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자유

20220918,

by 크게슬기롭다

자취의 삶은 작은 자유를 누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작은 자유는 사람들 사이에서, 물리적 공간 속에서 느낄 수 있다.


먼저 사람들 사이에서 느꼈던 자유를 생각해본다.

기존에 맺어왔던 사람들과 잠시 떨어져 오롯이 혼자일 수 있는 상태가 작은 자유를 가져다준다. ‘사회인 모드’가 켜져 있는 상황에서는 마음 편히 쉴 수가 없다. 카카오톡으로 이미 우리 모두가 online상태에 익숙해져 있지만, 그 online 상태를 꼭 켜고 싶을 때만 켜고 그렇지 않을 때는 꺼둘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작게나마 느껴진다. 자취를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가족 구성원’의 이름으로 함께 살고 있다면 아마 그 자유를 누리지 못했을지 모른다. 아무의 시선도 느껴지지 않는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자유를 누리고 있다.


물리적 공간도 마찬가지다. 주의 집중을 하고 삶을 살아야 하는 순간들로 가득한 게 요즘 세상이다. 작건 크건 간에 ‘여기 보세요’ 하는 것들로 넘쳐난다. 꼭 그 목적을 갖지 않은 것들도 다 attention을 요구한다. 길을 걸어갈 때도 주변에서 오는 자동차에 집중해야 하고,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소에 서있을 때도 ‘지금 오는 저 버스가 내가 탈 버스인지’ 계속 확인해야 한다. 그런 것들이 익숙해지지 않는 순간이 찾아왔었다. 심지어 명상을 하는 데에도 가만히 누워 명상 가이드의 목소리에 집중해야 했다. 그 모든 것들과 함께 하는 루틴이 지난해져 갈수록 공간에 대한 갈증도 높아졌다. 나만의 공간, 자기만의 방이 있다는 것의 중요성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되었지만, 내게 찾아온 ‘나만의 공간' 은 그 누구의 ‘여기 보세요’ 없이 가만히 있어도 되는 순간을 제공해준다. 가만히 있어도 되는 자유, 그 작은 자유 말이다.


작은 공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 공간은 한없이 넓어진다.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옷장처럼 말이다. 문을 열고 겹겹이 쌓인 옷을 지나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나온다. 그곳도 날씨가 있어 언제는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린다. 내 몸이 정말 작은 공간, 거실 바닥에 겨우 웅크리고 누워있더라도 괜찮다. 내 뇌가 느끼는 공간이 조금 더 넓기에, 우선 이 정도의 자유로도 괜찮다. 작은 자유를 한없이 누리다 보면 점점 큰 자유를 찾고 싶어지는 순간도 찾아올 것이다. 그때는 그때의 내가, 그걸 위해 그렇게 움직이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옷장 속 넓은 들판이 아니라, 실제 들판 속에서 살고 싶어지는 때 말이다.


20220918, 스스로 자유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뉴진스의 attention을 혼자 열심히 듣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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