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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11시간전

오래된 노트북에 손을 얹고

14년 형 맥북 에어를 아직도 쓰고 있다. 만으로도 10년이 넘었다. 그 당시에 거금 140만원을 들여 산 것이었는데, 벌써 이렇게 오래쓰게 될 줄은 몰랐다. 정액법 방식으로 나눠봐도 이놈의 감가상각은 기가막힌 가격으로 된 것이다. 보통의 기계장치를 감가상각할 때 2년 정도로 보는데 (과세 기간 당 25%씩 총 4번이면 잔존가치는 0이 되고마는 소득세법 내 공급시점의 가치 계산법 을 인용) 이건 그걸 벌써 5배나 넘어선 격이다. 140만원의 10년, 120개월 하고 4개월 정도 더 넘긴 11월이 찾아왔다. 1년에 14만원, 한달에 약 1만원 되는 돈으로 이 맥북을 구매하여 사용하고 있던 것이다. 맥북 한달 사용료가 1만원 수준이라니 꽤 구매할 만한거 아닌가! 다음번 맥북 200만원짜리가 사고 싶다면, 200개월은 쓸 마음을 갖고 사야 할까 하고 웃어본다. (아마 100개월도 쉬운 건 아닐 것이다)


이 오래된 노트북을 오래 가지고 있었던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안 망가지고 튼튼해서 인 것은 당연하다. 그보다 더 큰건 밝은 백라이트 때문이다. 최신 기종엔 없는, 아주 오래된 기종만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것, 더이상 그 회사에서 그 기능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이 회사는 오래된 것의 디자인이 꼭 지루하진 않단 말이다. 예전 애플 엠피쓰리가 그랬고, 핸드폰 초창기 지문인식을 하지 않던 때의 버튼이 그랬다. 오래된 디자인이 좋아서 계속 갖고 싶어지는 이 마음을 만든 디자이너에게 다시한번 박수를 보낸다. 그게 누구인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오랜 시간 사용하는데도 계속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초반에 튼튼한 Os 를 만들어둔 또 어느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뿐만 아니다! 사실 맥북 에어의 백라이트는 화면으로 쏘는 조명의 뒷판에 구멍을 뚫어둔 것이 다이다. 그 뒷편으로 들어갈 것들이 굉장히 많았을 터인데, 그 사과모양 주변으로 아무런 요소(메인보드와 관련된 것들) 들이 지나가지 않게 잘 만들어둔 하드웨어 개발자(?) 에게도 감사함을 표현다. 모든 이들이 그 순간 ‘멋진 걸 만들어내겠다' 는 의지 덕분에 만들어진 이 결과물은 해당 회사를 부자로 만들어주었을 뿐 아니라, 내게도 크나큰 추억을 만들어주고 있다.


이 노트북은 정말 오랜시간 나와 함께 했다. 애지중지 하진 못했지만 (여기저기 깨지고 코너엔 눌린 자국도 많이 있음) 나의 추억을 되새길 때 꼭 어느 장면마다 들어가있다. 대학생 시절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이력서를 썼을도 그랬다. 사촌동생에게 내밀며 ‘네가 좋아하는 캐릭트 스티커를 붙여도 된다’ 고 허락한 ㄴ트북이기도 하다. 아직도 노트북 바닥엔 햄스터들이 줄지어 10마리 붙어있다. 화면 뒷면에는 여러 시간에 걸쳐 얻은 스티커를 붙여두었다. 그 스티커들을 가만 볼때면 예전으로 원하는 만큼 돌이켜 볼 수 있다. 어느 때는 미국 교환학생 시절에 받았던 것을, 또 언제는 크로스핏 운동을 하며 받았던 것들, 주짓수를 한자로 쓴것, 배달의 민족이 한창 창의력을 중시할 때 [새로운 배달의 민족 글씨체] 가 나왔을 때 얻은 스티커, 머쉬베놈의 음악에 한동안 꽂혀 ‘멋’ 이라는 글자를 붙이고 다녔던 시절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글쓰기를 생활화 하자는 소소문구의 스티커를 보고선 ‘자산 관리사’ 선생님이 놀란 적도 있다. “나름의 성실로 열매맺는 쓰는 생활” 이라는 문구였다. 주어가 없던게 킥이었다. 이렇게 마구 잡이로 (돈을) 쓰면 안된다고, 우스갯소리로 말씀해주셨는데 그게 내겐 굉장히 놀라운 기억으로 자리잡혀있다. ‘쓴다’ 라는 글자 앞에 너무 일관된 단어만 붙여왔던 나의 고정관념을 발견할 수 있었던 순간이기도 했다.


이 모든건 10년을 함께한 노트북 덕이다. 지금은 배터리를 연결하지 않으면 5분 정도도 유지 못하는 아주 힘없는 배터리를 가지고 있다. os를 업데이트 하지 않었던 것도 꽤나 오래되었다. 뭐 어떤가. 마치 최신을 다 따라잡지 못하는 어른, 예전만큼 힘이 없어 영양제를 꼭 챙겨먹고, 커피로 수형릉 해야 잠을 깰 수 있는 어른, 그리고 나와 닮아있지 않은가. 이 노트북을 보면서 다시 나를 되돌아본다. 


거울도 아닌 것이 거울처럼, 내 앞에 검정 화면에 커서를 껌벅거리며 앉아있다.


p.s. 여행 할 때 나의 노트북은 거대 '핸드폰 충전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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