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 유럽 돌바닥에서의 기록 11

열한 번째 기록- 가우디 그리고 첫 한국인 친구

by 릴리코이

어젯밤 바르셀로나에서는 기필코 관광객처럼 관광을 즐겨보겠노라 다짐하고 가우디 EBS 다큐를 보며 잠에 들었다. 아침 9시 반에 힘겹게 알람을 끄고 에어비앤비 호스트 카를로스가 차려준 아침을 먹는데, 초리쏘, 빵, 과일, 주스, 커피 등등 너무나도 정성스러워 맛있게 먹었다.

아침을 먹는데 식탁에 카를로스의 부인 제니가 중간에 내 옆에 앉아 나에게 말을 건넨다. "아.. 웨얼 두유 고잉..?" 영어실력이 나와 비슷해 보이는 그녀. 한결 영어로 말을 내뱉는 것이 편했다. 대화를 나눌수록 그녀의 표정, 말투, 몸짓이 그녀는 참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유방암에 걸렸지만 나아지고 있다고 했으며, 슬하에 13살 날 아들 1명이지만 그 아이를 돌보는 것은 4명의 아이를 돌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아들이 아기였을 때 하루 종일 그 아일 품에 안고 있을 때가 그립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그 어떤 사람보다도

아름답고, 따뜻하고, 애틋했다.

세상 모든 아들은 같고, 세상 모든 엄마들은 같구나. 그녀와 난 식탁에서 1시간 이상 말도 안 되는 영어로 대화를 했다. 인생에 처음 외국인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눈 시간.

예약해놓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시간이 임박해 황급히 길을 나선다.

아직 완공되지 않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밖에서 볼 땐 어찌 보면 괴기스럽게 느껴지기도

음.. 나는 딱히, 별 생각이 없었다. 일단 나는 천주교가 아니며, 이제껏 포르투갈에서 수많은 성당을 봐왔기에 아무 기대 없이 사그라다 파밀리에가 바르셀로나에서 꼭 와야만 하는 곳이라기에, 예약을 하고 입장한 것뿐이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한국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 했다. 한걸음, 입구 들어설 때부터 아, 이곳은 뭔가 다르구나 했다. 천장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높고, 성당 내부는 마치 숲처럼 느껴진다. 각기 다른 색들이 성당을 물들이고, 내부, 외부 그 어느 곳에도 의미가 투영되지 않은 부분이 없을 만큼 모든 것에 의미가 담겨있었다. 그중 성당의 가장 높은 부분의 높이가 몬주익 언덕보다는 낮은 이유는, 인간이 창조한 것이 신이 창조한 것(몬주인언덕)보다 높으면 안 된다는 가우디의 생각 때문이라고 한다. 성당을 둘러보며 마음이 묵직하게 마음을 자꾸만 눌렀다.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말로도 모자라다. 경이롭다. 경이롭다.

주책맞게 눈물이 다 날 지경

성당에서 나와 CLOT 역 글로리에스 쇼핑몰로 향했다. 사실 나는 물욕이 없는 편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스페인에 예쁜 옷이 너무 많잖아! 눈 뒤집히게 사고 싶은 게 많았다. 모두 TAX FREE 영수증까지 달랑달랑 받고 뿌듯한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집으로! 그러나.. 집 오는 길은 험난하고도 험난했다. 이번 내 유럽에서의 가장 친한 친구 구글 지도에 나온 버스정류장은 온데간데없고 같은 길만 3-4번을 왔다 갔다.. 결국 못 찾고 지하철을 타러 쇼핑몰로 되돌아간다. 지하철 앞 하늘 내가 본 하늘 중 가장 빨간 노을(말도 안 되는 빨간색)과 핑크 구름이, 헤매는 동안 스페인에게 화났던 것을 다 용서케 하는구나.

발로 찍는 사진

집에 와보니 다른방에 새로운 한국인 친구가 왔다고 한다. 한국인이라니..! 괜스레 설레기도, 조심스럽기도 했다. 근데 그 친구에게 문제가 생긴 것인지, 바닥에 주저앉아있기에 가서 물었더니 렌페 예약 때문에 곤경에 빠진 듯. 1살 어린 동생이기도 하고, 일주일 전 나를 보는 것 같아 짠해 30분을 서서 열심히 골라 샀던 엽서를 건네주며 울음을 그치라고 해줬다. 그리곤 알 수 없는 동지애가 생겨 밥을 먹으러 나왔다.

타파스 4개(무려), 바르셀로나 맥주 모리츠
4천 원짜리 핸드메이드 샹그리아라니

이상하다. 누군가와 함께 있어서 인가?

이곳에 온 이래 가장 맛있는 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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