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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ergreen Jun 11. 2022

2021년 8월

폐계닭

시어머니는 요리를 잘하신다.

어느날엔가 폐계닭으로 요리를 해주신다며

기대하라고 하셨다.


빠알간 양념에 얼핏 비쥬얼은 닭도리탕인데

시아버지, 남편이 고기를 한 입 베어 드시더니

도저히 질기고 맛도 없다고 이게 뭐가 맛있냐고 난리가 났다.


멋쩍은 어머니께서도 고기를 한덩이 골라 씹으시더니

"아구, 뭐 이리 질기냐, 분명히 xx가 맛있다고 했는데.

하여간 xx 말은 믿는게 아닌데 또 믿었어. 아구.  "


"폐계닭? 이게 뭔데요? 어머니?"


"알 다 낳고 아무 쓸모 없어진 어미 닭인데... 맛있다고 해서 갖고 왔는데 어쩌냐..."


'아무 쓸모 없어진 어미 닭'에

왜 또 나의 눈물샘 버튼이 켜진 건지


다른 가족들 폐계닭 욕하는데

나는 그 닭이 안쓰러워

하나라도 더 먹어야 겠다(?) 싶어

살고기 두어개를 앞접시에 담았다.


질기다.

질겅질겅 소리까지 난다.

내 이가 틀니인가 싶을 정도로 질겅질겅 소리가 난다.


알 다 낳고 제 할일 다 한 그 어미닭이

식탁 위에서 조롱거리 되는 모습에

아니 왜 난 또 마음이 아픈지


그 와중에 난 또 왜 우리 할매가 생각이 나는걸까


나의 의식의 흐름은 참으로

괴짜같다.



"야이, 할매때메 내가 못살아여~.

하루에 몇번이고 전화가 와서 온 식구 걱정을 다 해여.

누구는 직장이 안 잡혀서 어쩌냐,

누구는 시집을 안 가서 어쩌냐,

누구는 여름에 일하느라 힘들어서 어쩌냐.

나도 일하느라 힘든데 환장해여~"

할매과 가장 가까이 사는

고모의 푸념이 이어진다.



부잣집 딸이었다는 우리 할매는 한글도 읽고 쓸줄 아는데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할아버지와 결혼을 했다.


큰 딸이 열 서너살 즈음

우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그뒤로 네 자식을 더 낳고

술, 노름 중독 할아버지와 살며

자식들 다 결혼 시켜 편하게 사시나 싶었는데


큰아들이 이혼했다.

며느리의 정신병으로...


그렇게 덩그러니 불쌍하게 남겨진 두 손녀를

4년을 눈물로 키워 주셨다.



사과 밭, 고추 밭, 포도 밭에

새벽 다섯시면 일 하러 가서

하루 일당을 받고 돌아와

언니와 나를 키워 주셨다.


큰 아들이 재혼을 하게 되면서

키워준 두 손녀를 큰 트럭에 실보내면서

할매는 하염없이 우셨다.



그렇게 또다시 두 손녀까지

할매의 슬픔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우리를 키워주셨던 그 큰 집에

덩그러니 혼자 사신다.


훌쩍 할매가 보고싶어 혼자 찾아가면

우리를 키울 때에는 온갖 나물 반찬에

고기 반찬까지 해 주시더니


이젠 냉장고에 된장 찌끄래기,

굳어버린 양념 고기,

언제 끓였는지도 모를 국이 휑하니 있다.


여전히 우리집 아이들, 우리 시부모님, 시 할머니까지 걱정하신다.

"aa, bb는 잘 있지?

안아프고 잘 크지? 보고싶다, 야이.

시어머니는 잘 계시지? 시 할머니는 잘 계시고?

막내삼촌..."


"할매!!!! 다 잘 있어!

할매만 잘 지내면 되여!! 할매!!!

그런거 걱정하지말고

할매만 잘 지내면 되여!!!"


마음은 이게 아닌데 왜 할매한테 퉁을 주는지

꼭 돌아서 오는 길에는 한바탕 울어버린다.



텅 빈 냉장고가 마음이 쓰여

그 인근 동네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배달시켜 보낸다.


"할매, 반찬 여섯시에 도착해여. 받아서 드세요~!"


"아니, 야야.

그 사람들이 속일 수도 있고,

니가 거기서 주문을 해도

여 사장들이 속이면 어째여~ "


" 할매!!!!!!!!!!!!! 쫌!!!!!!!!!!!!!!!!!"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걸 알면서도

나는 또 할매한테 퉁을 준다.



자식을 다 낳고

손주까지 키워 내신

제 할일 다 하신 할매한테

나는 퉁을 준다.

모오뙌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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