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입을 열다
3년 전,
처음 어머니와 학생이 상담을 왔다.
고등학교 1학년으로 이제 제대로 영어 공부를 해야겠는데
받아줄 수 있냐며 함께 오셨다.
여느 상담과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아이 험담(?)이 이어진다.
하지만 다른점이 있다.
덩치는 황소같이 큰 남자아이가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렇게 어느새 3년이 지났고
그동안 내가 그토록 까불대며 인사를 하고, 질문을 해도
고개만 끄덕이거나
단답으로 대답만 하던 아이가
어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수업 태도가 좋지 않아
수업이 끝나고 남겨서
"요즘 무슨 힘든 일이 있어?" 물으니
몇분이 흘렀을까,
조용하다.
그래, 더 기다려 보자.
내가 한참을 올려다 봐야만 하고
덩치도 엄청 큰 고3짜리 남자 아이가
마스크 너머로 웅얼거린다.
"제가요..요즘.. 힘이 들어요..."
아, 드디어 마음을 연다.
나는 천천히 질문을 하고
아이는 천천히 대답을 한다.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참으로 속이 상하고 가여워
나는 잉- 하고 울어버렸고,
아이는 눈이 새빨개 진다.
조용히, 천천히, 더디게 아이는 이 말을 뱉어냈다.
"제가 필요할 땐 부모님은 계시지 않았으면서,
이제와서 대화하자고 불러대요.
담임선생님하고 상담하는것 보다 더 불편한데
이제와서 자꾸만 불러대요.
제가 원하는 걸 듣지도 않으시면서요......"
아프다.
아이가 그동안 그래서 배가 아팠던 모양이다.
그동안 꾹꾹 눌러 담아놓았던 말들을
곱씹고 곱씹느라
아이가 그동안 배도 많이 아프고
항상 어두웠었구나,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조용히 있었고
나는 이 말은 꼭 해 주고 싶었다.
"정말 대견하다, 우리 aa이.
그동안 어떻게 견뎠을까?
선생님은 네가 참 대견해. 그 상황을 다 견디고 여기까지 왔으니.
넌 참 단단하고 우직하고 멋있는데.
그동안 참고 버티느라
네가 그동안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아이는 고개를 더 숙인다.
서로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더 조용히 있었다.
"저 이렇게 누군가에게 속마음 터 놓는 건 처음이에요..."
하...
저 큰 덩치에 온갖 속앓이를 다 담아두고 살았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19년 인생동안
처음으로 속마음을 터 놓는다는
저 가여운 아이를 어쩌면 좋을까...
쉽사리 잠이 들지 못했다.
그 아이를 위해 주님께 기도를 했다.
주님이 저 아이 좀 어루만져주세요...
저 가여운 아이 좀 만져 주세요...
그렇게 나는 오늘 새벽도 뒤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