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손님과 닭고기

복날을 위한 닭요리

by 크게슬기롭다

세 번째 손님이 찾아왔다. 복날이 가까워졌으니 닭요리가 하고 싶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이탈리안 요리 레시피를 접어두고 다시금 검색했다. 닭볶음탕에 붙은 말 중엔 ‘백종원의~’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붙어있었다. ‘어떤 프로’의 ‘백종원’ 이 만든 닭볶음탕 요리라는 제목을 보면, 맛있는 요리라는 수식어보다 훨씬 강렬하게 나의 손길을 붙잡는다. 맛있는 것보다 간단하고 쉽게 할 수 있는 게 중요했다.


레시피를 클릭하고 바로 아래로 내려 재료를 확인한다. 닭 없고, 마늘 있고, 대파 사야 했다. 간장이나 설탕도 없었지만 내겐 치킨 스톡이 있었다. 고추장과 고춧가루, 청양고추도 집에 있는 것들을 이리저리 조합하면 될 듯싶었다. 마침 감자와 양파도 1/2씩 있으니 몇 개만 사면되었다. 대파와 닭, 그리고 떡 조금 말이다.


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에 종종 들리는 마트에 들어갔다. 똑같이 생긴 것처럼 보이는 대파의 가격도 차이가 났다. 왜 그런지 궁금했지만, 이름이고 봉투고 어떤 부분에서도 힌트를 얻을 수 없었다. 왼쪽 (좀 더 비싼) 대파가 더 커 보이길래, 크기 차이려니 하고 더 작은 것을 골랐다. 떡볶이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쌀떡에 무게였지만 다른 가격이었다. 닭은 반대였다. 손질된 여부에 관계없이 한 가지 가격이었다. 뭐 이래? 하고 후다닥 집어 들고 계산을 마쳤다.


집에 와 레시피를 켜고 하나하나 따라 하기 시작했다. 대파는 크게, 양파와 감자는 한입 크기로 잘랐다. 닭은 한번 익혔고, 치킨스톡과 고추장, 고춧가루가 들어있는 양념장에 닭을 넣고 팔팔 끓였다. 맨 마지막에 깻잎을 잘라 넣었다. 그리고 손님이 앉아있는 탁자 위에 올려두고 먹기 시작했다.


그 복날이라 닭 요리를 떠올렸다. 그중에 맛있을 만한 게 닭볶음탕이었다. 백숙은 준비하기 어려울뿐더러 더운 음식이었다. 치킨을 튀기고 싶지도 않았다. 닭으로 할 수 있으면서 내가 해봄직한 요리가 닭볶음탕이었다.

그렇게 닭고기를 뜯으며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닭고기 속 뼈를 발라내기 위한 그릇을 1인 1개로 두는 것은 우리 집 방식일 뿐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아버지가 생선을 너무 좋아했기에 한 자리에서 생선을 4마리나 해치웠다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한 사람이 4마리를 먹으며 만들어내는 가시는 공용 그릇으로 해결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1인 1 가시 그릇이 필요했다는 결론이었다. 그다음은 물고기 몸속에 쌓이는 플라스틱 이야기가 등장했다. 더 이상 생선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이 올 거라는 이야기였다. 건강상으로 큰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것, 인간 역시 기형의 몸을 갖게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더 이상 생선을 먹기 어려워지는 상황에 이어 환경오염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했다. 그다음 코로나가 발생한 이유, 지금의 내가 아니라 다음 세대들을 위해 플라스틱을 더 이상 만들어내지 말아야 하는 이야기, 메탄가스…. 이야기의 소재가 계속해서 등장했다. 화수분처럼 끝이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니 6시간이나 지나있었다.


찜질방에서 땀을 빼고 시원하게 돌아가듯, 손님과 나는 내 방에 앉아 못다 한 이야기를 모조리 꺼내놓고 뱉어버렸다. 원하는 만큼 말을 다 꺼내놓고 나서야 이 방을 나설 수 있었다. 이 릴레이 대화의 공을 닭에게 돌리고 싶다. 닭과 함께 들어있던 떡에게도, 감자와 양파에게도 감사함을 표한다. 가만히 앉아 이야기로 6시간을 보낼 수 있게 힘을 준 모든 식재료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음식은 음식으로만 느끼라는 사람들의 코멘트도 많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이 들다가도 꼭 한 번씩 신해철이 말한 ‘담배 잘 피는 방법’에 대해 떠올리면, 의미를 부여하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무언가가 내 몸에 들어와 어떤 역할을 한다면,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뭘 지도 고민해보고, 그에 맞게 활용하려 해야 한다는 말 말이다. 오늘의 내 닭은, 6시간의 수다 떨 힘과 타인을 향한 관심과 애정을 표현할 에너지를 주었다.


손님을 위한 닭볶음이었지만, 알고 보니 나를 위한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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