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evergreen
Jun 11. 2022
시어머니는 요리를 잘하신다.
어느날엔가 폐계닭으로 요리를 해주신다며
기대하라고 하셨다.
빠알간 양념에 얼핏 비쥬얼은 닭도리탕인데
시아버지, 남편이 고기를 한 입 베어 드시더니
도저히 질기고 맛도 없다고 이게 뭐가 맛있냐고 난리가 났다.
멋쩍은 어머니께서도 고기를 한덩이 골라 씹으시더니
"아구, 뭐 이리 질기냐, 분명히 xx가 맛있다고 했는데.
하여간 xx 말은 믿는게 아닌데 또 믿었어. 아구. "
"폐계닭? 이게 뭔데요? 어머니?"
"알 다 낳고 아무 쓸모 없어진 어미 닭인데... 맛있다고 해서 갖고 왔는데 어쩌냐..."
'아무 쓸모 없어진 어미 닭'에
왜 또 나의 눈물샘 버튼이 켜진 건지
다른 가족들 폐계닭 욕하는데
나는 그 닭이 안쓰러워
하나라도 더 먹어야 겠다(?) 싶어
살고기 두어개를 앞접시에 담았다.
질기다.
질겅질겅 소리까지 난다.
내 이가 틀니인가 싶을 정도로 질겅질겅 소리가 난다.
알 다 낳고 제 할일 다 한 그 어미닭이
식탁 위에서 조롱거리 되는 모습에
아니 왜 난 또 마음이 아픈지
그 와중에 난 또 왜 우리 할매가 생각이 나는걸까
나의 의식의 흐름은 참으로
괴짜같다.
"야이, 할매때메 내가 못살아여~.
하루에 몇번이고 전화가 와서 온 식구 걱정을 다 해여.
누구는 직장이 안 잡혀서 어쩌냐,
누구는 시집을 안 가서 어쩌냐,
누구는 여름에 일하느라 힘들어서 어쩌냐.
나도 일하느라 힘든데 환장해여~"
할매과 가장 가까이 사는
고모의 푸념이 이어진다.
부잣집 딸이었다는 우리 할매는 한글도 읽고 쓸줄 아는데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할아버지와 결혼을 했다.
큰 딸이 열 서너살 즈음
우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그뒤로 네 자식을 더 낳고
술, 노름 중독 할아버지와 살며
자식들 다 결혼 시켜 편하게 사시나 싶었는데
큰아들이 이혼했다.
며느리의 정신병으로...
그렇게 덩그러니 불쌍하게 남겨진 두 손녀를
4년을 눈물로 키워 주셨다.
사과 밭, 고추 밭, 포도 밭에
새벽 다섯시면 일 하러 가서
하루 일당을 받고 돌아와
언니와 나를 키워 주셨다.
큰 아들이 재혼을 하게 되면서
키워준 두 손녀를 큰 트럭에 실어 보내면서
할매는 하염없이 우셨다.
그렇게 또다시 두 손녀까지
할매의 슬픔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우리를 키워주셨던 그 큰 집에
덩그러니 혼자 사신다.
훌쩍 할매가 보고싶어 혼자 찾아가면
우리를 키울 때에는 온갖 나물 반찬에
고기 반찬까지 해 주시더니
이젠 냉장고에 된장 찌끄래기,
굳어버린 양념 고기,
언제 끓였는지도 모를 국이 휑하니 있다.
여전히 우리집 아이들, 우리 시부모님, 시 할머니까지 걱정하신다.
"aa, bb는 잘 있지?
안아프고 잘 크지? 보고싶다, 야이.
시어머니는 잘 계시지? 시 할머니는 잘 계시고?
막내삼촌..."
"할매!!!! 다 잘 있어!
할매만 잘 지내면 되여!! 할매!!!
그런거 걱정하지말고
할매만 잘 지내면 되여!!!"
마음은 이게 아닌데 왜 할매한테 퉁을 주는지
꼭 돌아서 오는 길에는 한바탕 울어버린다.
텅 빈 냉장고가 마음이 쓰여
그 인근 동네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배달시켜 보낸다.
"할매, 반찬 여섯시에 도착해여. 받아서 드세요~!"
"아니, 야야.
그 사람들이 속일 수도 있고,
니가 거기서 주문을 해도
여 사장들이 속이면 어째여~ "
" 할매!!!!!!!!!!!!! 쫌!!!!!!!!!!!!!!!!!"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걸 알면서도
나는 또 할매한테 퉁을 준다.
자식을 다 낳고
손주까지 키워 내신
제 할일 다 하신 할매한테
나는 퉁을 준다.
모오뙌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