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 유럽 돌바닥에서의 기록 10

열 번째 기록- 바르셀로나, 나 좀 받아주라.

by 릴리코이

여기는 바르셀로나. 국경을 넘어 스페인이다.

공항버스에서 내려 딱 캐리어를 끄는데, 뭔가 이상했다. 너무 잘 끌리잖아! 돌바닥이 아니다.

포르투갈은 점점 변화하고 있는, 아직은 옛날 모습을 간직한 유럽이라면, 여긴 이미 편리하게 다 바뀌어버린 현대 유럽이다. 길거리의 첫인상은.. 미국 같았다. 크고, 넓고, 현대식.


비행기가 좀 늦어서 예정보다 늦게 에어비앤비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다 되어 도착했지만, 호스트는 친절히 나를 맞아주었다. 스페인인 부부가 운영하는 에어비앤비였는데, 간단히 인사를 하고 방에 오니 "Welcome home judi"라고 써져있는 작은 게시판과 사탕, 초콜릿 상자가 침대에. 홈이라니..! 소소한 배려이지만 일주일 넘게 외국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환영과 배려, 관심이 느껴져 마음이 참 따뜻했다. 이곳은 내가 머문 방 중에서도 가장 좁은 방이지만, 진정 사람이 사는 집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 깨끗했다. 이 방에 거울만 있었다면 일주일 내내 묵고 싶을 정도.(그렇다. 거울은 방 옆 화장실을 가야 볼 수 있다.. 좋지 뭐. 꾀죄죄해진 내 얼굴아.. 자주 보지 말자 우리.) 여긴 특별하게 조식이 제공되는 숙소인데, 이상하게 포르투갈에서는 새벽이면 알람 없이 잠에서 깼지만, 이곳에 오니 늦잠이 너무 고파 첫날은 PASS 했다.

고마워요 NICE TO MEET YOU :-)

스페인에서의 첫날, 어김없이 아무 계획 없이 밖을 나선다. 사람들이 많이 걸어가는 곳을 따라 무작정 걷다 보니 까탈루냐 광장이다. 이 곳에 왔으니 관광객 모드로 바르셀로나의 관광카드 올라 카드를 사야겠다 싶어 구매.

올라카드로 무료입장할 수 있는 곳을 알아봤더니 까탈루냐 미술관이다. 버스를 타고 까탈루냐미술관 가는 길.

스페인이라고 길거리 모든 빵이 맛있는 건 아니었다....

매표소에서 자랑스레 올라카드를 내밀었더니 고개를 가로 짓는다. 나는 왜? 이건 올라카드, 나는 무료입장할 거야 라고 말했지만.. 고개를 저으며 노우를 연신 내 뱉는 접수원. 그래서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들어가야 할 것 같아 학생 할인으로 값을 내고 들어갔다. 확인해보니.. 내가 구입한 카드는 관광카드가 아니라 3일짜리 교통카드였다. 어쩐지 내가 찾아본 것보다 싸다 싶었어. 찜찜한 마음을 뒤로 한채 열심히 그림을 보는데, 정말 잘 정돈된 미술관이라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미술관을 좋아해 자주 갔지만, 이렇게 깔끔하고 모던한 미술관은 처음이었다. 물론 그림들도 굉장히 오래된 그림들로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눌 누군가가 있었으면 했다. 처음으로..

함께 감상을 나눌 사람. 함께 생각을 나눌,

누군가가 옆에 나란히 걸었으면 좋겠다고.
나오면 보이는 풍경. 미술관이 무지 언덕에 있어서, 바르셀로나가 한눈에 보입니다.

미술관에서 나와 걸어가는데 일본인 관광객 남자 둘을 마주쳤다. 누가 봐도 일본인들이었다. 일본 특유의 스타일. 옆을 스치는데 일본어가 들린다. 그들도 수많은 서양인들 속에 레어템(?)인 내가 반가웠는지 날 자꾸 쳐다본다. 말이라도 걸어볼걸. 마음은 반가워서 쳐다보고 싶은데 괜한 자존심으로 앞만 보고 당당히 걸어 지나쳤다.


내가 산 짝퉁 올라카드를 어떻게든 뽕을 빼고 싶어 버스 정류장에서 아무버스를 탔다. (3일 동안 무제한으로 대중교통을 탈 수 있는 카드가 바로 내 카드) 하지만.. 어째서 골라 탄 것은 이 카드로 탈 수 없는 버스란다. 다시 내려 가능한 버스를 찾아보고.. 그 버스는 20분째 오질 않고.. 결국 지하철을 타러 내려갔더니 표를 당최 안 먹는다. 역내 사무소에 가서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도저히 모르겠는 스페인어로 된 표지판을 가뿐히 무시한 채 사람들이 많이 타는 쪽으로 골라 탔는데 역시, 랜드마크 쪽으로 맞는 방향이었다.


까탈루냐 광장에서 내려 한참을 걸었다. 정말 수십 바퀴 걸었다. 스페인에서 유명한 ZARA, H&M, 약국 등 다 들어가 봤는데 포르투갈이 훨씬 싸고 예쁘다. 같은 매장이어도 나라에 따라 들여오는 물건이 다르다니. shit! 왜 많은 사람들은 포르투갈이 아닌 스페인을 여행할까? 뱅뱅 돌다 감바스 맛집으로 유명하다던 식당을 구글 지도에서 열심히 찾아 들어갔다.(참고로 나는 엄청난 길치라 처음 가는 길을 찾을 때 30분 헤매는 것은 기본인 사람) Granja m viader! 너무 걸었던 탓에 테이블이 보이자마자 훌쩍 앉아버렸다. 그런데.. 왜 문을 열자마자 단 냄새가 진동을 할까?... 하.. 구글 지도에서 본 감바스 집 그 바로 옆에 있던 츄러스 집에 들어온 거다. 이미 들어와 앉아버려 나가기도 뭐해 메뉴판을 보다 추천 상품인 초코 우유와 츄러스를 시켰다. 초코 우유는 뭐 맛없을 수가 있나, 맛있다. 그러나 츄러스? 흥, 굉장히 실몽이다. 츄러스의 나라 스페인 아닌가? 질기고 짜고 딱딱하다. 그저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츄러스 집인 것에 의미를 두자.

옆 테이블에 스페인인 할아부지 함무니들이 많이 계신 게 신기해.. 역시 스페인의 전통음식인가 봐요 헤헤


내가 걷는 이 길이 '바르셀로나에서 꼭 가보아야 하는 곳'인 람블라 거리였단다. 여기서 꼭 들러야 한다던 보케리아 시장에 가야겠다 싶어서 구굴 지도를 열심히 찾아갔건만.. 그리도 시장 구경 좋아하는 나지만(어느 나라에 가든 전통시장은 꼭 들르는 편) 도무지 구경할 힘이 안 났다. 보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다. 여기는 누군가와 함께 해야만 하는 공간인 것 같았다. 금방 나와서 걷다 보니 바르셀로나에서 유명한 타파스 집이라는 taller de tapas가 보이길래 무작정 들어와 메뉴판을 보고 "감바스로 보이는 것"을 시켰다.

응? 내가 아는 감바스는 기름.. 마늘... 바게트 빵....

그런데 웬걸. 껍질이 단단히 붙어있는 새우 *4마리*가 똑 나왔다. shit!

내 생각대로 흐르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


항상 어느 장소를 가던 첫날은 힘들었다. 나는 이미 며칠간 겪었고,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괜찮다 괜찮다 날 다독인다. 원래 첫날은 힘들었잖아. 괜찮아, 더 나아질 거야.....

근데 이건, 이건...!!! 너무 힘들잖아.

맘처럼 되는 게 한 개도 없다. 스페인이 날 받아주지 않는 것 같다.

나를 받아들여주지 않고 자꾸만 튕겨내는 것 같다.

날 좀 받아줘.

날 좀 안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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