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evergreen
Jun 03. 2022
순대국밥을 먹으러 차로 이동 중이었다.
남편이 갑자기 그 20분 남짓한 식당 가는 길에
직장 생활 하기 너무 힘이 든다며,
아무 생각없이 밥먹으러 가는 그 길에 어울리지 않는
묵직한 고민을 쏟아낸다.
단 한번도 속얘기를 터놓지 않던 남자가
진지하게 "나 일이 너무 힘들어...지난 번엔 점심시간에 하염없이 걷다가 기차역에 멍하니 앉아 있었어 " 라고 말하는 순간
내가 의지했던 큰 우주가 와장창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남편은 내게 엄마였고, 아빠였고, 베프였고, 나의 피난처, 안식처,
어쩌면 내게 있어 주님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대단한 그가 뱉어놓은 한 마디에
내가 이 세상을 붙잡고 있었던 유일한 끈이 툭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남편이 애써 웃어 보이며 "괜찮다, 밥 먹어. 니가 그렇게 걱정할까봐 내가 얘기를 안했던 거다." 하며
순댓국밥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데
조용히 나지막한 소리가 들린다.
"너에게 크고 창대한 비밀을 보이리라."
아, 이제 나의 남편이 그토록 내가 바라는 종교인의 삶으로 극적인 전환점을 맞는 것인가!
그의 입에서 들은 말은 암담했지만
내 마음의 종교적인 울림은 나에게 그나마 조금은 숨쉴 수 있는 안도감을 제공해 주었다.
그 날 밤,
자려고 누웠는데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팔다리가 저린다.
몇달 전 내가 보고 왔던 정신병원의 쇠창살이 보인다.
내가 그곳에 갇혀 하염없이 밖을 내다보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내가 낳은 아이들을 그리워 하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여보. 여보.
내가 숨이 안쉬어져.
여보... 여보.......
이러다 죽을 것 같아...
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