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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green
Jul 01. 2022
약에 민감하니 최대한 약을 적게 써달라는
나의 부탁에
정신과 선생님은 반알씩 최대한 적게 약을 지어주셨다.
분명 약이 주는 효과나 영향력은 미미했을텐데
그시절 나는 날마다 슬픔만 느끼고
비워내고 털어내기를 반복했다.
그 과정 중에도
시댁 어른들은 주기적으로 만나야했고
시어머니께서는
여전히 나를 불편하게 하는 말을 하셨다.
조금 대범하고 쿨한 며느리를 만났으면 좋았을텐데
항상 별것 아닌 말에 꽁한 나를 만나
그어른도,여간 힘든게 아닐거다.
예전같으면 혼자 꽁하니 며칠을 앓았을텐데
반알, 그 얼마되지도 않는 약기운의 힘(?)을 빌려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사실 제가 공황장애, 우울증, 불안장애 약을 먹어요.
그래서 요즘 제가 많이 힘이들어요.
그런데 그때 그 말씀을 하신건 많이 불편해서요..."
아들, 딸, 며느리, 손주가 이세상 최고여야하고
자랑거리가 되어야하는 시어머니께서
충격을 받으셨나보다.
"애미야..약은 언제부터 먹었노?"
우신다.
친정은 관심도 없을것 같아 전화도 안드렸는데
미우나고우나 시댁이 편한지
이참에 다 풀어헤치고 응 이라는걸 부려본다.
어머니, 버티고버텨왔는데
이젠 힘이들어요.
과외일도 애들 키우는일도,
완벽하려고 허둥대는것도 다 벅차요...
누울자리도 아닌데
누워 뒹굴고
처음 어른에게 마음을 내비춘다.
한참을 속이야기를 하고 끊으려는데
나를 붙잡는다.
"애미야, 사실은 나도 행복하지가 않다.."
읭.
내 기분 다 털고 끊으려는데
어머니께서 우신다.
저 먼 기억속을 헤메다
당신의 여덟살 기억부터 꺼내신다.
국민학교 1학년, 학교를 마치고 신이나 집에오는데
집에 병원차가 와 있더란다.
어머님의 어머니께서 동생을 낳다 돌아가셨고
읽고쓸줄 아니 너는 이제 집에서 밥이나하라는
아버지의 뜻에따라
1학년까지만 학교를 다니고
중학생부터는 남의집 식모살이를 하셨단다.
처음듣는얘기다.
그추운 겨울에 찬물에 걸레를 빨고
손이 다 터서 피고름이나 도저히 못견디겠어서
주인어른에게 이야기하니
연고하나,툭던져주며 싫은티를 내더란다,
서러워 집에가니
어머님의 아버지께서
어린 어머님의 부르튼 손을 부여잡고
같이 우셨단다.
그시절 어머니로 돌아간것같다.
엉엉 우신다.
단 한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단다.
아, 모든게 이해가 간다.
왜 그렇게 청소에 집착하셨는지,
요리에 집착하셨는지,
왜 많이 배운자식들을 그토록 자랑하고 싶으셨는지,
그 시절
교복입은 아이들이 하염없이 부러웠다며
수화기 너머로 울고 있는
열넷, 열다섯 그즈음의 소녀가
가련하다.
"어머님. 어머님 제가 존경하는거 알죠?"
"응?"
"저는 어머니처럼 자식들 멋지게 기르고
손주들 넘치게 사랑해주는거 못해요,
제가 애비한테도그래요.
어머니같은 시어머니는 못되겠다고요."
"진짜라? 참말로?힝ㅡ"
13년동안
꼬이고 꼬인 매듭이 풀리는것 같다.
성경에서 부모를 공경하라는데
그 구절이 제일 싫었다.
그런데 시어머니를 조금은 이해할수 있게 됐다.
당신도 나와같은 상처가 있었다.
나와 닮은 면이 많아서
서로가 불편했겠구나,
조금씩 조금씩 그분에대한 따스한 생각이
마음으로 내려와 닿는다.
그동안 그럴수 밖에 없었던
그간의 일들이 이해가 된다.
그렇게 나는
지금까지도 날마다 훈련중이다.
이렇게 머리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용서하는 훈련을,
곧,
나의 아빠와 엄마도 그렇게 되길 바라며.