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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액트 재밌다 2

연말 영화 추천

by 크게슬기롭다

고등학생 때 재미있던 경험을 하나 꼽으라면, 합창단에 소속이었던 때를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미션스쿨에서 하는 ‘가끔 큰 행사’에 나가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고등학교 1학년 음악시간에 발성이 크고 목소리 톤이 얼추 맞는 몇몇에 뽑혀 2년 동안 노래를 부르며 다녔다. 학생인 내게 좋았던 건 ‘합창 연습’이라는 핑계로 점심을 빨리 먹을 수 있던 특권을 가끔 부여받는 것이었다. 합창단이 나가야 할 시점 기준으로 1주일 정도 또는 며칠 동안 나는 ‘합장단 매직패스’를 사용해 1등으로 밥을 먹었다. 그리고 나선 음악실로 달려갔다.


어느 하루, 이미 연습이 시작된 다음에 도착한 일이 있었다. 이미 부분 연습도 지나고 전체 화음을 맞춰보는 순서였다. 음악실은 별관 4층에 있었는데, 그 별관 2층 통로에서 두 층계단을 올라가는 내내 계단엔 합창단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음악실에 가까워질수록, 그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졌다. 노래 연습을 하던 중에 듣던 노래와 너무나 달랐다. 메조소프라노 자리에서, 양옆의 소리에 휘둘리지 않으며 나만의 소리를 낼 땐 ‘내 자리의 음’에 철저히 집중해야 했다. 너무 낮거나 높지 않은 어떤 소리, 따라가지 않고 여기 자리를 지키려면 기필코 나의 음역대와 주변 다른 메조소프라노들의 음역대만 들으려고 해야 했다.


그래서 듣지 못했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세 가지 음이 하나로 합쳐졌을 때의 노랫소리가 얼마나 소름이 돋는일이었을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바로 옆에서 20명이 부르는 노랫소리는, 지휘를 했던 음악선생님 말고는 들었던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가끔 단상에 앉아있던 교장선생님이 전부였을 것이다. 학생들도 저 멀리 앉아있으니,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은 평소에 전혀 알지 못했던 그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걸 우연찮게 들은 것이었다.


너무 대단해서, 음악 연습을 포기하고 음악실에 앉아 듣고만 싶었다. 혼나지만 않는단 보장이 있었으면 정말 계속해서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진 않았다. 온몸에 소름을 만들 만큼 놀라웠던 화음을 지나, 메조소프라노 음이 가득한 나의 공간으로 들어가며 나의 감상을 마쳤었다.



시스터 액트는 그런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노래를 잘 부를 뿐 아니라 그 노래의 구성과 기획을 담당하는 실력도 충분히 갖춘 주인공이 ‘시스터’가 되어 그들처럼 ‘액트’를 하는 영화였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간 수녀원, 노래를 통해 수녀원을 변화시키고,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본다>라고만 요약하면 너무나 아쉬웠다. 그래서 다시 정리했다.


영화속 주인공은 자기의 원래공간에서 뛰쳐나온다. 그리고 새로운 곳으로 찾아간다. 그 공간에서 ‘이방인’이었다가 ‘주체’였다가, 다시 또 ‘바깥사람’인 본래의 정체성에 놓였다가 ‘내부’로 들어가는 에피소드들이 반복되는게, 이 영화의 묘미다. ‘리조’ 속에 있다가 바깥으로 나온 주인공은 ‘수녀원’으로 들어가게된다. 주변인들은 여러 이유로 그녀가 ‘수녀원 내부’로 들어오길 바라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선의 또는 의무에 의해 주인공은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바뀌어가기도 한다. 그녀가 내부에 존재해야 할 의미를 찾고 더 깊이 결속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결론을 향해 달려간다. ‘바깥으로 나와야 할’ 일을 직면한 주인공은 '수녀원' 밖으로 이동한다. 차를 타고 납치되는 과정에서 ‘수녀’ 도, ‘바에서 노래하는 퍼포먼서’ 도 아닌 그녀는 더 많은 것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얻었을 것이다. 빠른 회고 끝에 그녀는 본래 위치의 사람들을 용서하기에 이른다. 그렇다고 그 용서가 그녀의 목숨을 보장하진 못했다. 결국 죽음을 앞둔 그녀는 숨기를 포기하고 나온다. 그러나 그 선택을 막아서는 사람들이 있다. 그녀를 애타게 부르는 존재들은 같은 수녀원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주인공은 다시 수녀원으로 돌아간다. 목숨을 위협하던 존재도 경찰에 의해 정리된다. 자기의 정체성은 유지한 채, 평온하게 (모자를 벗어 헤어스타일은 보여준 채로) 가장 유명한 장면인 합창 퍼포먼스, 그 퍼포먼스에 박수를 보내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원래 있던 공간에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장면이 내겐 오래 마음에 남았다. 합창단의 노랫소리를 듣다가 다시 메조소프라노로 돌아갔던 그 당시의 나는 ‘그저 그렇게 해야 했기에’ 돌아갔었기 때문이다. 나와 달리 그녀는, 자기가 했던 것이 무엇인지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알아채고, 그걸 위해 다시 능동적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만약 내게 선택지가 있었다면, 몸을 숨겨 그 노래를 끝까지 들었을 수도 있다. 혹은 다음번에 음악선생님을 찾아가 ‘한번 바깥에서 들어보는 기회를 가질 순 없냐며’ 부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지 않았던 게 아쉬울 뿐이었다. 나도 그녀처럼 그렇게 ‘내 의지로’ 상황을 선택하며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조금 더 달라져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그걸 깨달은 지금이라도 내 선택을 되돌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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