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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ergreen Jun 07. 2022

2008년 9월

여중생과 삼겹살 

운이 좋게 여자중학교에서 기간제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온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다 쏟아붓고 

터덜터덜 퇴근길에 

두 아이가 뒤에서 자꾸 말을 건다.


배도 고프고요, 사는게 힘이 들고요, 

평범한 중학교 1학년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선생님 무지하게 배고픈데~ 쌤하고 같이 밥 먹을까?"

"네!!"


두 여중생을 데리고 식육식당으로 데려가 

삼겹살을 구웠다.


아이들은 어색해 하면서도 

고기를 조물조물 씹어 먹으면서 깊은 마음속 이야기를 꺼낸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해 할머니와 산다는 이야기,

하루하루가 힘이 든다는 이야기,

고기를 먹다 내가 먼저 울어버렸다.


이 아이의 마음을 안다.

세상 만사 재미가 없을 거다.

공부고 나발이고 아무 낙이 없을 거다.



눈앞이 뿌얘지면서도 

아이들 앞접시에 삼겹살을 놀노리 구워 놓아 준다.


사이다도 시켜 셋이 짠을 외치며 

원샷을 해버렸다.



"선생님, 제가요! 나중에 돈 벌면요, 

선생님 좋아하시는 커피. 뭐가 제일 비싸지? 

스타벅스??

제가 그 스타벅스 커피 선생님 사드릴 거에요!!"



쪼매낳고 깡 마른 그 열 네살의 여중생이 

어느새 스물 일곱이 되었다.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저 먼 타지에서 일을 하고 있다. 


매년 스승의 날마다 전화를 걸어온다.

몇마디 말이 오가다 서로 운다. 

둘이 한참을 운다.


밥은 잘 먹니?

얼마나 거기서 또 힘이 드니.


애썼다.

올 한해도 애 썼다.


네가 얼마나 힘이 들었겠니.

정말 애썼다. 


아이는 번 돈으로 매년 스승의 날마다
나에게 선물을 보낸다.

올해는 장미 향 핸드크림을 보내 왔다.



나는 이 아이가 무엇을 먹는지가 항상 궁금하다.

일상을 살다가 

불시에 음식 기프티콘을 보낸다.



네가 내 앞에서 울면서도 오물조물 삼겹살을 먹던 그 모습이

나에겐 평생 각인이 되어 있어 

나는 네가 살다가
울더라도
무엇이든 배는 든든히 채웠으면 하는 소망이 생기나보다.



내가 가끔은 이 삶에 회의가 들어 

아무 의욕이 없을 때에도 


나에게 기댈
너를 떠올린단다.



울더라도 배는 채우고, 

우리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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