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vergreen Jun 11. 2022

1985년 2월

내가 죽는 날은 온전히 기뻐해줘

아무도 모른다.


"내가 대체 몇시에 태어났어?

그러면.. 내가 아침에 태어났어? 아니면 낮에? 아니면 저녁에?"


아무도 모른다.

할매, 아빠, 큰고모, 작은고모, 삼촌, 더이상 물어볼 곳도 없다.


태어났던 산부인과에 전화를 걸었다.

예비 시댁에서 궁합을 본다고 태어난 시간을 묻는데

가족이 아무도 모른다고, 혹시 나의 출생 정보가 있냐 물으니

오래되서 없단다.


하긴,

아들을 지극히 원하는 경상도에서

둘째 딸이니

누가 반겼을까.


망할놈의 기억력,

생모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둘째도 딸이라서 지우려고 병원 침대에 누웠는데

내가 그렇게 발로 차더란다.

그래서 못 지우고, 못 죽이고

낳았단다...


망할...

그런말을 왜 해...



시어머니께 태어난 시간을 지어내서 알려 드렸다.

다행히 철학관의 그 분이

둘의 궁합이 좋다고 결혼을 승낙(?) 하셨다.



그래서

나는 내 생일이 너무너무 슬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그 뱃속의 아이가

덩그러니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어느 누구하나 진심으로 축하해 주지 않았을

그 가여운 그 아이가...

나는 여전히 너무나 가여워서...

날마다 그 감정에 허덕이는데...


왜 내게 그런말을 했어야만 했어...


결혼하고 우리 두 아이와 남편이 온전히 축하를 해 주어도

그게 진심으로 기쁘지가 않아...



그 날 세상에 태어났을 때,

온전히 축하받지 못했던 그 아이가,


이 세상을 떠나는 그 날에는

온전히 축하를 받았으면 좋겠다...



나에게 상처준 이들은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나와 뜨겁게 사랑했던 이들은

내가 치열하게 살아온 삶을 인정해주고

이제 정말 편히 쉬라고, 정말 애썼다고

축하하고 기도해 주면 좋겠다.



정채봉 시인의 유명한 어느 시처럼,

나는 주님 품에 안겨서

모든 일을 전부 다 일러바치고

엉엉 울어버릴 거다.


모든 일을 전부 다...



















작가의 이전글 2021년 8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