있는 이야기 같다고도 생각한 적도 있었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자연환경을 바라보다 보니, 인생 참 별것 없는 것 같단 생각을 많이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나절동안 고속도로를 타고 원래의 그 '거주지'로 돌아오면 그때 느끼고 마음먹었던 것들이 마법처럼 사라져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눈 녹듯 사라진> 안정감이었다. 하지만 그 안정감을 또다시 느끼고 싶다.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주말 아침 커피 한잔과 함께 떠들던 그 순간을 계속 느껴보고 싶어 몇 번을 더 여행을 떠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여행 두 번째 날의 아침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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