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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Jan 08. 2022

디즈니의 비밀

디즈니 LAUNCHPAD presents <마지막 추파카브라>를 보고

주인공의 집이 ‘외부인에게 전시’ 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외부인들은 주인공을 보고 ‘잘 보았다’며 돈을 던지고 사진을 찍는다. 주인공에 대한 안내 메시지도 나온다. ‘지금 왼쪽에 보이는 존재는, 고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마지막 개체입니다.’


주인공은 영 언짢다. 집에 돌아와, 자신이 당했던 것과 동일하게 인형들을 만들어 놓고 똑같이 읊조린다.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마지막... 추파카브라’, 그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집이 흔들리며, 문 앞에 고대 개체 추파카브라가 정말 등장한다.


추파카브라와 밥 먹고 놀고 잠도 자는 하루를 보낸 다음 날, 외부 관광객이 또 그를 찾아와 ‘구경’ 한다. 그런 상황에서 추파카브라는 외부인을 향해 소리를 내고 겁먹은 그들과 달리 옆집에서 경계심만 잔뜩 세우던 이웃이 자신의 애완동물(고대 개체)을 데리고 나온다.


이웃과 처음으로 마주하고 웃으며 끝난다.




혹시 당신이 어릴 적, 매주 주말 아침 8시에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며 자란 사람인가?

이 장면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디즈니가 주입한 ‘이상적인 가족, 친구’ 관계에 세뇌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의식적으로 일어나 주말 1시간씩 집중하며 보았던 이야기 속에는, 멋진 아버지와 어머니, 배신하지 않고 의리를 지키는 친구들에 둘러싼 주인공이 나온다. 주인공은 종종 문제에 처하는데, 그때마다 어떤 상황이 우연찮게 펼쳐지고, 멘토가 등장해서 도움을 준다. 결국 주인공은 ‘시작은 미천하였으나 끝은 찬란한’ 상태가 된다. 그 주인공이 어린 우리 마음속에 들어온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 듯, 우리 마음속 ‘완전한 상태’ = ‘디즈니’가 되어버린 것이다. 운이 좋게도 빨리 깨달은 똑똑한 친구들은 그와 달리 자신의 ‘삶’을 살아가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잘 믿고 잘 속는, 그래서 꼭 한 번씩 어딘가에 끌려갔다 돌아오는 삶을 살았다. 호기심이 많기도 했고, 사람을 좋아하기도 했다.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기 미안하기도 해서 그랬다. 어릴 적 세뇌된 디즈니 주인공 같았다. 아무거나 눌러보고 찔러보고, 의심하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몇 번을 속아 넘어갔다. (이걸 디즈니 탓으로 돌려도 될까)


디즈니에서도 현실을 반영한 새로운 영상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 이상 자식을 온전하게 지지해주는 부모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친구들과도 ‘항상 지지받는’ 경험을 하지 못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오히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담은 스토리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스토리를 담은 영상들을 보는 요즘의 아이들은, 아마 나와 다른 ‘뇌’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번 영상도 주인공 혼자 등장한다. 그리고 그는 철저히 소수자로 취급받는다. 자신보다 더 ‘소수 개체’인 추파카브라를 만나 동등한 수준에서 밥도 먹고 춤도 추며 행복을 느끼지만, 그와 동시에 ‘지겨움’을 느낀다. 추파카브라를 무릎 위에 올려놓은 순간에도 ‘나의 삶이 지루하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그였다. 그러다가 자신의 이웃을 만나는 순간, 나와 동등한 ‘인간’이라는 개체를 만나는 순간 그는 끝없이 웃음을 터뜨린다. 그의 부모도, 자식도 이번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는다. 찐한 우정을 가진 친구도 없다. 자신을 멀리하던 이웃과 겨우 얼굴을 튼 것이 전부다. 그러나 그는 즐거워 보인다. 지겨움을 떨쳐낼 수 있는 계기가 생긴 사람처럼 말이다. 이웃과 얼마나 잘 지내는지도 영상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냥 끝을 내버린다.


이런 영상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어떨까? 그리고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적어도 ‘이상적인 관계’를 꿈꾸지 않는 사람들이 되지 않을까. 디즈니에서 ‘손쉽게’ 롤모델을 보여주지 않았으니, 자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직접 경험을 하며 자기만의 롤모델을 찾으려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을까? 나를 둘러싼 타인들과 ‘이렇게 저렇게 관계도 맺어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영상을 보고 자랄 그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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