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한 삽

몸으로 겪은 협동

by 마구리

새벽 다섯 시, 어제 저녁 맞춰 둔 알람이 조용히 울린다. 첫날이니만큼 늦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두어 시간에 한 번은 깬다. 그러다가 다시 잠 들기 여러 차례다. 다섯 시 알람은 그래서 조용했다.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어서였던 걸까, 알람이 느닷없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밭일 나가는 첫날이다. 사는 곳 인근으로 일 나갈 밭으로 이동을 도와 줄 차가 오기로 되어 있다. 주섬주섬 작업복을 챙기고 대충 씻고 만나기로 한 장소로 이동한다. 차 기다리는 곳, 즉 만날 포인트가 명료하지 않아 몇 차례의 전화 통화 끝에 간신히 차에 올랐다. 이동과 함께 일이 시작된 거다.


작업장으로 가는 사이 함께 일할 동료들이 속속 차에 오른다. 주로 60대 이상 여성분들이다. 모자를 꾹꾹 눌러쓰고 장화를 신고 있다. 조그만 가방을 꼭 껴안고 있다. 어색한 첫 만남. 누군가 '신입생'오셨네라며 아는 체를 한다. 잘 부탁드린다 하고 다시 침묵으로 간다. 봉고 트럭의 덜컹거리는 소리만 요란다. 천천히 날이 밝아 오고, 오늘 작업할 밭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략 이천 평 남짓한 밭에 까만 비닐이 고랑을 이뤄 덮혀 있고 비닐엔 구멍이 뻥뻥 뚫려 있다. 이제 그곳에 감자가 찍힌다. 감자 찍기는 2인1조로 이뤄진다. 한사람이 기계로 구멍을 파면 다른 한 사람은 기계에 감자를 넣는 식이다. 내가 할 일은 감자 찍는 분들에게 감자 공급하기다. 미리 준비해 둔 감자 자루를 적당한 거리만큼 이동해 놓고, '여기 감자'라고 누군가 부르면 달려가 감자 들고 있는 통을 채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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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시간 일을 하고 난 아지매들은 참 시간이라며 작업을 일시 종료한다. 각자 싸온 도시락을 펼치며 소주를 벗삼아 시린 배를 채운다. 이것도 먹어봐 저것도 맛있어 하며 서로 음식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술은 강요가 없다. 먹고 싶은 사람을 물어보고 청하면 한 잔 따라 줄 따름이다. 어리버리한 '신입생'은 주면 주는대로 받아 먹는다. 몸 쓰는 일이라 잘 먹어야겠구나 생각한다.


감자를 찍고 나면 그 위를 흙으로 덮어야 한다. 그래야 감자가 마르지 않고 흙에 잘 안착한다. 열 명이 고랑 하나씩을 맡아 덮어나간다. 삽질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뒤처지길 반복한다. 그럴 때마다 옆 고랑을 맡은 이가 내가 맡은 고랑의 구멍을 메워준다. 흙 한 삽의 우정이고 공동 노동을 가능케하는 시스템이다. 내 앞에 구멍에 흙이 매워졌을 때의 고마움과 감격이 생생하다. 욱신거리는 허리와 팔을 잠시라도 쉬게 해 줄 수 있는 기회다. 협동이란 이런 거구나를 배운다.


보통 오후 다섯 시 전후면 장비를 점검하고 귀가 길에 오른다. 오늘은 급하게 매꿔야 할 감자밭이 있어, 주인이 두 시간 연장을 제안한다. 다음 날 비가 오면 심기가 어렵다며 흙 파슬할 때 작업해 달라는 것. 논을 메워 만든 밭인데, 한쪽 흙이 다른쪽 마사와 토질이 다르고 물이 괴는 곳이라서 오늘 꼭 해야 한다는 거다. 아지매들이 손걷어붙이고 나서자 주인이 요청한 분량이 한 시간만에 뚝딱 해결된다.


집 방향으로 가는 차를 얻어 타고 시골길 구비구비 돌아 시내에 들어섰다. 어두컴컴해 집 나서 다시 어두컴컴해 집 근처로 온 거다. 대략 열 세 시간을 밖에 있었던 셈이다. 밭에서 작업한 건 열 시간 내외다. 아직은 몸에 익지 않아서일 거다. 온몸이 욱신욱신거리고 힘이 하나도 없다. 내일은 비가 오신다니 공치는 날이다. 돈이고 뭐고 쉴 수 있다니 다행이다 싶다. 얼마나 더 밭에서 일을 하면 몸에 익을 수 있을까나.


2022-3-13, 신호승 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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