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하는 시그널은 크게 두 가지로 찾아온다. 화장실 수건이 전부 없을 때, 또는 빨래 바구니에 더 이상 옷을 넣지 못하는 상황일 때 빨래를 해야겠다 결심한다. 화장실 수건이 없는 게 빨래 바구니 넘치는 것보다 조금 더 위기감을 느낀다. 아직은 ‘더 이상 내 몸을 닦아낼 천이 없어진 순간'을 마주하진 않았지만, 막상 그렇게 되면 빨래 바구니라도 뒤져서 썼던 수건이라도 다시 사용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든다. 빨래 바구니를 볼 때는 항상 ‘비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없음의 두려움보다 비워내야 함에서 오는 압박감을 조금 느낄 뿐이다.
한참 땀을 흘리던 때엔, 아무리 빨아도 빨래에서 땀 냄새가 났다. 잘못 말려서라기엔 ‘말릴 수 있는 방법이 그뿐'이었다. 아니면 빨래방을 가서 건조기를 사용해야 했는데 내겐 좀 많이 어려웠다. 찾아보니 ‘과탄산소다'를 물에 풀고 몇몇 문제 되는 빨래들을 2시간 정도 방치한 다음에 빨래를 하면 악취가 줄어든다고 했다. 정말이었다. 30분 정도만 담가놓았을 뿐인데 땀냄새가 싹 하고 가셨다. 그다음엔 아예 세제와 함께 한 스쿱 과탄산 수소를 넣고 함께 빨래를 한다. 냄새가 아예 사라진다.
냄새가 아예 사라지는 게 좀 아쉽기도 하다. 린스를 넣을 때 ‘느끼고 싶은 향' 이 생각보다 많이 나지 않는다는 게 아쉽다. 그렇다고 세제만 넣기엔 빨래들이 너무 빳빳해질까 걱정이 되어 그럴 수도 없다. 세탁과 헹굼/탈수 과정 안에 있는 ‘세탁' 작업에서 과탄산소다가 이미 다 없어져야 했던 게 아닐까? 세제와 함께 헹궈져 없어질 줄 알았는데, 그래도 생각한 만큼 섬유유연제 향이 나지 않는 게 좀 많이 아쉽다. 문득 섬유유연제 향을 맡고 싶다며 벌컥벌컥 세탁기에 쏟아붓곤 하던 아버지의 빨래 루틴도 생각난다. 그 향기가 좋다며 한 그릇 떠서 화장실에 두기도 했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고민을 나도 똑같이 하고 있다는 게 웃기다.
나는 (아버지 루틴과 달리) 빨래 건조에 집중했다. 건조 시 좋아하는 향을 옆에 피우고, 향내가 나길 바랬다. 어떨 때는 통했고 어떨 때는 통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향 피우니 기침이 절로 났다. 차라리 향수를 뿌리는 게 더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아무런 악취만 나지 않는 상태면 되겠다 싶었다.
빨래에 대해 여러 번 글을 남겼던 기억이 난다. 건조대 이야기도 했었다. 아직도 그 빨래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그리고 건조기가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던 고민, 시도, 루틴이 참 많다고 느낀다. 건조대만이 줄 수 있는 옵션 혹은 기억, 추억은 요런 게 아닐까. 아버지 역시 ‘효율적인 건조대 사용법' 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갖고 계시던데 그것도 참 비슷하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