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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Sep 03. 2022

2. 우리의 엄마들은 베이지안 연구자였다.

엄마와 동생과 함께 강원도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차 안이었다. 엄마는 고속도로에 켜진 조명들을 한참 보더니 말을 꺼냈다.


    내가 볼 때 저 조명들은 터널 전에만 설치되어있는 것 같아. 지금 봐봐, 여긴 아무런 조명도 없잖아.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야간 시야 확보만 되는 수준으로 오토 설정이 잘 되어있으면 그만이었다. 한참을 또 가다가 엄마는 침을 삼키며 다시 한번 조명 이야기를 꺼냈다.

    

    이것 봐. 조명 없는 곳들은 아마 도로 옆에 농작지가 있어서 그럴 거야.


찾아보지 않고, 지금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으로 확정 짓는 이야기들 듣고 싶지 않아 재빠르게 대답했다. ‘엄마 지도 찾아보는 건 어때?' 하지만 엄마는 지도를 찾아보지 않았다. 농작지가 있는지 없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마치 그렇다는 듯 확정을 내리는 엄마가 너무나 답답했다. 차라리 구글에 검색해서 찾아보고 싶었지만, 운전을 하는 도중이라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그러고 나서 새로운 터널이 나오고 빠져나올 때도 한 번씩, 톨게이트를 지날 때도 한 번씩 엄마 나름으로 추론을 했다. 하이패스 때문인지, 차선이 갈라지기 때문인지 등등, 강원도에서 집으로 올 때까지 계속 엄마는 몇 번이고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결론을 내렸다. 엄마의 ‘고속도로 조명론' 은 고속도로가 끝나는 시점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문득 엄마의 이야기를 되돌려보니 나의 엄마가 굉장히 ‘베이지 안 적으로' 세상을 추론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통계학에는 빈도 주의자와 베이지안 주의자들이 있다. 빈도 주의자들 관찰을 통해 얻은 횟수(빈도)를 기반으로 확률을 계산하고 그 결과를 신뢰한다. 반면, 베이즈 주의자들은 베이즈 정리를 바탕으로 한 확률을 계산하게 되는데, 이는 어떤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구하기 위해 (이미 만들어진 가설인 ‘사전 확률’이 아닌) 사후 확률에 주목한다. 일어난 사건의 결과를 놓고 그 결과가 나오게 된 원인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후 확률은 조건부 확률로 나타내게 된다.


조건부 확률, 왠지 익숙한 단어다. 어떤 ‘조건'이 주어졌을 때 다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의미하는 단어다. 사건 A가 발생하였다는 전제 하에 B가 발생할 확률, 즉 P(B|A)로 표기된 확률 값을 의미한다. 엄마의 ‘고속도로 조명론'에 관련된 키워드를 붙여 한번 더 설명해본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사전 확률 : 관측자가 이미 알고 있는 사건으로부터 나온 확률로, 베이즈 정리에서는 P(A).. 을 의미

엄마의 머릿속을 상상해보면, 전체 고속도로 중 터널, 톨게이트가 등장할 확률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우도 :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조건 하에 다른 사건이 발생할 확률로, 위의 베이즈 정리에서는 P(B|A)를 의미

엄마는 아마, 터널 앞의 조명이 설치된 경우를 100%, 농작지일 경우, 농작지가 아닐 경우를 계속 머릿속에 스냅샷처럼 넣어놓았을지 모른다.   


사후 확률 : 사전 확률과 우도를 통해서 알게 되는 조건부 확률로 베이즈 정리에서는 P(A|B)를 의미

엄마에겐 ‘조명이 설치되어있을 때, 그게 터널일 확률' 또는 ‘조명이 설치되어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게 농작지 주변일 확률' 이 될 것이다.


이걸 그림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다.

출처 : https://j1w2k3.tistory.com/1009

모든 A들은 고속도로 속 상황이고, B는 조명 설치를 의미한다고 보인다. 엄마의 머릿속 ‘고속도로 조명론' 사후 확률은 100%다. 자동차를 보며 경험한 상황들을 기반으로 조명이 설치된 공간의 비밀을 추론하였고, 굉장히 확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위에 보인 그림과 조금 다를 순 있어도 P(A|B) = 1의 수준까지 B 가 아주 클 것이다.


베이지안 추론을 너무나 쉽게 시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 확률이 100%라는 점에서는 좀 아쉽지만 수많은 우리네 엄마들은 베이지안 추론을 참 잘하는 사람이 아닐까. 내 삶에선 엄마의 추론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치부만 했던 때도 있다. 각자의 기준에서 100% 인 조건부 확률이 타인의 눈에서는 0% 정도가 되었을 때는 더이상의 대화도 불가능했다. 그 조건부확률이 100%과 0%이라는 숫자에서 조금씩 벗어난 이후에야 대화를 조금씩 시도했다.


이제는 그 말을 온 마음을 다해 들을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생긴다. 엄마 머릿속의 사전 확률은, 우도는 무엇일까? 그리고 우도가 생성하게 된 이유는 그녀 삶의 어떤 것일까, 하고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런 관심만으로도 그녀가 만들어내는 사후 확률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설령 그 확률이 100%여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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