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 유럽 돌바닥에서의 기록 9

아홉 번째 기록- 오브리가도 포르투갈

by 릴리코이
떠나는 날 햇살이 제일 사랑스럽구나... 포르토... 너어.....

참 좋은 집이었다. 깨끗하고, 천장이 높고, 날이 좋다면 햇살이 방 전체를 감싸는, 사랑스러운 방. 그래서인지 밖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유난히도 많았던 방. 내가 떠나는 날 날씨가 최고인 것이 이제 내 여정의 징크스가 되려나, 오늘 날씨는 말로 다 할 수 없이 최고.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밥으로 새우 알리오 올리오 해 먹고, 한국에선 절대 사 먹지 않았을 석류를 까먹는데.... 식탁보에 붉은 석류 물이 팟! 하고 튀었다. 물들어버린 식탁보를 한참을 닦다가, 옆에 놓여있는 방명록에 괜히 정성스레 잘 지냈노라고, 최고의 룸이었다고 적는다...


여유롭게 짐을 챙겨 나왔다. 오늘은 국경을 넘어 스페인으로 떠나는 날.

유럽 사람들은 밖에 있는 테라스를 굉장히 선호하는 것 같다. 그곳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캐리어를 질질 끌고 이 여유로운 곳을 바삐 돌아다니는 동양인 여성인 나에게 여러 의미의 눈길을 준다. 전부 테라스로 앉으려고 해 가게 안은 텅텅 비어있다. 이름 모를 카페에 들어와 앉아 라떼를 시킨다. 3유로. 꾀 저렴하다. 여기 완전 리버뷰인데. 한국 커피값은 정말이지 너무 비싸다. 오늘의 날씨는 반팔 입어도 될만한 따스한 날. 강에 햇살이 비춰 반짝반짝, 강물이 너무 빠르게 흘러 비디오 빨리 감기를 누른 것 같이 보인다. 처음 자리에 앉았을 때는 내 눈앞에 보이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워 넋 놓고 몇 분을 보고만 있었는데, 30여분이 지나고 지금은 눈앞에 이 풍경이 익숙.

역시나 익숙해진다. 모든 건.
그 어떤 아름다움이라도.
날 좋은 포르투에서 해리포터 읽어본 사람!

카페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기타 연주를 하던 사람이 잠시 기타를 내려놓고 집에서 싸온 밥을 먹고 있다. 그는 익숙한 듯 샌드위치인지 빵인지 거의 마시다시피 급하게 입으로 욱여넣는다. 이상하다. 마음이 찡긋찡긋 아프다. 좀 전까지 책을 보던 나는 왜 하필 내 앞에서 잘하지도 않는 기타 연주를 하는 거냐 느끼던 나 자신을 스스로 비난했다.

'이 온정도 없는 것.'

안쓰럽다. 그에겐 삶이고 익숙할 테지만, 나는 그냥 마음이 아프다.


포르토는 색감이 은은하게 바래진 마을. 연하고, 부드러우며, 따뜻하다. 카페에 나와 걷다 우연히 이곳에도 리스본에서 먹었던 내 인생 에그타르트가 있다는 것을 알아 찾아갔지만, 리스본에서 맛봤던 그 맛이 아니다. 하지만 포르투갈에서의 마지막 NATA이기에 소중히 먹었다.(거짓말, 한입에 흡입했으면서.) 이제 몇 년간 에그타르트는 안 먹을 만큼 정말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먹었다. 씨익.

FABRICA DA NATA 한국에 제가 론칭할까요

공항에 가는 길, 영어도 아닌 포르투갈어로 된 기계를 붙잡고 혼자 유추하고 유추하다 포르토의 교통카드인 안단테 카드를 내손으로 뚝딱 뽑고, 옆 기계를 고치고 계시던 로컬 아저씨께 내가 잘하고 있냐는 눈빛을 보내니 그는 윙크 찡긋+ 예스! 기분이 너무 좋아 날아갈 것 같아. 대견하다 내자신! 사소한 것에도 나를 격려하고, 칭찬한 지 일주일째. 기쁘다. 지하철에 들어와 반대편에서 기다리는데 도무지 공항 가는 지하철이 안와 로컬 언니께 내가 잘 왔는지 영어로 물으니 그녀는 영어를 못했지만 알아들으시고 왔다 갔다 두 번을 하시더니 반대편이라 알려주신다. 세상에, 너무 친절한 포르토 사람들. 오브리가도, 오브리가다!

스페인에 갈 때는 편도 6만 원 정도였던 라이언에어를 이용하는데 보딩패스 프린트를 안 해서 걱정이 만땅이었다. 하지만 포르투갈에서 스페인으로 가는 여정은 프린트가 필요 없었다. 라이언에어 지상 승무원 남자분은 너무나도 유쾌하고, 친절했다. 악명 높지 않았어요, 라이언에어!


유럽에 발을 막 디딘 일주일 전만 해도 여기저기 헤매는 티 안 내려 당당히 이상한길로 돌아가기도 하고, 괜히 다 알아듣는 척, 아는 척, 센척했는데, 지금은 정말로 정말이지 익숙하다. 이곳에 있는 내가.

나를 환영해주어서, 날 안전하게 지켜줘서 너무너무, 오브리가도! 고마웠어, 정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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