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벅지에서 느껴지던 통증은 무릎으로 흘러갔다. 처음엔 찌릿거리던 통증이 점점 번져나갔다. 왼쪽 발을 디딜 때마다 느껴졌다. 이 속도로 가다간 무릎이 아작날것 같았다. 그렇다고 멈추거나 걷고 싶진 않았다. 나름의 방안을 찾아야 했다. 마라톤을 뛰면서 무릎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그런 방법을 찾아야 했다.
속도를 낮추자,라는 결론에 다다르곤 조금씩 발을 딛는 템포를 줄였다. 처음에는 보폭을 길게 뻗는 방법을 선택했다. 문제는 그 보폭이 더 큰 압박을 무릎에 준 것이었다. 그 방법으론 해결이 안 될 것만 같았다. 다른 걸음을 선택했다. 달리기 연습을 하지 않았던 나는 ‘뛰는 와중에’ 다른 방법을 선택해야 했다. 보폭을 원래대로 줄이고, 무게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상체를 살짝 앞으로 숙여야 했다. 상체 무게가 온전히 실리지 않게, 내 하체가 움직이지 않는 수준에서 다리와 무릎 관절은 그 위치만 유지할 수 있게 바꿔보았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속도는 눈에 띄게 줄긴 했어도 그렇게 뛰니 금세 다리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 몸뚱이와 정신의 밸런스를 맞추는 방법을 깨달은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렇게 나의 몸을 컨트롤 해가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경험을 한번 한 셈이었다.
그다음엔 오르막길이 문제였다. 평지를 뛸 때 느끼던 속도와 다른 방식으로 이 구간을 통과해야 했다. 앞서서 나의 페이스메이커를 해주던 그 ‘빨간 후드의 외국인’은 벌써 저 멀리 뛰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더 이상 내 눈에서 사라지기 전에, 나름의 속도를 유지하면서 오르막길을 올라야 했다. 처음엔 그 속도에 맞춰 뛰었다. 평지를 뛰던 방식으로 움직이니 금세 숨이 차올랐다. 헉헉대며 남은 8km를 뛸 수 있냐는 질문에 스스로 ‘아니다’라고 결론 내렸다. 내가 해야 하는 건, 그 오르막길을 뛰면서 페이스메이커를 따라잡을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숨을 골라야 할 땐 고르긴 해야 했다. 여기서 스퍼트를 올렸다간 결국에 ‘걸어야’ 할 것 같았다. 또다시,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오르막길을 오르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조금 더 좁은 보폭으로, 잔발로 올라갔다. 마치 계단을 오르듯 조금씩 올라갔다. 오르막길도 언젠간 ‘끝이 난다는’ 저 멀리 보이는 지형을 확인하며 움직였다. 다시 평지에 올랐을 땐 페이스 메이커와는 꽤나 멀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옷이 보이는 순간까지는 내 페이스를 끌어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 그녀와 만나게 되었다. 목을 축이고 간식을 먹을 수 있게 준비한 중간 식음수대에서 물을 마시는 그녀를 만났다. 게토레이와 연양갱, 바나나와 초코파이가 있던 그곳에서 잠깐 스쳤다. 내가 도착할 즈음 물을 다 마신 그녀는 금세 출발했다. 지금이 기회다 싶어 물 한 두 모금 마시고 바로 출발했다. 그녀를 앞지를 생각은 없었다. 그저, 내 페이스를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저 멀리 있는 존재라도 기준 삼아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뛰었다.
아무리 뛰어도 끝은 보이지 않았다. 10km 러너들을 위한 반환점이 등장하기만 간절히 기다렸다. 그즈음이었나, 나의 페이스 메이커가 달리기를 멈추고 주변 구조단(?) 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를 둔 채 나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무릎이 아프지 않을 정도로, 상체를 조금 숙여 앞으로 뛰어나가는 모습 말이다. 하지만 그녀를 넘어섰다고 나의 속도가 붙는 건 아니었다. 계속해서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을 만났다. 노년의 커플도, 중장년의 러닝 클럽도 나를 제쳐갔다. 가끔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지만, 조금 머물다 앞으로 휙 지나쳤다. 나는 그들을 보고, 내 몸뚱이를 느끼며 나만의 속도를 계속해서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 끝엔, 그러니까 출발 지점에 가까워질수록 응원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5km를 뛰고 끝낸 아가들부터, 훨씬 빠르게 하프 코스를 마친 사람들, 운영진들까지 점차 많아졌다. 그리고 한 입으로 내게, 내 주변 다른 러너들에게 응원의 목소리를 보냈다. 이미 다리와 발바닥은 내 것이 아니었지만, 응원을 받으니 조금이나마 정신을 잡을 수 있었다. 500m를 남기지 않았을 땐 교통정리를 해주는 경찰을 보았다. 횡단보도를 넘어서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트랙이 보였고, 그 트랙으로 들어가니, 처음 출발했던 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느린 속도로 가장 처음에 통과했던 구간을 지나쳤다. 2시간 18분, 삐 소리와 함께 기록 측정이 완료되었다. 내 앞에 있던 카메라를 보며 괜히 두 팔을 뻗어 올렸다. 결승점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도, 내가 이 달리기를 성공해 개운한 느낌을 얻는 걸 아무도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었다. 그 결승을 통과했다는 것, 그 달리기 속에서 계속 나의 몸뚱이를 조절하며 달리려고 했다는 기억이 강렬하게 몸과 머리에 남았을 뿐이었다. 쓰러지듯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았다. 편안하고 고요한 하늘이 보였다. 하프 마라톤은 그대로 끝이 났지만, 그 여운은 계속 내 몸에 남아있었다. 근육통이라는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