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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Jan 22. 2022

호기심의 시작, 감각

픽사 팝콘 <3회 - 도리의 탐험>을 보고

도리는 돌아다니며 바닷속에 떨어진 인간 물건들을 하나씩 건드려보며 즐긴다. 그가 만난 것은 호루라기, 안경, 거울이었다.




영상 속 도리는 다양한 물건들에 굉장한 호기심을 보이고, 그 물건을 꼭 어떻게 ‘건드려봐야’ 직성이 풀리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다른 물고기들은 자기가 가던 길을 그대로 간다면, 도리는 그러지 못한다.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낯설고 재미난 물건이 있으면, 가만히 가까이 가서 살펴본다. 그리고 자신의 신체 기능을 사용해서 그 물건을 사용해본다. 호루라기라면 입에 가져다 대고 물방울 속의 소리를 들어보려고 하거나 (촉각과 청각) , 안경을 발견하면 그 안경을 직접 써보면서 ‘조그마한 것들’을 구경한다(시각).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도 한다(촉각과 시각). 주변에 지나가던 물고기가 혼자 노는 그의 모습을 보고 놀라 잠시 멈칫하는데, 이내 원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도리의 모습을 보니 어릴 적 내가 생각난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8살 아이의 걸음으로 30분이면 되는 그 길에서 1~ 2시간 걸려 겨우 집에 돌아오던 나 말이다. 그때의 기억은 따로 남아있지 않지만, 한참을 ‘500원을 넣고 3분간 타는 말’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는 엄마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나에게 문방구는 엄청난 곳이었다. 색색깔의, 귀엽고도 이쁜, 신기하고도 갖고 싶은 물건들이 너무나 많은 곳이었다. 하나하나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어도 ‘낯선 감각이 주는 도파민’이 뇌에 가득 찼을 것이다. 스티커를 하나하나 세세히 보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옷 입히기 세트가 있었는데, 처음엔 ‘어깨 부분에 구멍이 난’ 종이 인형에 옷을 입히는 방식으로 구성된 상품이 나왔고, 그다음엔 스티커 형태로 더 쉽게 뗐다 붙였다 하는 상품이 등장했다. 인형을 살 돈이 마땅치 않아 ‘옷 입히기’를 3D가 아닌 2D로 해야 했던 나에겐 종이 인형과 스티커가 시각적 자극을 가득 충족시켜주었다.


물건뿐 만이 아니었다. 길가다 풀 옆에 뚫린 구멍엔 개미들이 지나갔고, 그 옆으론 콩벌레라고 하는 것들이 자기 몸을 말고 있었다. 그것들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건드리는 것도 재미있었다. 책가방을 메고 걸어가다가 발견하면 그대로 주저앉아 구경하는 것이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계속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다리가 아프면 또 몇 걸음 걸어간다. 컵떡볶이를 파는 가게도 발견한다. 그 떡볶이 집주인은 항상 껌을 딱딱 소리 내며 씹었는데, 내가 사 먹지 못하는 떡볶이를 가만히 구경하며 그 소리도 반복적으로 들었다. 그 장면이 강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냄새와 소리, 떡볶이의 강렬한 빨간색의 세 감각의 조합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상 끝에서 도리는 자신의 갈 길을 마저 갔지만, 나는 그렇게 한참 구경 다니다 결국, 신축 아파트 단지 안에서 길을 잃었다. 아파트가 다 똑같이 생겨서 길을 찾을 수 없었고, 출구를 찾지 못해 집에 가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자 엉엉 울기 시작헀다. 그러자 갑자기 뜬금없이 반 친구가 툭 튀어나왔다. 내가 너의 반 친구 누구누구고, 여기 출구는 이쪽이다, 라면서 알려주었다. 울며 불며 그 친구가 알려준 대로 길을 나섰고,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다음 날이라도 친구에게 ‘고마웠다’며 인사라도 할 법했지만, 아쉽게도 그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더 건넨 기억은 없다.


도리의 호기심, 그 호기심 가득한 장면을 볼 때마다 나의 어린 시절이 매번 떠오른다. 더 디테일하게 떠올리고 싶은, 아쉬움이 가득한 그 어린이 머릿속에 다시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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